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환자를 살리려다 발생한 사고에 대해 형사소송 부담을 줄여주는 ‘필수의료 사고처리 특례법’(가칭) 제정을 검토한다. 갈수록 심화되는 필수의료 전공의 기피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서다.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는 26일 오후 3시 서울 중구 코리아나 호텔에서 만나 의료현안 협의체 간담회를 시작한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과 이필수 의협 회장은 △지역의료 지원책 개발 △필수의료 육성 및 지원 △전공의 수련 환경의 실질적 개선 등에 대해 매주 논의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의협에 따르면 필수의료 사고처리 특례법은 고위험 수술과 응급환자 치료, 분만 등 국민 생명과 직결된 진료 중 의료사고가 나더라도 의사의 중대과실이 아니라면 형사처벌을 가하지 않는 내용이 골자다.
필수의료 사고처리 특례법은 최근 의료진이 전원 무죄 판결을 받은 이대목동병원 신생아중환자실 사건으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지난 2017년 12월 이대목동병원 신생아중환자실(NICU)에 입원한 환아 4명이 시트로박터 프룬디균에 감염돼 패혈증으로 연달아 사망한 사건이다. 의료계에서는 무리하게 의료진을 기소하면서 전공의들 사이에서 소아청소년과가 기피과로 전락했다고 본다.
의협 이 회장은 지난 2일 신년사를 통해서도 “아직 필수의료 분야의 가장 큰 기피 원인인 고위험 진료에 대한 부담과 법적 분쟁에 대한 걱정을 해소하는 것이 시급하기에 의협은 필수의료 사고처리 특례법(가칭) 제정을 추진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필수의료 범위가 명확하지 않고, 국민 정서상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과제가 아직 남았다. 지난달 21일 국회에서 전혜숙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최로 열린 ‘필수의료 사고처리 특례법 제정 토론회’에서 법무법인 세승 조진석 변호사는 “형사법은 명확성이 중요한데 필수의료 범위를 어떻게 정할지, 진료행위는 어디까지로 봐야할 지 규정하기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특례법 제정이 필수의료 공백을 막을 수 있을지 명확한 근거가 없다는 점도 한계다.
복지부는 아직 특례법 제정에 대해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입장이다. 복지부는 그동안 다른 직역과 형평성, 국민 법감정 등을 들어 부정적 입장을 취해왔다. 박미라 복지부 의료기관정책과 과장은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아직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동안 밝혀온 입장이 변한 것도 아니다”면서 “별도 제도를 도입할지, 혹은 현행 제도를 개선할지 여부를 포함해 필수의료 범위 등 여러 쟁점을 의료현안 협의체에서 살펴봐야 한다. 일반 국민 눈높이에서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전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필수의료 공백을 해결하기 위한 본질적 해결책으로 보기는 어렵다”면서 “민간 대형병원들은 연간 수백억원씩 흑자를 내면서도 필수의료 인력을 고용하지 않는다. 다른 과에 비해 돈이 덜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지금도 의료과실 발생으로 의사를 고발하더라도 처벌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지 않다. 의료인과 일반 시민 간 정보 비대칭성 때문에 환자가 입증하기 어려운 구조”라며 “일반 시민이 의사들에게 더 유리하게 법을 바꾸려는 시도를 납득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봤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