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짠해” “자셔” 술먹방 보는 아이들…규제는 자율

“짠해” “자셔” 술먹방 보는 아이들…규제는 자율

주류광고 위반 SNS서 대다수 적발
‘사이다 맥주’· ‘새우깡 맥주’…아이들 홀리는 광고
가이드라인 없이 자율 규제

기사승인 2022-11-16 06:10:02
쿠키뉴스 자료사진

# 서울 도봉구에 거주하는 정모(36·여)씨는 초등학생 자녀가 음료를 마실 때 “짠해”, “자셔” 등 술 마실 때 쓰는 단어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본인과 배우자 모두 술을 먹지 않아 이상하게 생각한 정씨. 아이는 이른바 ‘술먹방’을 즐겨 보고 있었다. 정씨는 “아이에게 핸드폰을 사주지 않아도, TV를 보여주지 않아도 사실상 온라인이 되는 어느 곳에서든 음주 조장 영상을 볼 기회는 많더라”라며 “일일이 막기가 불가능해 보인다”고 말했다.  

# SNS를 즐겨하는 최모(16·여)양은 친구들과 연말 파티를 계획 중이다. 어떤 컨셉으로 사진을 찍고 SNS에 올릴지 고민이 많아졌다. SNS 속 ‘#파티’를 검색했더니 오색빛깔 칵테일과 딸기맛·소다맛·메론맛 등 친숙한 맛을 강조한 소주 광고가 눈에 띄었다. 화려한 인플루언서들과 높아지는 ‘좋아요’ 수를 보니 욕심이 생겼다. 그는 “유튜브를 보면 고등학생들이 술먹방을 한다. SNS에 예쁜 보드카, 칵테일 광고·협찬도 넘쳐난다”며 “친구들 사이에서도 술이 나쁘다기 보다 그냥 예쁜 음료 수준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더 많은 거 같다”고 말했다. 

SNS 속 주류광고, 92%가 음주조장 등 위반으로 적발

주류광고 위반 현황.   HP2030 팩트시트

SNS, 유튜브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미성년자가 음주 조장 영상에 노출되고 있다. 지난 10일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은 ‘제5차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HP2030)’의 중점과제별 주요현황과 추진성과를 공유하는 ‘HP2030 팩트시트’를 발간했다.

HP2030 팩트시트에 따르면 매체별 주류광고 총 63만7989건 중 62만7071건(98.3%)이 TV 광고로 이뤄졌고, SNS를 통해서는 10만건(1.6%)으로 집계됐다.

매체별 주류광고 위반 현황에서 SNS가 92.4%(1430건 중 1322건)로 대다수를 차지, ‘과음 경고문구’, ‘음주 권장 유도’, ‘경품 및 금품’ 항목에서 가장 많은 위반조치를 받았다.

SNS 주류광고의 가장 큰 문제는 시간대, 연령대 제한을 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정부가 지상파, 케이블 TV의 주류광고 송출 시간대를 설정하는 등 제한을 건 이후 송출되는 음주 장면이 확연히 줄었다(2018년 0.18%→2020년 0.07%). 하지만 SNS 광고는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청소년이 술 광고 및 음주 장면을 접할 기회가 많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의 유튜브 음주영상 모니터링 결과에 따르면 유튜브의 음주 콘텐츠 100개 중 90개는 음주를 긍정적으로 묘사하거나 음주 중 부정적 행동(과음, 폭음, 폭탄주, 욕설, 성적인 묘사 등)을 보여주며, 주류 제품을 광고하는 듯한 내용을 담고 있다. 평균 조회수도 80만회 정도로 아동·청소년에게도 상당 부분 노출됐을 것으로 예상되나, 청소년 계정을 차단하는 등의 보호 장치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친숙한 마케팅도 청소년 음주 조장 한 몫”

지난달 12일 국정감사에서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사이다 맥주’, ‘새우깡 맥주’ 등 친근한 식품을 활용한 맥주 제품에 대한 위험성을 지적한 바 있다. 대중적인 이미지가 주류 마케팅으로 이용되면서 청소년에게 음주에 대한 친화적인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의견이다.

이에 한국건강증진개발원 측은 주류 마케팅에 대해 모니터링을 하고 있지만 이 부분에 대한 규제법안이 없고 예산도 많지 않아 애로사항이 크다고 답변했다. 

남 의원은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협업 주류 광고에 대한 별도의 가이드라인 신설 등 제도개선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며 “개발원 원장으로서 보건복지부 및 재정당국과 논의해 마케팅으로 인한 폐해 예방예산과 인력을 확충해달라”고 요청했다.

청소년 첫 음주경험 연령 13세…낮아지지 않는 위험음주율

청소년 음주율 그래프.   HP2030 팩트시트

국내 청소년 중 처음 1잔 이상의 음주 경험을 했던 평균 연령은 13세다. 지난 2020년 여학생 13.7세, 남학생 13.2세 였으나 2021년에는 13.6세, 13세로 연령 기준이 더 낮아졌다.

청소년 위험음주율은 증감을 반복하고 있다. 2021년 음주자의 위험음주율(최근 30일 동안 1회 평균 소주 3잔 이상)은 45.5%로 높은 수준이며, 청소년 음주자 약 2명 중 1명 꼴로 위험음주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음주자 중 여학생은 성인 여성보다 높은 위험음주율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 청소년 여학생 위험음주율(최근 30일 동안 1회 평균 소주 3잔 이상)은 52.9%로 같은 해 성인 여성 월간음주율(19세 이상 성인 여성 중 한 달에 1회 이상 음주한 사람) 47.8%보다도 높다. 성인 여성 고위험 음주율(1회 평균 5잔 이상, 주 2회 음주)은 2020년 6.3%으로 나타났다.

이에 복지부는 △절주 실천을 위한 공익광고를 제작해 유튜브 송출 등 홍보 △통신매체를 통한 음주 장면 모니터링 확대 △이해관계자 자율 규제를 촉구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가이드라인 확립 없이 ‘자율 규제’라는 한계가 있다.

이와 관련 김석산 다사랑중앙병원 원장은 “청소년들은 아직 올바른 음주관이 형성되지 않은 상태다. 미디어를 통해 희화화된 만취 모습을 접할 경우 음주와 폭음의 심각성에 무뎌지기 쉽다”며 “청소년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도 적극적인 관심과 개입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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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tough@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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