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쿠키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민주당은 돈봉투 살포 의혹과 관련한 녹취록이 언론 등을 통해 공개되자 납작 엎드리며 낮은 자세를 취하고 있다. 검찰에 당의 운명을 맡길 수 없다면서 당헌 80조를 개정하려는 등의 모습과 비교하면 ‘상전벽해(桑田碧海, 세상이 몰라 볼 정도로 바뀐 것)’ 수준이다. 당이 먼저 검찰의 수사를 촉구하는 모습은 꽤 이례적이다.
이재명 대표는 지난 1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당이 사실 규명하기에는 한계가 뚜렷하다”며 “수사기관에 정치적 고려가 배제된 신속하고 공정한 수사를 요청한다”고 밝혔다.
이는 얼마 전까지 검찰에 각을 세우면서 야당탄압 주범이자 ‘절대악’으로 몰아세우던 모습과는 꽤 대조적이다. 당이 처한 위기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민주당은 그간 이재명 대표 사법리스크에 따른 검찰 기소 가능성이 커지자 부정부패 혐의로 기소된 당직자의 직무를 정지하는 당헌 80조를 개정하려는 시도를 해왔다. 주로 친명계 인사들이 주도해 당내 일부 반대에도 당헌 80조를 일부 개정했다.
특히 “정치 탄압 등 부당한 이유가 인정되는 경우”를 결정하는 주체를 외부 인사가 주축인 윤리심판원에서 당 지도부가 대거 포함된 당무위로 바꾸면서 지난달 검찰에 기소된 이 대표는 당헌 80조 자체를 적용받지 않게 돼 당대표직은 유지했다.
당시 친명계 의원들은 당헌 80조 개정의 이유로 검찰 수사를 믿을 수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당의 명운을 ‘검찰에 맡겨둘 수 없다’ ‘정당에서 선출한 당대표를 검찰이 좌지우지해서 되겠느냐’ 등의 취지였다.
정청래 의원은 지난해 8월 전당대회 출마 선언 후 자신의 SNS를 통해 “당헌 80조 폐지를 위해 지도부에서 재개정 논의하겠다. 일개 검사에게 당의 운명을 맡길 수 없다. 폐지가 정답”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불과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태도를 바꿔 검찰의 공정한 수사를 믿겠다고 하니 다소 이해할 수 없다. 특히 당내 진상규명 조직이 필요하다는 당내 여론이 있음에도 이를 묵살하고, 악마화하던 검찰에게 당내 일을 전적으로 맡긴다는 점에서 비판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당내 반발을 반영하듯이 김종민 민주당 의원을 비롯한 다수의 인사들이 당 지도부의 판단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김종민 의원은 18일 BBS 라디오 ‘전영신의 아침저널’에 출연해 “옛날 같으면 이 정도 일이면 벌써 당이 난리가 났다”며 “수사권이 없으니 사실을 정확하게 조사하는 건 어렵지만 적어도 당 차원에서 최선을 다해 사태의 진상을 파악하고 파악된 만큼의 조치나 대응을 하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검찰이 알아서 하고 검찰 결론이 나면 거기에 맞게 하겠다는 자세는 맞지 않다. 지도부가 달리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라고 주장했다.
정치평론가들은 검찰을 적대화하는 태도를 급하게 바꾼 것은 그만큼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19일 쿠키뉴스와 통화에서 “이런 사건들이 터질 때마다 각 정당은 철저한 진상규명을 하겠다고 했지만, 처벌이 제대로 이뤄진 사례는 거의 없다”며 “이러한 국민 인식 속에 미지근하게 반응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보고 검찰 조사에 성실히 임하고 그것을 권유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 언론을 통해 공개된 녹취록을 보면 증거로 바로 인정될 정도로 자세하고 구체적인 내용이라 적당히 넘어갈 사안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매를 피하기보다 자처해 먼저 맞는 게 더 낫다고 판단한 전략처럼 보인다”고 설명했다.
황인성 기자 his1104@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