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푸르밀 거래, 메일 한통에 끝” 낙농가 분통 [가봤더니]

“40년 푸르밀 거래, 메일 한통에 끝” 낙농가 분통 [가봤더니]

푸르밀 단독공급 농민, 영업종료 통보에 위기
유업계 "대안 찾기 어려워, 낙농진흥회 나서줘야"

기사승인 2022-10-25 14:59:28
임실낙우회와 푸르밀 낙농가 비상대책위원회 조합원들이 25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푸르밀 본사 앞에서 열리는 독단폐업 푸르밀 규탄 집회 장소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잘 나가던 때는 끝까지 함께 하자더니 이제 와서 메일 한 통 보내놓고 끝이라니 이게 말이 됩니까”
“임직원분들은 현실적인 대안이라도 있겠죠. 농가에서는 이상적인 대안조차 없는 실정입니다”

25일 서울 영등포구 푸르밀 본사 앞은 낙농가 농민들의 절규로 가득 찼다. 최근 푸르밀이 실적 악화를 이유로 사업 종료를 선언하면서 푸르밀 측에 원유를 공급하던 낙농가의 생존권이 위험에 빠지면서다. 농민 약 50명은 “독단폐업 푸르밀을 규탄한다” “낙농가의 생존권을 보장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농민들은 푸르밀에만 1979년부터 40여 년간 원유를 공급해 왔다. 하지만 푸르밀이 돌연 내달 30일자로 영업종료를 통보하면서 하루아침에 납품처를 잃게 됐다. 이들이 공급하는 원유의 양은 1년에 4만t에 이른다. 내달 푸르밀 영업종료 이후 12월 말부터는 납품 기한도 모두 끝나게 되면 원유 4만t은 모두 버려지게 되는 셈이다.

이상욱 임실군 낙농육우협회장은 “원유 쿼터제 도입 당시 푸르밀 전신인 롯데햄·롯데우유의 강력한 요청 때문에 임실지역 농가들이 낙농진흥회에 편입되는 대신 푸르밀에 납품하는 길을 택해 오늘에 이르렀다”면서 “그런데 이제 와서 회사가 적자 난다고, 그간 아무 말 없다가 돌연 내용 통지서를 보내 우유를 못 받겠다고 한다. 이게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인가 싶다”고 호소했다.

임실 낙농가는 푸르밀로부터 원유공급 해지 내용증명을 받은 뒤 신동환 푸르밀 대표에게 면담을 요청했으나 어떤 답도 받지 못했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한 농민은 “신동환 회장이 푸르밀 노조 측과는 어제 면담을 진행했다고 한다”며 “그분들의 고통도 십분 이해하지만 그분들에게는 현실적인 대안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상적인 대안조차 없는 낙농가로써는 막막하고 답답한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낙농가 입장에서는 단순히 향후 납품처를 잃는 것에 끝나지 않는다. 보유하고 있는 재산을 잃게도 되는 셈이다. 낙농사업은 일종의 영업권인 ‘쿼터’를 매입해야 운영할 수 있다. 푸르밀 25개 낙농가가 그간 매입해서 보유하고 있는 쿼터는 30t 가량에 달한다. 시중 거래가 기준 120억원 수준이다. 이번 푸르밀의 계약 해지 통지로 인해 해당 쿼터는 모두 휴지조각이 됐다. 일반 직원들의 정리해고보다 심각한 위기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임실낙우회와 푸르밀 낙농가 비상대책위원회 조합원들이 25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푸르밀 본사 앞에서 독단폐업 푸르밀 규탄 집회를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임실낙우회와 푸르밀 낙농가 비상대책위원회 조합원들이 25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푸르밀 본사 앞에서 독단폐업 푸르밀 규탄 집회를 열고 발언하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유업계 “안타깝지만 대안 없는 상황”

현재 낙농가의 도산 위기를 막기 위한 해결책은 전무한 상황이다. 저출산·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우유 소비량은 감소하고 있다. 또 2026년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미국과 유럽 우유가 무관세로 낮은 가격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면 국산 우유의 경쟁력은 더욱 약해질 수밖에 없다. 

유업계 관계자는 “맘 같아서는 해당 농가의 원유를 조금씩 사들여 소비를 해주고 싶다”면서도 “무엇보다 현재 계약을 맺고 있는 농가 원유 소비도 버거운 상황”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현재 우유가격 인상, 우유 소비 감소 등의 이유로 유업계 상황이 좋지 않은 만큼 선뜻 나서기가 어렵다. 푸르밀 낙농가 원유를 커버할 수 있는 업체가 사실상 없을 것”이라며 “낙농가와 공장의 거리도 중요한데 현재로썬 임실 낙농가 제일 근처에 있는 공장이 동원F&B 공장이라고 한다. 하지만 동원 기존 농가들이 영업권을 사야하는데 매물도 없을뿐더러 현재 동원 측도 추가 생산여력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덧붙였다.

급한 불을 끌 수 있도록 원유를 탈지분유로 만들어 장기 보관하도록 하는 방안도 어렵다. 또다른 유업계 관계자는 “우유 지방을 분해해서 탈지분유를 만들어서 장기간 보관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얘기가 나오는데 이 역시도 쉽지 않은 게 탈지분유마저도 남아돈다”며 “이는 기업들이 아닌 낙농진흥회 차원에서 상생방안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푸르밀 노조와 신동환 푸르밀 대표이사는 지난 24일에 노조와 만나 사태에 대해 의논했다. 면담에는 신동환 대표와 푸르밀 부사장급 2명, 김성곤 노조위원장을 포함한 노조측 관계자 3명이 참석했다. 다만 노조 측은 26일 예고한 상경 투쟁은 예정대로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며 오는 31일로 예정된 2차 협의도 논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안세진 기자 asj0525@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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