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우리는 계속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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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이후 대중음악 공연 등 예술 행사 잇달아 취소
“예술인에게 공연은 추도 방식 중 하나”

기사승인 2022-11-03 06:00:05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마련된 '이태원 압사 사고' 희생자 추모공간에 메모지가 놓여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지난달 29일 서울 이태원동 일대에서 대규모 압사 사고가 발생해 156명이 사망하고 157명이 부상당했다. 현장 통제만 제대로 됐다면 벌어지지 않았을지 모르는 비극적 참사였다. 정부가 사고 다음날부터 오는 5일까지를 국가애도기간으로 정하면서 주말동안 대중음악 콘서트 등 공연과 행사가 줄줄이 취소됐다. 이로 인한 금전적 손해는 고스란히 업계 종사자들이 떠안아야 한다. 일각에선 ‘공연예술을 유흥으로 격하하는 처사’라는 지적도 나온다.

가요계에 따르면 지난달 30일부터 이날까지 10건 넘는 공연이 취소되거나 연기됐다. 가수 영탁, 장윤정, 장민호, 그룹 트와이스, 코요태 등이 계획했던 콘서트와 팬미팅을 취소했고, Mnet ‘스트릿 맨 파이터’ 출연진과 팝스타 마이클 볼튼 등은 이달 열려던 공연을 내년 초로 미뤘다. 국민 정서를 고려해 자진 취소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공연장 대관료, 티켓 수수료, 홍보·마케팅 비용 등 손해가 막심하지만, 국민 정서 등을 고려하면 행사를 마냥 강행할 순 없는 노릇이라는 게 업계 입장이다.

잇따른 공연 취소…일자리가 사라졌다

공연 취소로 인한 피해는 가수와 소속사를 비롯한 업계 종사자들이 고스란히 떠안는다. 밴드 교란 멤버이자 음악 프로듀서로 활동하는 홍지현씨는 “국가 및 지자체 주관 행사는 전면 취소됐다. 그밖에 거의 모든 공연들도 취소 혹은 잠정 연기됐다”며 “계약 내용에 따라 다르지만 공연이 취소되면 출연료는 거의 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퀴어 아티스트 히지 양씨도 이태원 참사 후 공연 두 건이 취소돼 경제적인 타격을 받았다. 하나는 자진 취소했지만 다른 하나는 서울시의 권고로 취소했다고 한다. 히지 양씨는 “이번 달 수입의 70%가 사라졌다”며 “경제적으로 취약한 공연 예술인들이 표적이 돼 불공정한 차별과 어려움을 겪는 것 같아 아쉽고 화가 난다. LGBTQ+(성 소수자) 예술인들은 활동 무대나 기회가 제한된 상태라 더더욱 그렇다”고 말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누적된 피해에 공연계는 서서히 붕괴하고 있다. 홍씨는 “공연장, 기획자, 예술가들 모두 많이 사라졌다. 벼랑 끝에 내몰린 채 등까지 떠밀리는 상황”이라고 했다. 공연 기획사를 이끄는 A씨는 “공연이 취소되면 음향과 조명 등 공연 장비를 제공·가동하는 속칭 하드웨어 업체도 큰 피해를 입는다”며 한숨을 쉬었다. 장비 임대료와 인건비 등 고정 비용이 워낙 큰데다 공연 취소로 인한 피해를 입증하기도 어려워서다. 가요 관계자 B씨도 “공연이 연기될 경우 각종 대금 지급 시점이 미뤄지는 정도에서 그치지만, 전면 취소되면 소속사보다 참여 업체의 손해가 크다”고 귀띔했다.

싱어송라이터 C씨가 SNS에 올린 글.

“예술인에게 공연은 추모 방식 중 하나”

예술인에게 공연은 생업이자 일상일 뿐 아니라 타인과 감정을 나누는 창구이기도 하다. 가수 겸 작곡가 정원영은 SNS에서 “모든 공연이 다 취소돼야 하나. 음악만한 위로와 애도가 있겠나”라고 지적했다. 싱어송라이터 C씨는 공연기획사 등과 상의한 끝에 5일 예정된 공연을 열기로 했다. “공연이 업인 이들에게는 공연하지 않기뿐 아니라 공연하기도 애도의 방식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싱어송라이터 김사월, 신승은, 밴드 공중그늘 등도 예정대로 공연을 했거나 할 계획이다. A씨는 “예술가가 노래, 춤, 그림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추모는 이렇게 해야 해’라는 압박이 존재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홍씨 역시 “누군가는 공연 취소를 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공연을 지속함으로써 애도할 수도 있다. 강요된 애도는 억압”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가수 아리아나 그란데는 2017년 영국 맨체스터 공연 중 테러가 벌어져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자, 동료 음악인을 모아 추모 콘서트를 열었다. 애도를 이유로 공연이 금기시된 한국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히지 양씨는 “춤, 노래, 그 외 다양한 공연 예술을 유흥으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와 기성세대 인식 때문에 생계와 직결되는 예술 활동을 하는 데 죄책감이 든다. 강제로 활동이 제한돼 경제적 문제뿐만 아니라 심리‧정신적으로도 힘들다”면서 “예술가와 공연인의 활동은 ‘노는 것’이나 ‘애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직업이고 생계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홍씨도 “공연을 하는 것이 문제시되는 분위기로 인해 대외적인 예술 활동 자체가 위축된다”고 말했다. 그는 “예술가들은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노동자들이다. 이런 상황일수록 더욱 포용적인 연대가 필요하다”며 관심을 호소했다.

쿠키뉴스는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시민과 함께 슬퍼합니다. 다시는 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언론이 해야 할 일을 하겠습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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