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간 유지해온 소선거구제 폐지 논의가 다시금 화두로 떠올랐다. 총선을 앞두고서 항상 나오는 얘기지만 여야의 극명한 대치 속에 국회 공전 사태가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대안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특히 양당제 폐해가 확연히 드러나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선거구제 개편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2일 쿠키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초당적 청년 정치 그룹과 영호남 등 지역 의원 모임 등을 통해 다당제 실현을 위한 소선거구제 개편 논의가 시작됐다. 매번 총선을 앞두고 나오는 시나리오긴 하나 이번은 분명 다르다는 분위기다.
소선거구제는 한 선거구에서 한 사람의 의원을 선출하는 선거구 제도다. 한국에서는 1988년 제13대 총선 때부터는 소선거구제를 채택해 시행하고 있다. 1등만 당선되는 승자독식적인 구조로 사표가 많아진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직접 정치 참여 확대를 바라는 청년 정치인들이 앞장서서 정치개혁을 위한 아젠다를 제시해 ‘청년 정치’에 관심을 보이던 정치권에 인상 깊은 메시지를 냈다.
초당적 청년 정치모임인 ‘정치개혁 2050’은 지난달 29일 광주광역시의회에서 간담회를 열었다. 첫 번째 개혁 과제로 ‘소선거구제 폐지’에 대해 논의했다. 정당을 초월한 청년 정치인 100여 명이 모여 거대 양당의 소선거구제 체제에 따른 승자독식 구조에 대해 신랄하게 지적했다.
특히 이들은 청년의 목소리가 정치권에 제대로 반영되기 위해서는 선거구제 개편으로 다당제가 실현돼야 한다는 데 상당히 공감했다. 거대 양당에 속한 청년 정치인들도 청년 정치가 정치권에서 실현되기 위해서는 양당제보다 다당제가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정치개혁2050’ 간사를 맡은 이동학 전 민주당 최고위원은 1일 쿠키뉴스와 통화에서 “현재 정치권이 ‘강대강’으로 붙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선택지가 두 개뿐이기 때문이고, 승자독식 구조로 귀결되기 때문”이라며 “누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35년간 했는데 문제가 있다면 변화시킬 필요가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소선거구제 폐지 논의는 과거에 이미 많이 이뤄졌기에 처음부터 그 과정을 밟아갈 필요는 없다”며 국민들에게 실망감을 준 정치권이 어떻게 다시 신뢰를 복원할 거냐에 고민이 있어야 하고 이에 따라서 제도 대안을 설명해나가려고 한다. 그 어느 때보다도 소선거구 폐지 실현 가능성이 크다”고 덧븥였다.
영호남 지역을 기반으로 한 여야 국회의원들도 초당적인 모임을 통해 ‘소선거구제 폐지’ 등 정치개혁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초당적 정치개혁 토론회는 지난 9월 국회에서 ‘정치개혁’을 주제로 처음 열렸으며, 지난달 18일과 25일 각각 광주와 대구에서 관련 토론회를 개최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김종민 의원은 이날 행사 후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다양한 선거제도, 개헌, 지역당·지구당 부활, 당내 민주주의, 시민참여 등 승자독식 정치 극복을 위한 지혜와 열정이 모였다”며 “지역주의와 진영논리에서 벗어난 여야 협치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이번 토론회가 의미가 깊다”고 밝혔다.
또한 올해 대통령 선거 유력 후보들은 선거 과정에서 다당제 실현을 국민께 약속한 바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당시 대선 후보였던 김동연 경기도지사와 단일화하면서 정치교체 선언을 통해 다당제 추진을 밝혔고 이어 민주당 의원총회에서는 ‘다당제 정치개혁안’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또 다당제 신봉자인 안철수 의원도 윤석열 대통령과 단일화하면서 자신의 소신을 깼긴 했지만 “다당제는 소신”이라고 언론에 밝히면서 다당제의 필요성을 다시금 강조했다.
한국 정치에 대해 오랜 기간 연구해온 김태일 장안대 총장(전 영남대 교수)은 1일 쿠키뉴스와 통화에서 거대 양당의 진영정치의 폐해가 여지없이 드러난 현재가 ‘소선거구제 폐지’의 적기임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김 총장은 “잘하기 경쟁이 아닌 상대방이 잘 못 하게 해 반사이익을 보려는 게 소선거구제가 낳은 거대 양당 정치의 폐해인데 지금 그 어느 때보다 그러한 폐해가 드러나고 있다”며 “대선 때만 하더라도 새 정부 출범 후 협치하자고 했었는데 언제 그런 얘기를 했느냐는 듯 헐뜯기 경쟁에 혈안이 돼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여야 정치권이 정쟁으로 정치개혁에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정치개혁을 주도적으로 추진할 주체가 뚜렷하지 않다는 점은 아쉽다고 전했다.
김 총장은 “양당제의 폐해가 확연히 드러나고 있어 선거구제 개편의 적기인 것은 분명하지만 정치개혁에 목소리를 내던 여성계와 시민운동 그룹들의 움직임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며 “정치개혁을 위해서는 분명한 개혁의 주체가 있어야 하는데 잘 보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과거에는 반응하던 국회의원들과 학자들이 선거구제 개편을 통한 정치개혁의 효능감을 낮게 본다는 점은 극복해야 할 과제”라고 부연했다.
황인성 기자 his1104@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