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공무원 피격사건’과 관련해 12시간 반 검찰 조사를 받은 박지원 전 국정원장이 “국정원 문서 삭제되는 걸 알게 됐다”면서 당초 밝혀오던 ‘서버 삭제 불가’ 입장을 바꿨다. 다만 자료를 삭제하더라도 데이터베이스 서버에는 흔적이 남는다면서 삭제 지시 혐의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박 전 원장은 15일 오전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전날 검찰 조사에서 나온 내용을 전하면서 “서버가 하나만 있는 줄 알고 나중에 둘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 업무적으로 활용하는 서버에서는 삭제도 고침도 가능하다는 걸 (어제 조사를 통해) 알았다”며 “지금까지 말해온 것은 틀렸다”고 밝혔다.
박 전 원장은 “데이터베이스 서버에는 그대로 남아있는데 업무용으로 쓰이는 서버는 삭제가 되고 심지어 유효기간이 지난 문건도 자동 삭제가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도 삭제 지시를 한 적은 없다고 항변했다. 박 전 원장은 “국정원은 정책부서가 아닌 첩보·정보를 수집·분석 청와대에 보고, 외교부·국방부·통일부 등 부처를 지원하는 업무를 한다”며 “문재인 전 대통령이나 서훈 전 안보실장으로부터 어떠한 삭제 지시를 받은 적이 없고, 어떤 국정원 직원에게도 삭제 지시한 적도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검찰이 내비친 수사 자료에는 국정원 실무자들이 청와대, 국방부 실무자들과 상호 연결해 삭제했다고 적혀 있었다고 전했다.
박 전 원장은 “언론에 보도됐으니 말하는 것”이라고 단서를 달면서 “청와대 행정관들이 국정원 실무자하고, 또 국정원 실무자와 국방부 실무자들이 상호 연결해 문건을 삭제했다고 돼 있더라. 이에 대한 증거는 못 봤고 그런 조사가 있다고 검사의 말을 들었다”고 설명했다.
결국 박 전 원장의 말을 종합하면, 국정원 메인서버에서 문건을 삭제할 수 있는 기능을 몰랐지만, 전날 조사를 통해 가능함을 확인했다. 또 문건의 삭제를 지시한적도 받은 적도 없지만 검찰은 국정원 실무자와 청와대·국방부 실무자들 사이에서 삭제를 추정한다는 것이다.
박 전 원장은 문재인 전 대통령의 검찰 소환 가능성은 낮게 봤다. 전날 수사에서 문 전 대통령에 관한 질문이나 의문을 제기한 사실이 거의 없었다는 이유 때문이다.
박 전 원장은 “(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조사는)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며 “검찰에서 문 전 대통령에 대한 혐의를 조금이라도 있다고 하면 저한테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고했느냐 여부를 물을 건데 아니었다”고 밝혔다.
이어 “제가 받은 느낌으로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아닌 제 선에서 끝나지 않을까 싶다. 저를 두목으로 보는 게 굉장히 두렵다”고 부연했다.
한편 박지원 전 원장은 지난 2020년 9월 22일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 당시 관련 첩보 보고서 등을 무단 삭제한 혐의(국가정보원법상 직권남용 등)를 받고 있다.
황인성 기자 his1104@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