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들 사이에서는 지난주부터 정리해고 얘기가 돌았습니다. 이사회가 따로 없는 만큼 기업의 모든 권한은 오너가에 있기 때문에 직원들 입장에서는 그들의 결정대로 떠나야할 수밖에 없죠”
범(汎)롯데가의 유제품 전문기업 푸르밀이 전 직원들을 대상으로 정리해고 통지를 한 다음날인 1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 위치한 푸르밀 본사에는 우울한 분위기와는 대비되는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본사 내부 방문은 어려웠다. 경비원은 “몇몇 기자분들이 방문했지만 회사 지침 상 통제하고 있다”며 출입을 제한했다.
전날인 17일 푸르밀은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통해 정리해고를 통지했다. 푸르밀이 통보한 사업 종료 및 정리해고일은 11월 30일이다. 회사는 전국 대리점에도 영업 종료를 통보했다. 이에 따라 전주·대구 공장도 다음달 25일 최종 생산을 마치고 30일 영업을 종료한다.
다행히 회사 밖으로 나오는 몇몇 직원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표정은 어두웠다. 일부는 오너가에 대한 실망과 안타까움을 전하기도 했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한 직원은 “자세한 건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회사 매각 얘기가 나올 때부터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라며 직원들 사이에서 정리해고 얘기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건 지난주부터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노조 측에서는 올해 연말까지 시기를 늦춰보려 했다고는 하는데 당초 계획보다 한 달이 더 당겨지게 된 것 같다”며 “말 그대로 하루아침에 회사에서 짤리게 되어서 안타까울 따름이다”라고 말을 아꼈다. 푸르밀은 2018년 15억원의 영업손실을 시작으로 2020년 113억원, 2021년 영업손실 123억원 등 매년 적자폭을 키워왔다. 지난달 LG생활건강이 인수를 추진했지만 무산됐다.
본사 직원들은 노조의 대응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또다른 직원은 “본사에는 노조가 없다. 부당하다고 여길 경우 개인이 직접 신고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며 “현재 노조원들이 많이 있는 공장 쪽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푸르밀에는 이사회가 따로 없기 때문에 사업 종료, 정리해고 등 모든 사안을 오너가에서 결정한다. 직원들은 그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현재 공장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 노조는 이번 푸르밀의 정리해고와 관련해 강경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황이다.
푸르밀 노조는 “오너 일가의 무책임한 사업 철수 결정으로 임직원들이 사지로 내몰렸다”며 “이번 사업 철수로 370여 명의 푸르밀 직원뿐만 아니라 낙농가와 화물차 기사, 협력업체 직원들도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모든 적자의 원인이 오너의 경영 무능함에서 비롯되었지만 전직원에게 책임 전가를 시키며 불법적인 해고를 진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회사 정상화를 위해서 전주, 대구공장별로 인원도 축소시켜 왔으며, 일반직 직원들은 반강제적인 임금삭감까지 당했다”며 “회사 정상화를 위한 어떤 제시나 제안도 듣지 않고 노사 간의 대화의 창을 닫아 버렸지만 일련의 과정 속에서도 회장의 급여는 삭감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실제 신준호 푸르밀 회장은 지난해 말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면서 30억원이라는 거액의 퇴직금을 미리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푸르밀은 1978년 롯데유업으로 출발했다.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의 넷째 동생 신준호 회장이 2007년 4월 롯데그룹에서 분사해 사명을 푸르밀로 바꿨다. 현재는 신 회장의 차남인 신동환 대표가 경영을 맡고 있다. 대표 제품으로는 ‘가나초코우유’, ‘비피더스’ 등이 있다.
이번 푸르밀의 사업 종료 결정에 소비자들도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앞으로는 푸르밀의 인기 제품이었던 가나 초코우유, 바나나킥 우유, 딸기크림치즈라떼, 6곡 미숫가루, 비피더스 등도 만나볼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소비자들은 “푸르밀 가성비 유제품이었는데”, “저 미숫가루 내 최애였다”, “가나초코우유 사서 마지막으로 먹어 봐야겠다”, “가나초코우유랑 검은콩이랑 편의점에서 1+1 자주해서 좋았는데” 등의 아쉬운 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안세진 기자 asj0525@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