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대 설치법안이 또다시 좌초 위기에 놓였다. 정부와 국회의 책임 방기로 의료 공백이 길어지게 됐다는 비판이 높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 등 5개 단체는 23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정기국회 내 공공의대법 제정을 촉구했다.
현재 국회 발의된 ‘의대 신설법’ 11건 중 10건이 공공의대 설립과 관련됐다. 목포의대 설치 특별법(더불어민주당 김원이 의원), 전라남도 내 의대 설치 특별법(민주당 소병철 의원), 창원의대 설치 특별법(국민의힘 강기윤 의원) 등이다.
공공의대법의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제2법안심사소위 상정은 이번에도 불발됐다. 여야가 입장차를 좁히지 못한 탓이다. 민주당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논의가 중단된 점을 지적하며 연내 본회의 통과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국민의힘은 의사단체와 정부간 합의를 이유로 안건 상정을 보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19 유행 초기, 의료계는 문재인 정부의 공공의대를 포함한 의대 정원 확대 추진에 반기를 들고 집단 휴진에 돌입했다. 의대생들은 국시 응시를 거부했다. 이에 지난 2020년 9월4일 정부와 대한의사협회는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추이, 의료체계 대응 능력 등을 고려해 의대 정원 확대 논의를 ‘코로나19 안정화 이후’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의사 수 절대적 총량이 부족하다는 게 중론이다. 공공의료기관 의사 부족, 지역별 공급 불균형 등 여러 위험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며 “문제 해결을 위해 의과대학 정원 확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의정합의를 핑계로 정부와 국회가 안일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의사 부족으로 인한 불법 무면허 진료행위가 판을 치고 있고, 지역 병원에서는 고액 연봉을 내걸어도 의사를 구하지 못해 의료 공백이 커지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어느 나라도 대학 정원을 이해 당사자와 야합으로 결정하지 않는다. 공공의대 설립과 의대정원 확대 논의를 전면 중단시킨 무책임한 ‘의사와의 약속’ 핑계를 끝내야 한다”라고 비판했다.
김현태 한국노총 전국의료산업노동조합연맹 법규국장은 “국립 공공의대 필요성은 2015년 메르스 사태에서 시작했으며 당시 정치권에서 여야가 앞다퉈 관련 법률안을 제출했다”며 “이미 7년 전 여야 간 합의된 인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가 국민의 삶을 할퀴고 지나간 지금까지도 근원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공공의대법 제정에 적극 나서지 않는 국회의원에 대해서는 국민보다 의사 편인 정당과 국회의원으로 규정하고 시민사회단체가 총력을 다해 규탄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의료계에서는 정부와 코로나19 안정화 시기 이후로 합의 시기를 정한 만큼, 아직 때가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공공의대 설립에 대해서도 반대 의견을 분명히 밝혔다.
이필수 대한의사협회회장은 지난 11일 ‘제41대 집행부 반환점 회무보고 기자회견’에서 “국회에 발의된 공공의대 설립법안은 정치적 목적이 다분하고, 자신의 지역에 의대를 설립하기 위해 공공의대 설립 법안을 경쟁적으로 발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출산율 저하로 오는 2037년에는 오히려 ‘의사과잉’ 시대가 올 것이라면서 의대정원 확대는 비용적으로 비효율적이고 차라리 민간의료기관에 인력과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재헌 무상의료운동본부 사무국장은 “윤석열 정부는 애초부터 공공의료를 강화할 생각이 없었다. 최근 오히려 인력 감축으로 공공병원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민주당도 다수 의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법안 통과가 가능하다. 그런데 민주당 역시 의료계 눈치를 보고 있는 것 아니겠나”라며 “진정성 있는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