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체됩니다!”, “결국 이렇게 마무리.”
국내 ‘발로란트’ e스포츠 팬들은 지난 2월 13일부터 3월 4일까지 브라질에서 열린 ‘2023 발로란트 챔피언스 투어 락//인 상파울루’ 중계를 보다가 귀를 의심했다. 프로스포츠 중계에서 ‘꽂힙니다’, ‘헛칩니다’ 등 고막을 시원하게 두드리는 강렬한 샤우팅(Shouting)과 멘트로 유명한 정용검 캐스터가 중계를 맡아서다. 그는 대회 막바지까지 특유의 텐션과 부드러운 진행으로 안정적인 중계를 선보이며 호평 받았다.
지난 2011년 MBC 스포츠 플러스에 입사한 그는 올해로 13년차 베테랑 캐스터다. 프로농구와 프로야구,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중계 등을 맡아 현장의 감동을 전하던 그는, 지난해 5월 프리랜서를 선언했다. 현재는 프로스포츠 중계뿐만 아니라 ‘최강 야구’와 같은 예능프로그램에도 출연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가 발로란트 중계에 뛰어든 이유는 단순하다. 발로란트가 좋아서다. 평소 다양한 게임을 즐기는 그는 지난해 발로란트를 처음 접하고 매력에 빠졌다. 8일 서울 상암동에서 만난 정 캐스터는 “나는 내가 즐겁지 않은 일은 안 하는 사람”이라며 “발로란트 중계는 내가 재미있고 좋아서 하는 것”이라고 웃었다. 그는 “스케줄이 되는 한 계속 중계를 하고 싶다”며 “내가 느끼는 즐거움을 시청자 분들에게도 전달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래는 정 캐스터와의 일문일답이다.
발로란트 중계에 뛰어들게 된 계기, 과정이 궁금하다
작년부터 조금씩 취미 삼아 발로란트를 플레이 했다. 그러다 중계를 보게 됐는데 (채)민준이가 나오더라. 당시 중계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크게 없었는데, 라이엇 측에서 먼저 제안을 주셨다. 아는 선배가 라이엇에 있어서 내가 평소 발로란트를 즐기는 걸 알고 있었다. 현재 프리랜서 신분이기도 하고 내가 즐겨 하는 게임이기도 하니 중계를 할 수 있겠다 싶어서 뛰어들게 됐다.
평소 게임을 즐기는 편인가?
원래 ‘메달 오브 아너’를 시작으로 ‘레인보우 식스’까지, FPS(1인칭 슈팅게임)를 조금씩 했었다. 내가 ‘스타크래프트 세대’이다 보니 ‘스타크래프트’도 즐겨했다. ‘배틀그라운드’도 했는데 모바일로 오히려 많이 즐겼다. 한 때 MBC 스포츠 플러스가 ‘오버워치’를 중계할 땐 오버워치도 해보려 했다. 그런데 30대에 접어들어 게임을 하려 하니 속도감이 너무 빠르더라(웃음). 사실 내 이름이 용검이고 오버워치 내 영웅 ‘겐지’의 스킬 이름도 ‘용검’이라 이 때 한 번 e스포츠 중계를 할 뻔도 했는데, 야구와 농구 쪽 PD들이 안 된다고 만류해서 중계 마이크를 잡진 못했다.
발로란트 캐스터 데뷔까지 어떻게 준비했나?
중계를 맡기로 한 뒤 민준이가 중계하는 걸 보니 너무 어려워서 ‘내가 잘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 일반 유저일 때와 게임을 중계해야 하는 캐스터는 다르지 않나. 그래도 프로 스포츠 중계와 e스포츠 중계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결국 눈에 보이는 플레이를 말로 풀어서 잘 설명하는 게 중요하다. 선수, 요원들의 이름 등을 집중적으로 찾아보고 공부했다. 다른 e스포츠 캐스터 분들이 어떻게 중계를 하는지도 꼼꼼히 살폈다. 그러면서 내 중계 방향성을 잡아갔다.
데뷔하는 날엔 미리 부조정실을 찾았다. 나도 방송을 10년을 했는데, 신입처럼 선배들이 하는 걸 지켜봤다. 부조정실에서 중계를 지켜보면 도움이 많이 된다. PD, 기술 감독들이 어떤 얘기를 하면서 중계하는지를 들으면 시스템이 돌아가는 구조를 대충 알 수 있다.
실전으로 경험한 e스포츠 중계는 어땠나?
내가 중계했던 스포츠 중엔 농구가 가장 템포가 빠른 종목이다. 그런데 발로란트는 비교가 안 되게 빠르다. 옵저버에 의해 화면이 이동하는 것도 따라가기가 쉽지 않더라. 준비를 많이 한다고는 했지만 개인적으론 한 번의 실전에서 가장 많은 도움을 받았다. ‘챔피언스 투어’를 몇 번이고 봤지만 정인호 위원과 함께 중계하면서, 설명을 들으면서 중계한 것이 훨씬 유익했다.
기존 중계 방식과 차별점을 둔 부분이 있나?
일반적인 스포츠 중계는 텐션의 높낮이를 조절해야 한다. 그런데 e스포츠는 모니터링을 해보니 어느 정도 텐션을 유지해야 되더라. 그것만 조금 신경 썼다. 사실 내 기본 텐션이 높은 편이라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아참, 그리고 최대한 아는 척을 안 하려고 했다. 틀린 얘기를 하면 ‘쟤 뭐야, 알지도 못하면서 여긴 왜 왔어’라는 소리를 팬들에게 들을까봐(웃음).
‘꽂힙니다’, ‘헛칩니다’ 등 단순하지만 강렬한 멘트로 유명하다. 노하우가 있나?
라이엇에 있다는 선배가 예전에 내게 조언을 해준 게 있다. 멋진 미사여구를 사용하기보다 보이는 대로 1차원적인 용어를 써서 사람들에게 감정을 전달하면 좋겠다는 거다. 다른 선배님들이 미사여구를 멋있게 붙이는 걸 보면서 고민이 많았는데, 어느 날 농구 중계를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SK 경기였는데 김선형이 멋진 플레이를 보여주자 내가 홀로 ‘김선형, 김선형, 김선형’ 거리고 있더라. 팬들도 이런 마음으로 경기를 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 때부터 담백하고 단순한 멘트들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들을 어렵지 않은 단어들로 풀어내고, 중요한 상황이나 마음에서 우러러 나왔을 때만 단어를 포장해서 쓰자는 게 내 중계 모토다.
일례로 이번 발로란트 중계에선 ‘조준선 정렬’을 많이 썼다. 군대 다녀온 사람들은 다 알지 않나. ‘제트’가 오퍼레이터를 들고 쬐고 있으면 ‘조준선 정렬’, 그리고 쏘면 ‘빵’이라고 했다.
기존 스포츠와 다르게 e스포츠는 해설 위원들이 캐스터처럼 활약한다, 낯설진 않았나?
훨씬 편했다. 발로란트 해설위원 분들이 다 중계를 잘하시지 않나. 그 분들이 이야기하는 게 사실 더 중요한 얘기다. 나는 이번에 누가 이동했는지, 누가 어디를 노리고 있는지 등 나처럼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깊지 않은 시청자 분들에게 가이드를 제시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잘 도와주셔서 너무 편하게 중계에 임할 수 있었다.
캐스터 데뷔 뒤 팬들의 호평이 잇따랐다, 스스로도 만족스럽나?
50점 미만이다(웃음). 다른 스포츠는 어느 정도 경기 양상이 보이고, 또 알고 있으니 해설 위원과 이러한 부분을 조율하며 중계를 진행하는 편이다. 그런데 발로란트는 아직까지는 전략적으로 접근하기 힘들더라. 스킬이나 연계 등이 세세하게 보이지가 않아서 보이는 그대로만 전달하려고 했다. 다행히 양 옆 해설위원 분들이 너무 설명을 잘해주셔서 나도 시청자처럼 중계에 임했다. 미니맵이 이렇게 중요한 건지 중계하면서 처음 알았다.
LoL과 같은 다른 종목에서도 정 캐스터를 보고 싶다는 팬들도 있다. 도전 의향이 있나?
없다. 지금 맡고 있는 다른 방송이 많은 상황이다. 발로란트 중계는 순전히 내가 재미있고 좋아서 하는 거다. 반면 LoL은 하지도 않고 재미를 느끼지도 못한다. 내가 쌍둥이 형이 있는데, 형은 LoL 방송을 매일 본다. 그러면서 나한테 ‘넌 이걸 해야 된다’고 거듭 말한다. 그래도 나는 역시 발로란트 뿐이다. 좋아하지도 않는 걸 중계하는 게 내키지 않는다. 내가 만약에 LoL 중계를 하고 있다면 돈을 정말정말 많이 주거나, 내가 LoL을 시작했거나, 둘 중 하나다(웃음).
e스포츠가 일반 스포츠와 비교했을 때 갖고 있는 차별화 된 매력, 잠재력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나는 축구도 좋아하고, 스타크래프트도 좋아했다. 내가 직접 하는 놀이를, 어나 더 레벨의 선수들이 플레이하는 걸 본다는 것에서 스포츠나 e스포츠 사이에 차이는 없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스타크래프트를 플레이 한 우리 세대는 그렇게 생각할 거다. 오히려 나는 임요환의 플레이에 더 열광하던 청년이었다. 저그 유저인데도 임요환을 좋아했다(웃음).
프리랜서 선언부터 e스포츠 중계까지, 도전을 지속하고 있다. 두려움은 없었나?
나는 쿠팡에서 K리그 중계도 하고 있고, NBA 중계도 하고 있다. 예능 프로그램 ‘최강 야구’도 맡고 있다. 이것들을 전부 포기하고 넘어온 게 아니라 도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게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내가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지를 알고 있다. 단순히 재미있을 것 같아서 발로란트 중계에 도전했다. 깊은 고민을 한 건 아니었다. 나는 내 눈에 보이는 현상을 언어로 표현해서 사람들이 영상을 조금 더 즐겁게 볼 수 있게끔 만드는 걸 잘한다. 그렇게 스포츠 중계를 11년 넘게 했다. 요원들의 이름을 알고, 스킬 이름만 알면 중계는 갑자기 시켜도 어느 정도는 할 수 있다. 내가 열심히 준비만 하면 기본은 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내겐 있었다.
물론 두려움도 있었다. 라이엇에 있는 선배가 ‘e스포츠 팬들은 한 번 잘못하면 너 사람 취급도 하지 않을 거다’라고 겁을 엄청 주는 거다. 다른 스포츠도 마찬가지지만 여기는 게시판이 난리가 날 수 있다고 하길래 긴장했다. ‘e스포츠 중계는 못하는 애’가 될까봐 그런 걱정은 있었다(웃음).
향후 정 캐스터의 목표는 무엇인가?
훌륭한 캐스터들이 많은데, 내게 발로란트 중계를 권한 건 어쩌면 발로란트를 조금 더 대중화시켜달라는 의중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나는 스포츠를 사랑하는 일반 시청자 분들이 발로란트를 더욱 친근하게 느끼게끔, 그런 종목으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바퀴 하나 정도가 되고 싶다.
나는 발로란트가 정말 좋다. 스케줄이 되는 한 계속 중계를 하고 싶다. 나는 되게 운이 좋은 사람이다. 내가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지를 알고 있어서다. 추상적이지만, 내가 느끼는 즐거움을 전달하고 싶다. ‘나는 이게 너무 재미있습니다. 여러분도 이 재미 한 번 느껴보세요’. 나는 이런 마음으로 방송을 계속한다. 그래서 중계를 하면서 감정 이입도 조금 많이 되는 것 같다. 내가 느끼는 즐거움을 시청자 분들에게 온전히 전달하는 그런 방송인이 되고 싶다.
문대찬 기자 mdc0504@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