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세 이모씨는 혈압약을 복용한 지 10년이 넘었다. 술, 담배에 밤낮 없이 운전하며 다니는 직업이다 보니 혈압이 좀처럼 안정화되지 않았다. 의사는 가정용 혈압계로 하루 한번 씩 재라고 권유했지만 사는 것부터 실행에 옮기는 게 쉽지 않다. 그는 “‘약 먹으면 혈압이 떨어지니까’하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얼마 뒤 눈앞이 흐려지고 두통이 심하게 와 쓰러진 적이 있다. 악화되기 전 미리 관리했으면 좋았을 텐데 후회했다”고 말했다.
#49세 박모씨는 혈압약을 복용한 지 6년차다. 가정 내 혈압 측정이 중요하다는 의사의 권유에 인터넷을 둘러봤지만 선뜻 구매하기가 망설여졌다. 혈압계 가격이 비싸게 느껴졌기도 하고, 어차피 한 달마다 병원 가서 재는 게 더 정확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는 “결국 딸이 선물해줘서 집에서 혈압을 재기 시작했다. 하루에 두 번 혈압을 쟀는데, 아침과 저녁 차이가 크더라. 상태를 병원에 말하고 약을 바꿔 처방 받았다. 병원에서만 쟀으면 몰랐을 일이었다”고 전했다.
국내 30세 이상 인구 30%가 앓고 있는 고혈압은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만성질환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특히 최근 20대 고혈압 환자가 2017년 대비 2021년 44.4% 증가하는 등 젊은 세대에서도 높은 발병률을 보이며 국내 만성질환 보건지표에도 빨간불이 들어왔다.
특히 우리나라는 고혈압 전단계까지 합칠 경우 국민 절반이 고혈압·고혈압 전 단계에 해당한다. 이는 심뇌혈관질환으로 이어지는 등 국내 주요 사망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만큼 주의 및 사전관리가 요구된다. 이에 관련 학회에서는 가정에서 간편, 정확하게 혈압을 인지하고 관리할 수 있는 ‘가정혈압’에 대한 중요성을 제기해왔다.
이와 관련 지난 11월30일 대한고혈압학회 소속 가정혈압포럼은 30대 이상 고혈압환자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가정혈압 측정 인식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정혈압 측정에 대한 고혈압 환자들의 인식은 긍정적으로 변화했다. 조사 대상 환자의 65.5%가 가정혈압에 대해 인지하고 있어, 5년 전 60.6%보다 더 증가했다. 반면 행동은 눈에 띄게 개선되지는 못했다. 지난 2017년 조사 결과 집에서 직접 혈압을 측정하는 환자는 31.4%였으나, 이번 조사 결과 35.5%로 4%p 늘어났다. 아직 64.5%의 응답자들이 가정혈압을 측정하지 않다는 의미다.
김혜미 중앙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가정혈압은 고혈압의 약물 치료 반응 정도를 평가하는데 도움이 되며, 야간 고혈압 혹은 아침 고혈압, 병원에만 오면 혈압이 달라지는 환자(가면비조절고혈압)들의 여부를 확인하는 데도 필요하다. 제대로 혈압을 조절하지 못하면 심혈관질환 발생이나 표적장기손상 위험이 증가할 수 있어 조기에 찾아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며 “가정혈압 측정을 권고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가정용 혈압계, 제품 다양해도 접근성 낮아…“필요성 못 느껴서” “비싸서”
이번 인식조사 결과, 환자들은 가정혈압을 측정하지 않는 이유로 △가정용 혈압계가 없어서(47.8%) △병원에서 진료 시 측정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서(19.5%) △번거롭고 귀찮아서(13.8%) 등을 꼽았다.
‘가정용 혈압계가 없어서’라는 대답이 무색하게 현재 국내 접할 수 있는 가정용 혈압계 제품만 10군데가 넘는다. 오므론, 인바디, 노이텍, 로즈맥스, 메디텍, 휴비딕 등 다양한 업체들이 더 작고 사용성이 간편한 기기들을 내놓고 있다. 최근 스마트워치도 혈압 측정이 가능해지면서 가정 내 혈압측정 기회도 높아졌다.
평균 가격은 5만~8만원정도로 부담이 느껴질 수 있지만, 한번 구입하면 지속적으로 쓸 수 있고 가족들도 함께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아주 비싼 가격은 아닌 셈이다.
하지만 신뢰도 저하, 필요성 인식 부족 등이 구매 장벽으로 적용된다. 고혈압 환자 중에서는 이미 오랫동안 약을 복용해온 사람들이 많다. 이들에게는 혈압이 오른다고 해서 일상이 불편할 정도의 증상이 느껴지지 않으니 굳이 구매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기 어렵다.
정미향 서울성모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가정혈압을 왜 측정해야 하는지 이유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환자들은 병원에서 혈압 측정만 하더라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며 “대형병원에서는 단순 고혈압 경우 3~6개월에 한번만 방문해 약을 처방받게 되는데 병원에서만 혈압을 재게 된다면 적으면 연 2회, 많아도 연 4회 혈압 측정만으로 혈압을 조절하게 된다. 이것만으로 혈압을 관리하기엔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자주, 그리고 연속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가정혈압 측정이 보다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가정 내 혈압 측정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기기 급여화, 보건당국 교육 강화를 제시했다. 정 교수는 “가격 부담을 느끼는 분들이 있기 때문에 가정 혈압계를 급여화한다면 가정 혈압 측정률을 높이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며 “더불어 보건당국과 의료진 모두 가정혈압 측정의 필요성에 대해 체계적인 교육을 해야 한다. 왜 가정혈압을 측정해야 하는지, 어떻게 가정혈압을 측정하는지, 어떤 혈압기계를 구입하면 좋은지 충분한 설명이 제공돼야 한다”고 밝혔다.
스마트워치를 통한 혈압 측정에 대해서도 긍정적 의견을 보였다. 정 교수는 “현재 웨어러블 기기의 혈압 측정은 정확성이 다소 떨어진다. 아직까지는 기존방식대로 상완에 커프를 감아 혈압을 측정하는 방식이 권유된다”면서도 “다만 향후 정확도 높은 기계가 보편화 된다면 변동성 높은 혈압 수치도 잡아낼 수 있어 더 풍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에 따라 정밀의료, 맞춤형(개별화된) 고혈압 치료가 가능해질 것이라 기대한다”고 전했다.
가정 내 혈압측정을 높이기 위해 업계도 함께 노력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정확도 향상에 목표를 두고 제품 연구 및 개발 투자 확대, 세계적 혈압계 인증기관인 유럽고혈압학회 임상시험에 통과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며 “또한 제품을 알리기 위해 기업과의 협약을 통한 임직원 특별 판매, 다양한 판매처 개척 등 마케팅도 넓히는 추세”라고 말했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