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년 만에 유통기한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식품 폐기물을 줄이고 소비자에게 섭취 가능한 명확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내년부터는 소비기한이 도입된다. 업계에서는 재고 관리 등에 있어 보다 편리하다는 입장이지만 소비자와의 분쟁이 이전보다는 많아질 수 있음을 우려했다. 이에 29일 업계는 정부 차원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기업과 소비자를 대상으로 소비기한에 따른 유통·판매와 보관 방법 등에 대해 홍보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존의 식품 유통기한 표시제를 소비기한 표시제로 변경하는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이 개정됐다. 이로써 내년부터 유통기한이 사라지고 소비기한이 도입된다. 1985년 유통기한 도입 후 38년 만이다.
소비기한은 쉽게 말해서 먹어도 이상이 없는 기한이다. 보다 소비자 중심의 개념이다. 기존 유통기한은 제품의 판매가 허용되는 기한으로 판매자 입장에서의 기한이다. 제품군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소비기한이 유통기한보다 20~50%가량 길다. 유통기한은 식품의 품질 변화 시점을 0으로 봤을 때 30~40% 앞선 시점으로 설정하고 소비기한은 10~20% 앞선 수준에서 정한다.
앞서 정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국가에서 소비기한을 사용하는 국제적 추세에 맞춰 소비자에게 섭취 가능한 날짜에 대한 명확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목표로 소비기한 도입을 추진해 왔다.
또 소비가 가능한 식품이 폐기되면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탄소중립 실현에도 기여한다는 방침이다. 식약처에 따르면 국내에서 버려지는 식품 폐기량은 연간 548만t에 이른다. 양으로 따지면 축구장 100개를 합친 면적을 덮을 수 있는 정도다. 처리 비용은 매년 1조960억원에 달한다. 식품 폐기물의 상당량은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이다.
식품업계에서는 소비기한 도입 추진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기업들은 판매 기한이 늘어날 수 있어 매출에 도움을 줄 수 있는데다 제품 소비량에 맞춰 생산량을 조정할 수 있어 재고 관리에 유리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다만 일부 업체에서는 소비자와의 분쟁이 증가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판매 기한이 늘어난 만큼 제품의 보관 및 유통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제조사를 향한 책임이 유통기한에 따라 제품을 판매했을 때보다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아무래도 재고 관리 차원에서 소비기한으로 맞추는 것이 기업 입장에서 더 편리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판매업체 및 소비자 취급 부주의로 인해 제품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그 책임이 기업에게 돌아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기업과 소비자에게 홍보할 필요성이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보관 온도 등이 중요해진 만큼 유통·판매 단계에서 콜드체인 도입, 개방형 냉장고에 문 달기 등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행 규정에 따르면 냉장 보관 기준은 0~10도, 냉동 보관은 영하 18도 이하, 상온은 15~25도, 실온은 1~35도 등이다.
업계 관계자는 “일반 소비자가 느끼기에 소비기한은 기존 유통기한에서 시간이 좀 더 연장된 개념 정도”라며 “지금과 같은 판매 시스템 하에서는 특히 여름철의 경우 제품에 변질이 올 가능성이 크다. 소비기한에 맞는 유통과 판매가 이뤄질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소비자도 소비기한 표시를 잘 확인하고 식품 취급상 주의사항을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며 “단순히 좋은 제품을 좋은 가격에 구매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좋은 보관 방법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안세진 기자 asj0525@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