‘표식’ 홍창현의 얼굴이 활짝 피었다. 지난 여름 동안 얼굴에 짙게 드리웠던 그늘은 찾아볼 수 없었다. 유쾌하기로는 리그 내 으뜸인 선수가 비로소 제자리로 돌아왔다.
홍창현의 소속팀 DRX는 11일(한국시간) 미국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의 홀루 시어터에서 열린 ‘2022 LoL 월드챔피언십(롤드컵)’ 그룹스테이지 1라운드 4일차 C조 베트남 GAM e스포츠와 맞대결에서 완승을 거뒀다. 이들은 최종 2승1패, C조 2위로 1라운드를 마쳤다. 홍창현은 이날 자신의 상징적인 챔피언인 ‘킨드레드’를 뽑아 팀 승리에 기여했다.
승리 후 쿠키뉴스와 만난 홍창현은 “적 팀이 초반에 무섭게 하는 팀이라 걱정했는데, 시야에 들어오는 게 다 보이더라. 거기서 게임이 갑자기 너무 쉬워졌던 것 같다”고 이날 경기를 총평했다.
그는 “킨드레드-그레이브즈 구도가 내 기준에선 킨드가 후반에 더 좋다”며 “초반 그냥 잘 넘기고 중후반 보자는 마인드로 게임을 했는데 힘이 올라오기도 전에 게임이 끝나 있었다. 보여주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쉽긴 한데 이겨서 정말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홍창현은 “킨드레드가 3코어 때부터 힘이 많이 올라오는 픽이다. 그 때 다 잡는 그림으로 보여주고 싶었는데 무난하게 이긴 것 같아서 아쉽다. 좋기는 한데 다음에 또 각이 나오면 보여줄 수 있게 잘 연습해야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는 다만 킨드레드를 선픽으로 뽑기는 힘들다면서 조커 카드 느낌으로 기용할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홍창현은 과거 육식형 정글 메타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이번 대회에서는 ‘그레이브즈’ 등의 육식형 정글 챔피언이 떠오르고 있는 추세다. 그는 “올 시즌 전체적인 게임을 어떻게 해야 이기는지를 많이 배웠고, 이제 슬슬 초식 정글도 자신있는데 갑자기 또 이렇게 메타가 바뀌었다”며 “그래도 기분이 좋다. 앞으로 잘 해봐야 될 것 같다”고 웃었다.
DRX는 한국(LCK)의 4시드다. 출전 4개 팀 중 홀로 플레이-인(예선) 스테이지에서 대회를 시작했다. 기대감이 제일 낮았던 이들은 예상 밖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중국의 로열 네버 기브업(RNG)을 완파하고 전승으로 그룹스테이지에 진출하더니, 그룹스테이지에선 중국의 서머 시즌 준우승팀 탑 이스포츠(TES)를 완파하고 조 2위를 차지했다.
그 중심에는 홍창현이 있다. 그는 지난 시즌 깊은 부침에 빠지면서 흔들렸다. 팀이 가까스로 롤드컵 진출을 확정한 순간에도 벤치에 앉아 있었던 그는, 롤드컵에서 재도약을 각오했던 바 있다.
홍창현은 “게임 흐름이나 팀 간의 호흡은 정말 잘 맞는다”면서도 “한쪽을 배우면 한쪽이 낮아지듯이 뭔가 게임 이해도가 높아지니까 개인적으로 한타 디테일이나 그런 부분은 오늘도 좀 아쉬운 모습이 있었다. 그런 부분만 잘 다듬으면 좋을 것 같다”며 스스로의 경기력에 만족해했다.
“그간 스크림에선 되게 잘 됐는데 막상 대회에선 심장이 계속 뛰고 손가락도 떨고 스킬을 막 누를 것 같아서 주먹을 쥐면서 했었다. 어떻게 하면 조금 덜 긴장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텐션이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는 딱 중간에서 컨디션 관리를 하면 대회에서도 스크림처럼 잘 할 수 있을 것 같더라. 오늘 보니 그게 조금 도움이 됐더라. 컨디션 관리 잘 하고 경기 들어가기 전에 멘탈 관리 같은 부분을 잘 조절하면 계속 좋아질 것 같다.”
“‘샤인’ 코치님이 베테랑 선수들은 자기만의 루틴이 있다고 하셨다. ‘루틴이 뭐가 있지? 그냥 잘 되는 날은 잘 되고 안 되는 날은 안 되는 날 아닌가’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생각해 보니까 내가 매드전 때는 경기하기 전부터 일어나자마자 되게 긴장을 많이 했더라. 오늘 잘 해야 되는데 오늘 잘해야 되는데 하면서…. 되게 버스에서도 조용하고 그냥 계속 게임 생각만 하고 너무 진지하게 생각을 하다 보니까 막상 게임을 들어가니까 잘 안 되더라. 그래서 조금 긴장을 했다 싶으면 일부러 텐션을 높이면서 컨디션 관리를 해보려고 했는데 도움이 됐다. 샤인 코치님이 되게 좋은 얘기를 해줬던 것 같다. 자기만의 루틴을 찾으라는.”
“게임 흐름을 그간 정확히 못 봤는데 롤드컵을 오면서 각성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게임 흐름도 잘 보이고 팀원들이 다 잘하는 사람들이라 내 말을 다 이해해줘서 잘 되는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이 뭔가를 얘기했을 때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그런 부분이 많이 줄었다. 플레이-인에서 내 플레이를 분석해보면 긴장을 많이 했더라. 하지만 그걸 진정시킬 수 있는 루틴 하나를 찾았다. 프로 인생에 도움이 될 밑거름을 잘 찾았다고 생각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얻은 게 있다고 생각하니 괜찮았다.”
한편 홍창현은 그룹스테이지 첫 번째 경기인 로그전 패배로 DRX 선수단의 분위기가 잠시 가라앉았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김)혁규 형이 긴장하는 걸 많이 못 봤는데 TES전 하기 전에 엄청 안절부절하더라. 나는 괜찮은데 갑자기 ‘얘 긴장했어’ 하면서 남탓 하더라(웃음). 로그전 하기 전에는 다들 자신감에 차 있었는데 시작이 안 좋다 보니 2경기 때부턴 긴장을 많이 했던 것 같다.”
DRX는 2라운드에서 로그, TES와 재대결을 벌인다. 8강 진출의 분수령이 될 싸움이다. “상대가 반반을 가면 결국 체급 싸움이다. 우리가 체급에서 밀린다는 생각은 절대 안 한다. 초반 실수나 기본적인 부분에서 미스만 안 난다면 충분히 다 이긴다는 마인드로 임할 것 같다.”
“2라운드 잘 준비해서 꼭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다.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걱정을 되게 많이 하시는데 저는 괜찮으니까 끝까지 믿고 응원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다.”
뉴욕=문대찬 기자 mdc0504@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