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짓날 왜 팥죽을 먹을까 [맛좋은 칼럼]

동짓날 왜 팥죽을 먹을까 [맛좋은 칼럼]

이성희 푸드칼럼니스트

기사승인 2022-12-21 00:04:05
22일은 24절기 중 스물두 번째 절기인 동지(冬至)다. 동지는 글자 그대로 겨울에 이르렀다는 뜻으로 일 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우리 선조들은 붉은색을 띤 팥을 태양, 불, 피 같은 생명의 표식으로 여겼고 음의 기운을 물리치기 위해 동짓날 팥죽을 쒀 먹었다.

생일날에 수수팥떡을 하는 이유와 이사를 하거나, 가게의 고사를 지낼 때 팥으로 된 떡이나 음식을 하는 이유도 나쁜 기운을 물리치고 좋은 기운을 받아들이기를 바라는 의미가 있다.

동지팥죽.

동지의 유래를 살펴보면, 24절기는 태양력에 의해 자연의 변화를 24등분하여 표현한 것이며, 태양의 ‘황경(黃經)’이 270도에 달하는 때를 ‘동지’라고 한다. 동지는 셋으로 구분한다. 동지가 10일 안에 들면 ‘애동지’, 20일 안이면 ‘중동지’, 20일 이후면 ‘노동지’라고 불렀다.

동지부터 해가 조금씩 길어지듯이 노인에게 기운이 돌아오라는 뜻으로 목이 긴 버선을 지어 바치기도 했다. 이것을 ‘동지버선’이라 한다. 목숨이 길어지는 장수의 의미다.

동지는 밤이 길고 날씨가 춥기 때문에 호랑이가 교미를 하는 날이라 해서 `호랑이 장가가는 날`로 불리기도 했으며 눈이 많이 내리고 추우면 풍년을 알리는 징조로도 여겼다.

동지는 일 년 중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길어 음(陰)이 극에 이르지만 이날을 계기로 낮이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여 양의 기운이 싹트기 때문에 사실상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이다.

중국의 '역경'에는 태양의 시작을 동지로 보고 복괘(復卦)로 11월에 배치하였다. 따라서 중국의 주나라에서는 11월을 정월로 삼고 동지를 설로 삼았다. 이러한 중국의 책력과 풍속이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으로 보인다.

옛사람들은 이날을 "태양이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는 날"로 생각하고 경사스럽게 여겨 속절로 삼았다. 이것은 동지를 신년으로 생각하는 고대의 유풍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통사회에서는 흔히 동지를 "작은 설"이라 하여 설 다음가는 경사스러운 날로 생각하였다.

그래서 옛말에 "동지를 지나야 한 살 더 먹는다" 또는 "동지 팥죽을 먹어야 한 살 더 먹는다"라는 말이 전하기도 한다. 경상도에서는 팥죽을 쑤어 삼신, 성주께 빌고, 모든 병을 막는다고 하여 솔잎으로 팥죽을 사방에 뿌린다.

경기도 지방에서는 팥죽으로 사당에 차례를 지낸 후, 방을 비롯한 집안 여러 곳에 팥죽 한 그릇씩 떠놓기도 한다. 지방에 따라서는 전염병이 유행할 때, 우물에 팥을 넣으면 물이 맑아지고 질병이 없어진다고 한다.

국산 팥.

우리나라 속담에 ‘동지 지나 열흘이면 해가 노루꼬리만큼씩 길어진다’란 말이 있다. 동지가 지나면 해가 조금씩 길어지는 것을 노루꼬리로 비유한 것이다.

‘‘동지가 지나면 푸성귀도 새 마음 든다" 이 말은 추운겨울 몸을 움츠리고 있던 각종 푸성귀들이 동지가 지나면 다가올 봄을 기다리며 마음을 가다듬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동짓날 팥죽 한 그릇은 일 년 열두 달 보약보다 낫다’는 속담도 있다. 동지 음식 동지팥죽동지에는 절식(節食)으로 "동지팥죽" 또는 "동지두죽(冬至豆粥 )"이라 하여 팥죽을 쑤어 먹는 오랜 풍속이 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11월조에 의하면, "동짓날을 아세(亞歲)라 하여 팥죽을 쑤어 먹는데, 팥죽을 쑬 때 찹쌀로 새알모양으로 빚은 속에 꿀을 타서 시절음식으로 먹는다 또한 팥죽은 제상에도 오르며 팥죽을 문짝에 뿌려 액운을 제거하기도 한다" 는 기록이 있다.

동짓날에는 팥죽을 찹쌀로 단자를 새알만큼씩 만들어서 죽을 쑨다. 이 단자를 "새알심"이라고 한다. 팥죽을 끓여서 먼저 사당에 올리고, 그 다음에 집안 곳곳에 팥죽 한 그릇씩 떠놓은 후에 집안 식구들이 모여 팥죽을 먹는다.

팥죽에 새알심을 넣어 먹는 것은 염제 신농씨의 자손이란 의미다. 염제는 방향성에서 남쪽을 뜻하며 남쪽을 대표하는 동물 붉은 봉황(주작)이다. 새알심은 원래 동이새족(소호금천씨 족)으로부터 비롯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고려 때까지만 해도 ‘새’는 ‘해’를 뜻했다. 동이새족은 곧 난생설화를 가진 동이겨레를 이르는 말이다. 건국신화가 알에서 시작하는 고구려의 주몽, 신라의 박혁거세, 가야의 김수로왕 등이 동이새족에 해당된다고 한다. 새의 알이든, 곡식의 알이든, 남자의 알이든 알은 생명탄생의 전(前)과정이다. 그래서 동짓날에 죽었던 해가 다시 태어나라는 소생의 의미에서 ‘새알’ 또는 ‘해알’과 같은 옹심을 넣어 먹었다.

또 나이만큼 새알을 먹게 됐고 한 살 더 먹는 사람들이 새해 첫날 동녘에서 붉게 떠오르는 해맞이를 했던 것이다. 왜 하필 동짓날 팥죽을 먹나 하지만 왜 하필 동짓날 팥죽을 먹는지 또 귀신은 왜 팥의 붉은색을 싫어하는지 등 몇 가지 의문이 생긴다. 사실 동짓날 팥죽을 먹는 것은 우리만의 풍속은 아니다.

새알팥죽과 밥알팥죽.

우리나라에서 동지팥죽을 먹게 되었다는 첫 기록은 고려시대 때부터 등장한다. 고려말기의 학자 이제현의 시문집 '익재집(益齋集)'에는 '동짓날은 흩어졌던 가족이 모여 적소두(赤小豆)로 쑨 두죽(豆粥)을 끓여 먹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중국의 동지팥죽의 기원은 6세기 초 중국 양나라 때 종름이 쓴 현존하는 중국 세시기 중 가장 오래된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나온다. ‘동짓날 해의 그림자를 재고 팥죽을 끓인다. 역귀를 물리치기 위해서다’ 이유는 이렇게 적혀 있다.

‘공공씨(共工氏)에게 재주 없는 아들이 있었는데 동짓날 죽어 역귀가 됐다. 팥을 무서워했기 때문에 동지에 팥죽을 끓여 귀신을 물리치는 것이다’ 공공씨는 고대 중국 신화에서 강을 다스리는 신이다. 황허강이 범람하는 것도 공공씨가 심술을 부리기 때문이다. 그 아들이 죽어서 역귀가 됐는데 역귀란 그냥 귀신이 아니라 전염병을 퍼뜨리는 귀신이다.

그리고 역귀가 무서워한 것도 팥의 붉은색이 아니라 팥 그 자체다. 아마 팥의 영양분을 무서워했을 것이다. 귀신을 물리치려고 팥죽을 먹는다는 풀이는 형초세시기에 나오는 주술적인 묘사만 강조한 것이다. 귀신은 왜 팥의 붉은색을 싫어하나 조선왕조실록에 영조 임금이 ‘귀신을 쫓는다며 문에다 팥죽을 뿌리는 공공씨의 이야기는 정도에 어긋나는 것이니 그만두라고 했음에도 아직도 계속되고 있으니 잘못된 풍속을 바로 잡으라’는 기록이 있다.

그래도 동지팥죽의 유래에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아직 남아 있다. 왜 하필 동짓날에 그것도 팥죽을 먹어야 했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풀이가 있지만 동지팥죽을 설날 먹는 떡국처럼 새해에 먹는 음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는 해석이 유력하다.

사마천도 사기(史記)에 동지는 태양이 되돌아와 봄이 시작되는 날이라고 풀이했으니 곧 새해의 시작이다. 다시 말해 양기가 되살아나는 날이다. 이날 먹는 음식이 팥죽이었으니 ‘영조실록’에도 ‘동짓날 팥죽은 양기가 되살아나는 것을 기원하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동지팥죽 유래는 화합과 결속의미도 담겨 팥죽은 고대의 새해인 동짓날에 먹는 신년음식으로 새해의 공통소망인 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오래 살게 해달라는 소원이 담겨 있다. 동지팥죽을 먹고 나쁜 귀신을 쫓아 액땜한다는 의미 역시 새해에는 전염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살게 해 달라는 기원으로 해석한다.

동지는 음성인 귀신이 성하는 날이어서 양(陽)의 기운이 왕성한 붉은 팥죽이 귀신을 물리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동짓날 팥죽으로 먼저 조상께 제사지내고 난 다음 집안 곳곳에 팥죽을 한 그릇씩 놓아둔다. 또 팥죽을 대문이나 벽에 뿌리면 재앙을 면하고 귀신을 쫓아낸다고 믿었다. 팥죽을 먹는 풍습에는 풍성한 한 해 농사를 기원하는 의미도 담겨 있다. 동지를 기점으로 낮이 점점 길어지기 시작하는데 이는 곧 농사가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동지에 팥죽을 먹는 것은 이웃과 가족이 같은 음식을 나누어 먹으면서 새해에 건강하고 액을 면할 수 있기를 기원하는 정성도 깃들여 있다. 팥죽은 동지에만 먹는 음식은 아니다. 조상들은 집을 이사하거나 새 집을 지었을 때도 팥죽을 쑤어서 귀신을 몰아내고 평안을 기원했다. 초상집에 갈 때는 팥죽을 쑤어가 잡귀를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게도 하였고 전염병이 돌면 팥죽을 길에 뿌려 병마를 내몰았다.

여름삼복에 팥죽을 쑤어 먹는 풍습이 있어 복죽(伏粥)이라고도 하였다. 특히 겨울철의 별미음식으로 점심 또는 간식으로 먹었으며, 주막이나 행인의 내왕이 많은 길목에는 팥죽을 파는 집이 있어서 요기음식으로도 널리 보급됐다.

새알심이 들어간 팥죽.

이처럼 동지팥죽은 한 해의 마무리를 잘하고 새해 농사의 풍작과 가정의 무고를 바라는 조상들의 마음이 담겨 있는 따뜻한 음식으로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팥은 건강에 좋은 음식으로 각종 비타민과 칼륨, 식이섬유 등이 풍부하게 들어있어 해독과 피로회복에도 좋다.

특히 쌀을 주식으로 하는 한국인에게 부족할 수 있는 비타민 B1과 칼륨이 많이 함유되어 있다. 비타민 B1에는 뇌세포를 활성화하는 성분이 들어있기 때문에 수험생이나 직장인들에게 도움을 준다.

칼륨은 나트륨을 소변으로 배출하는 효능이 있으므로 혈압관리에도 효과적이다. 연말에 술로 인해서 약해진 장을 가진 분들이 먹기에도 부드러워 좋다. 굳이 민속적인 의미가 아니라도 팥죽은 충분히 건강에 좋고 맛도 좋아 가족들이 함께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요즈음 젊은이들은 밸런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는 챙겨도 동짓날 같은 우리의 명절에는 관심이 없는 듯해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말이 있다. 옛것을 알고 그것을 통하여 새로운 것을 창조하게 되는 것이다. 이번 동짓날엔 가족과 함께 동지팥죽을 먹으며 동지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가정의 행복을 빌어보자.
명정삼 기자
mjsbroad@kukinews.com
명정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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