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도 씹어 먹을 나이’라는 2030 청년들은 무얼 먹고 있을까. 인생에서 가장 건강한 시기라는 선입견이 청년들의 문제적 식탁을 방치하게 만드는지 모른다. 오늘의 입맛은 물론, 내일의 건강까지 생각하는 식습관이 필요하다. 청년들의 식탁을 들여다봤다.
벌건 화산이 폭발하고 뚝배기가 부글부글 끓고 있다. 대학생 이유진(가명·20·여)씨의 배달앱 주문 기록은 ‘빨간맛’ 투성이다. “10월에 마라탕 먹방에 꽂혔거든요. 세어 보니 일주일간 5번을 시켰어요.” 이씨는 멋쩍은 듯 웃었다.
배달 주문한 음식은 이게 다가 아니다. 빙수, 치킨, 연어장 덮밥은 조연이다. 맵고 짠 음식을 먹고 난 뒤 단 음식이 당기는 ‘단짠단짠’ 흐름이다. 결국 이씨는 위염에 걸렸다. “문제는 보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거예요. 매번 유튜버가 먹는 음식을 따라 먹고 있더라고요.”
한 주간 4시간 시청…가장 많이 출연한 음식은
먹방 마니아들은 평소 영상을 언제, 얼마나 시청하고 있을까. 20대 청년 2명의 일주일을 들여다봤다.
강원도 한 대학교 재학 중인 이씨. 현재 기숙사에서 지내고 있다. ASMR(자율감각 쾌락반응) 영상으로 시작해 이제 이 세계에 입문한 지 3년째다. ASMR은 씹는 소리나 빗소리 등 청각에 집중하게 해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느끼게 해주는 콘텐츠다. 구독 중인 채널은 5개다. 일주일(11월26일~12월2일) 동안 하루를 제외하고는 매일 먹방을 봤다. 이씨가 일주일 동안 본 영상은 14개, 총 240분 분량이었다.
인천에 거주하는 박성연(23·여)씨는 중학교 2학년때부터 먹방을 보기 시작했다. 8년이 넘었다. 11월14일~20일까지 일주일 동안 10개의 영상을 봤고 길이는 총 300분이었다. 하루 평균 42분인 셈이다. 혼자 식사할 때나, 잠들기 전이 주요 시청 시간대였다. 시청 이유를 묻자 “외롭지 않다”, “대리만족을 느낀다”, “새로운 메뉴가 나왔는데 시킬지 말지 고민될 때 참고한다”는 답변이 나왔다.
두 사람이 본 영상에 등장한 음식 총 가짓수는 63. 치킨이 9번(14.2%)으로 가장 자주 등장했다. 치킨과 비슷한 류인 닭강정(4번)까지 합하면 총 13번, 20.6%를 차지한다. 마라탕 7번(11.1%), 김밥 7번(11.1%), 라면 6번(9.5%) 순으로 나타났다.
보고, 그대로 따라 먹는다
보면 먹고 싶어지기 마련이다. 이씨와 박씨 모두 영상에 출연한 음식을 똑같이 따라 먹는 패턴이 나타났다. 이씨의 경우 식단 중 샤브샤브(11월26일), 족발(11월27일), 치킨과 불닭볶음면(11월28일), 컵라면과 편의점 김밥(11월29일), 마라탕과 꿔바로우(11월30일)가 이 사례에 해당했다. 박씨는 11월17일 늦은 밤 마라탕 먹는 영상을 한 시간 동안 봤다. 다음날 점심 편의점에서 마라탕면을 구매했다.
눈앞에 음식이 있는데도 충동적으로 또 주문하기도 한다. 영상 하나에 음식이 한 가지만 나오는 경우는 드물다. 여러 음식을 한 상에 차려놓고 먹거나, 브이로그(자신의 일상을 동영상으로 촬영한 영상 콘텐츠)의 경우에는 유튜버가 일주일 삼시세끼 먹은 음식이 줄줄이 이어진다. 종류도 식사, 디저트, 음료까지 풀코스다. 박씨는 “딱히 양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영상을 보다 ‘조합이 좋겠다’ 싶은 디저트가 있어서 밥을 먹다 배달을 시킨 적이 종종 있다”고 설명했다.
먹방에 등장한 음식은 더 이상 그림 속의 떡이 아니다. 유튜버가 페트병이나 공병에 꿀을 채운 후 냉동실에 넣어 얼려 먹기 시작한 ‘꿀젤리’는 이제 마트와 편의점에서 판다. 마라탕 먹방 영상과 함께 중국 당면이 인기를 끌자 국내 기업들은 넓은 당면, 납작 당면을 즉각 내놨다. 배달 서비스도 활성화됐다.
하지만 배달 음식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어떤 식재료가 들어갔는지 먹는 사람은 알 수 없다. 내 입에 뭘 넣고 있는지 모른다는 뜻이다. 영양성분에 대한 정보도 없을 때가 많다. 지난달 한국소비자원이 10개 프랜차이즈 업체 24개 치킨 제품을 분석한 결과, 업체 중 영양성분 정보를 자사 홈페이지에 표시한 건 4개뿐이었다.
건강엔 괜찮을까…나트륨은 과잉·비타민 무기질은 실종
먹방이 좌지우지하는 식단, 영양학적으로는 괜찮은걸까. 기자는 두 사람이 각각 일주일 동안 먹은 음식을 조사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식품영양성분 데이터베이스를 참고해 영양성분을 분석했다. 전문가 자문도 구했다.
식단은 양적 질적으로 모두 부실했다. 먼저 에너지 섭취량을 따져보니 하루 필요한 에너지에 미달했다. 이씨가 하루 평균 섭취한 칼로리는 1615㎉로 20대 여성 하루 권장 칼로리 2100㎉에 미치지 못했다. 박씨의 하루 평균 섭취 칼로리는 941㎉로 권장 칼로리의 절반도 안 되는 44.8%였다.
섭취한 에너지는 적은데 나트륨과 당류는 필요 이상이었다. 일주일간 이씨가 하루 평균 섭취한 나트륨은 약 2769㎎. 성인 하루 권장 섭취량 2000㎎을 훌쩍 넘겼다. 하루 동안 닭갈비크림리조또, 마라탕, 꿔바로우, 초코빙수, 도넛을 먹은 날은 나트륨 섭취가 약 5250㎎에 달했다. 또 일주일 중 3일은 당류 1일 권장량(50g)을 넘겼다. 박씨 역시 나트륨 섭취가 하루 평균 2076㎎로 필요량을 초과했다.
식단을 살펴본 이영은 전 원광대 식품영양학과 교수(전 대한영양사협회장)는 “나트륨 섭취가 과하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외식, 배달 식사가 주 원인으로 보인다. 식습관을 이대로 지속하면 고혈압, 당뇨 등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어 “비타민, 무기질 섭취는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에너지 대사가 제대로 일어날 수 없는 구조”라면서 “신선한 야채, 과일이 절실하다”고 부연했다.
비단 두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얘기는 아니다. 먹방이 체중, 더 나아가 입맛에도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2019년 정복미 전남대 식품영양학부 교수팀이 성인 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일주일 먹방 시청 시간 14시간 미만 보다 14시간 이상에서 남녀 모두 유의미하게 체중이 높게 나타났다. 체질량지수(BMI)가 14시간 이상 시청한 남성이 24.4kg/㎡, 여성 24.1kg/㎡로 세계보건기구(WHO)의 아시아·태평양 기준, 모두 과체중 범위였다. 또 시청 시간이 긴 집단은 주로 탄수화물 식품과 육류에 대한 기호도가 높았다. 반면 시청 시간이 짧으면 채소와 과일류를 더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