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과점 체제를 깨겠다며 팔을 걷었다. 보험사, 증권사, 카드사 등 제2금융권이 은행 영역에 진입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정부 취지대로 소비자 편의 증대 효과로 이어질 지는 미지수다. 금융권에서는 ‘은행 때리기’가 지나치다는 목소리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은행권 때린 尹대통령…금융위 “실질적 경쟁 촉진 필요”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대표적인 은행 영역인 지급 결제, 예금·대출 분야에 보험사와 증권사 등 비은행 금융사가 진입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금융감독원과 금융위원회는 지난 22일 열린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 첫 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을 언급했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회의에서 “예금·대출 등에 있어서 실질적인 경쟁이 촉진될 수 있도록 은행권 뿐만 아니라 보험, 증권, 저축은행 등 다른 금융업권의 적극적인 동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앞서 금융당국은 이 TF를 통해 △은행권 경쟁촉진 및 구조개선 △성과급, 퇴직금 등 보수체계 △손실흡수능력 제고 △비이자이익 비중 확대 △고정금리 비중 확대 등 금리체계 개선 △사회공헌 활성화 등 6개 과제를 검토 및 논의한다고 밝혔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 지시에 따른 것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15일 제13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금융과 통신 분야는 서비스의 공공재적 성격이 강하고 정부 특허에 의해 과점 형태가 유지되고 있다”면서 “은행들이 예금과 대출금리를 책정할 때 과점적 지위를 활용해 손쉽게 이자수익을 냈다는 지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은행산업의 과점 폐해가 크다”면서 “실질적 경쟁 시스템 강화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증권업계 숙원 법인지급결제 허용…이번에는?
5대 시중은행의 지난해 국내 점유율은 예금 시장의 74.2%, 대출 시장의 63.4%다. 은행은 예대금리차로 이익을 얻는다. 예대금리차는 예금금리와 대출금리 차이를 말한다. 지난해 KB국민은행 9조2910억원, 신한은행 8조2052억원, 하나은행 7조6087억원, 우리은행 7조4178억원, NH농협은행 6조9383억원을 이자수익으로 벌어들였다. 5대 시중은행의 이자수익은 총 39조3890억원으로 2021년 32조9813억원보다 6조4077억원(19.4%) 늘었다. 이들 은행은 성과급 지급으로 따가운 눈총을 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연일 윤 대통령과 금융당국 압박을 받고 있다.
금융당국은 은행의 지급 결제, 대출, 외환 등 업무를 대형 증권사와 보험사, 카드사, 저축은행 등도 영위할 수 있게 ‘스몰 라이선스(인가 세분화)’를 내어주는 방식을 검토 중으로 알려졌다. 특히 법인 지급 결제 허용에 대한 요구가 높다. 법인 지급 결제는 기업이 제품 구매대금을 결제하거나 임직원에게 월급을 송금하는 등 은행 법인 계좌를 거쳐 지급 결제하는 서비스다. 현재 증권사는 법인지급결제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법인은 은행 가상 계좌를 거쳐야 이체 업무를 할 수 있다.
법인지급결제 허용은 증권업계 숙원사항이다. 증권사 지급결제업무 허용 방안이 포함된 ‘자본시장통합법’이 지난 2007년 국회에서 통과됐지만 증권사에 개인 고객에 한해서만 지급결제 업무만 간신히 허용됐다. 이후에도 증권계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며 지급결제 업무의 확대를 요구했지만 은행권 등에서 자금시장 불안정을 초래하고 결제안정성 확보도 미흡하다는 논리로 제동을 걸어왔다. 하지만 증권사가 법인 지급 결제 서비스를 시작하게 되면 기업 계좌 유치 경쟁이 활발해질 전망이다. 금융당국은 시장에 ‘메기’를 투입해 경쟁을 촉진하고, 그 혜택이 소비자들에게 돌아가게 한다는 구상이다.
“신중히 접근해야”…“본인들 해온 일 부정하나” 토로도
한 증권계 관계자는 “은행 핵심업무를 제외하고는 다양한 사업체에서 할 수 있도록 규제를 푸는 것이 전세계 추세”라면서 “경쟁이 촉진되면 당연히 소비자 편의가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결국에는 금융위, 한국은행, 금융결제원이 키를 쥐고 있다”면서 “과거에도 계속 논의가 됐다가 진도가 안 나갔는데 이번에는 조금 더 가능성이 보인다.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권오인 경제살리기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국장은 “은행 고유 업무 문턱을 낮춘다고 해서 얼마나 소비자들에게 편익이 돌아올지는 미지수”라며 “인터넷전문은행 사례를 보면 은행업 경쟁 촉진과 금융소비자 편익 증진이 도입 취지였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고신용자 중심 대출이라는 정부 기대와 다른 결과가 나오지 않았나”라고 반문했다. 이어 “자칫 소비자 피해, 금융 사고로도 이어질 수 있는 문제인 만큼 섣부른 규제 완화가 아닌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금융당국과 정치권에서 연일 은행 압박 수위를 높이는 데 대한 토로도 나왔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일단 과점체제라는 말에 동의하기 어렵다”면서 “지금도 다른 4대 시중은행뿐만 아니라 특수은행, 수많은 지방은행, 인터넷은행과 경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관치금융은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다”면서 “그동안 금감원, 금융위 관리와 개입 하에 은행 산업이 이뤄졌는데 이제와 은행을 ‘공공의 적’으로 만들고, 매우 문제 있는 조직으로 만들고 있다. 본인들이 그동안 해왔던 일을 부정하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