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두통으로 고통 받는 청년…“보험 희망고문 더 괴롭다”

편두통으로 고통 받는 청년…“보험 희망고문 더 괴롭다”

엠겔러티, 아조비 잇따라 급여…기준 까다로워 건강보험 적용 ‘그림의떡’
20대 편두통 환자 박기한씨, 직접 청원글 올려 “기준 완화”
올 9월 엠겔러티 급여 기준 재평가에 ‘기대’

기사승인 2023-01-18 13:00:02
강남역 인근 카페에서 만난 박기한씨(27·남)는 이 날도 편두통으로 밤을 새고 인터뷰에 참여했다. 항상 들고다니는 약통 안에는 2가지 이상의 두통 급성 완화제가 들어있다. 상비약으로도 안되는 날에는 급하게 근처 내과에 방문해 별도의 약을 처방받기도 한다.   사진=박선혜 기자

국민의 약 10%는 편두통을 앓고 있다. 편두통 환자 중 소수는 어떠한 먹는 약에도 효과가 없는 난치성 편두통 환자로 분류된다. 어떤 병용요법을 써도 머리가 깨질듯한 통증, 구역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들에게 유일한 희망은 칼시토닌 유전자 관련 펩티드(CGRP) 주사형 치료제뿐이다. 하지만 항CGRP 치료제는 비급여로 1년에 약 600만원을 부담해야 한다.

다행히 지난해 9월 한국릴리의 ‘앰겔러티120㎎/밀리리터프리필드펜주,시린지주(성분명 갈카네주맙)’를 시작으로 올해 1월1일 한독의 ‘아조비(성분명 프레마네주맙)’가 급여권에 들어섰다. 급여를 적용받을 경우 환자는 1회에 약 30만원을 부담하게 된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약을 가장 기다리던 만성 편두통 환자들이 오히려 급여기준을 통과하지 못해 좌절을 겪고 있다. 까다로운 기준 탓에 급여를 받으려면 약을 6개월 동안 끊어야하거나, 이전에 효과를 보지 못한 약들을 다시 복용해야 하는 상황이다.

“45일 중 27일 머리가 깨질 것 같은 통증을 시도 때도 없이 느껴요. 어느 날 나타난 항CGRP 치료제가 저에게 살아갈 희망을 줬어요.”

지난 16일 쿠키뉴스와 만난 박기한씨(27·남)는 2011년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편두통 증상을 겪었다. 초반 신경과와 이비인후과 사이에 진단이 엇갈려 제대로 진단받는데 1년 반이 걸렸다. 결국 편두통과 메니에르 질환 모두 앓고 있는 것으로 진단 받았고, 메니에르병은 수술을 받아 완치됐지만 편두통은 낫지 않았다. 

박씨는 “가장 많이 나타나는 증상은 눈이 빠질 것 같은 느낌이다. 가끔 눈앞에서 플래시가 팍 터지거나 밝은 빛 보면 머리가 미친 듯이 아파올 때가 있다”며 “성인이 되서도 집이나 사무실에서도 머리가 아프면 주변 사람들에게 부탁해서 불을 좀 꺼달라고 부탁할 때도 있다. 빛과 소리, 냄새, 온도에 모두 예민해진다. 어지러운 건 물론이고 토하거나 구역감 등도 동반된다”고 설명했다.

성인이 되고나서는 모든 약이 듣지 않는 시점이 왔다. 2018~2019년쯤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고 가족문제로 완전 정신이 나가 있던 시점이 있었다. 통증은 점점 심해지고, 우울증 약까지 복용하면서 그는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45일 동안 간격 상관없이 27일간 통증을 겪었고, 그 중 16일은 급성 통증완화제를 먹어야만 증상이 완화됐다. 

그는 “그러다 2020년 3월4일 엠겔러티 심의 통과 소식을 듣자마자 병원으로 향했다. 주사제마저 효과가 없으면 죽음 밖에 안남은 것이라 생각했다. 가족도 나도 모두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라며 “앰겔러티를 첫 투약하고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21일간 편두통을 느낀 건 단 4일 뿐이었다. 제대로 일을 시작할 수 있었고,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박기한씨의 두통일기.   독자 제공

하지만 약값이 발목을 잡았다. 이제 막 일을 시작했는데, 매달 50만원 이상씩 약값으로 부담해야 하니 돈을 모으기란 쉽지 않았다. 기다리던 급여가 됐어도 실망감만 컸다. 병원측에 따르면 까다로운 기준 때문에 급여를 받을 수 있는 환자는 손에 꼽을 정도다. 특히 기존 앰겔러티를 투약했었던 환자들에 대한 급여 가이드라인도 없었으며, 아조비 투약 환자가 교체 투여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도 없는 상황이다. 이에 박 씨는 지난해 12월 직접 청원을 내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급여 기준의 부당함을 알리고자 했다.  

박씨는 “엠겔러티나 아조비의 급여기준을 보면 환자가 반드시 먹어야만 하는 약을 6개월이나 끊어 다시 확인을 해야 한다. 약을 끊으면 당장 회사 다니기가 어렵다. 게다가 약의 급여 기간이 단 1년인데 이를 위해 지옥 같은 6개월을 보내야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고 토로했다.

이어 “최근 6개월 이상 월 15일 이상의 두통과 3가지 약제에 대한 8주 이상 최대 내약용량의 투약 내용이 제일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특히 만성 편두통환자들은 이미 최대 용량의 약을 거쳐 온 사람들이다. 약물들이 오로지 편두통을 위한 약도 아니고 항우울증, 뇌전증, 혈압약 등인데, 이를 다시 최대 용량으로 복용하라는 건 몸에도 가혹한 일이다. 의사도 우려를 표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심평원에 이런 문제를 따진 적이 있는데, 당시 심평원 담당자가 ‘부작용, 금기 아니면 먹어도 되잖아요’라고 말해 분노를 삼킨 적이 있다”고 밝혔다.

박씨는 앞으로도 급여 기준 완화를 위해 목소리를 낼 계획이다. 통증으로 일어서기도 어려웠던 지난 날들, 27살 이제야 사회에 발을 내딛은 만큼 앞으로를 살기 위해 해당 치료제가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는 “올해는 다른 두통환자들이 함께 목소리 내줬으면 좋겠다. 다른 질환처럼 커뮤니티끼리 연대해서 뭔가를 보여줄 수 있기를 바란다. 어떻게 보면 극성맞은 환자가 됐는데, 나같은 환자가 더 많이 나와야한다고 생각한다. 서로 이해해주는 곳은 이런 곳이 되지 않을까”라며 “좋은 치료약이 있어도 형편이 안 되서 좌절할 때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가족들이 도움을 줘서 너무 고맙다고 얘기하고 싶고 그런 절망을 남들은 안 느꼈으면 좋겠다”고 언급했다.

박기한씨는 인터뷰 도중에도 편두통으로 어지러움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친절하게 인터뷰에 응대해줬다. 그는 약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면서도 좀 더 많은 환자가 쓸 수 있도록 급여 기준을 제대로 정해줘야 한다는 점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별도로 증상 완화를 위해선 자기 노력도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최근 한 달 만에 6kg을 감량했다. 체중을 줄이면 편두통도 줄일 수 있다는 말에 식단도 열심히 관리한다.   사진=박선혜 기자

학회도 환자도 ‘9월 급여기준 재평가’ 기대 ↑

현재 앰겔러티와 아조비 급여 기준 모두  △최소 1년 이상 편두통 병력이 있고 투여 전 최소 6개월 이상 월 두통일수가 15일 이상이면서 그 중 한 달에 최소 8일 이상 편두통형 두통 환자여야 한다. 

또한 △투여 시작 전 편두통장애척도(MIDAS)가 21점 이상이거나 두통영향검사(HIT-6)가 60점 이상이면서 △최근 1년 이내에 기존 3종 이상의 편두통 예방약제에서 치료 실패를 보인 환자여야 하고 △치료 실패는 각 약제의 최대 내약 용량으로 적어도 8주 이상 투여에도 월 편두통 일수가 50% 이상 감소하지 않거나, 부작용 또는 금기로 사용할 수 없는 경우로 한정한다.

모든 조건에 충족해야 하다보니 실제로 급여 기준을 받는 환자는 거의 없다. 대한두통학회에 따르면 세브란스병원의 경우 전체 두통환자의 35%가 앰겔러티 혹은 아조비를 투여 중이지만, 이 중 보험급여 환자는 1명이다. 다른 병원들도 보험을 적용받는 환자는 전체 환자의 1/100이하 수준이다.

주민경 세브란스병원 신경과 교수는 “치료 옵션은 넓어졌지만 지원 받을 수 있는 환자 수는 그대로다. 여러 환자들이 이번 결과에 대해 격분하고 있다”며 “학회에서는 환자 홈페이지에 정보, 유튜브 등 급여기준을 올려 설명하고 있다. 기준 완화를 위해서도 학회 차원에서 토론회, 기자간담회 등을 준비 예정이며 개인적으로도 진행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어 “엠겔러티 경우 올해 급여등재 1년이 돼 급여기준 재평가가 진행될 것으로 안다”며 “그 전까지 학회와 환자단체가 목소리를 내 급여 기준이 완화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논의가 된다면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고 전했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

박선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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