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역사학계가 “백범 김구 선생이 김일성의 통일전선 전략에 당했다”는 태영호 국민의힘 최고위원의 발언에 대해 정면 반박했다. 민족 분단을 막기 위해 활동한 김구와 김규식은 김일성의 대남 전략을 이미 간파하고 있었고, 이를 의식한 채 통일을 염원하면서 방북 활동을 펼쳤다는 것이다.
복수의 역사학자들은 태 최고위원의 주장은 국내 역사학계가 결코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이라고 강조했다. 북한 김일성 일가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합리화하기 위해 만든 사상에 편승하는 주장에 불과하며, 주장 자체가 맞지 않다는 것이다.
북한사를 전공하고 관련 논문을 저술한 예대열 순천대 교수는 20일 쿠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태 최고위원의 주장은 사실과는 전혀 다르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예 교수는 “(태 최고위원의 인터뷰 발언은) 아마 남북협상 때문에 나온 얘기 같은데 당시 남북협상이 북한에는 일종의 꽃놀이패였다”며 “북한 정부 수립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 남한의 민족주의자들을 불러온 그런 측면은 있으나 대다수 역사학자는 김구 선생이 이를 간파한 채 방북했다고 인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당시 김일성이 북한만의 단독 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김구와 김규식 등을 이용하려고 했으나 이들은 국제 정세를 포함한 냉철한 현실 인식을 한 상태로 분단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냉전이라는 세계사적인 흐름으로 결국 민족 분단은 막지는 못했지만, 본인들의 정치 생명을 걸고서까지 통일을 갈망했던 이들의 업적을 폄훼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는 것이다.
이신철 아시아평화와역사연구소장(성균관대 겸임교수)도 예 교수와 비슷한 역사적인 평가를 했다.
이날 이 교수는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백범 김구가 통일을 위해 기득권을 버리고 김일성 등 북한 지도자들과 협상을 벌인 일을 일방적으로 이용당했다고 평가하는 것은 지극히 냉전적이고 편향적인 역사 인식”이라며 “오히려 김일성이 역사를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는 데 편승하는 주장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백범통일연구소장으로 오랫동안 백범 김구를 연구해온 전일욱 단국대 공공정책학과 교수는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걸면서까지 통일을 위해 헌신했다는 점을 주목했다.
전 교수는 쿠키뉴스에 “1948년 4월 남북협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문화강국론과 세계평화론을 이해해야 한다”며 “이미 독립운동으로 평생을 바치신 백범 선생은 이 과정에서 완전한 자주독립국의 필요성을 몸소 체험하고 분단돼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정치생명이 끝날 것을 알면서도 1948년 4월 19일 삼팔선을 넘어 남북협상을 진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태 최고위원의 일방적인 주장은 진영을 불문하고 비판받고 있다. 북한 체제가 틀렸다는 판단으로 탈북했음에도 정작 북한 체제를 옹호하기 위해 설계된 역사관이 마치 진실에 더욱 부합한 것처럼 강조한다는 점이 논리적으로 맞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에 대한 주관적인 평론은 허용되나 여당 최고위원직으로서 한 발언으로는 부적합하다는 게 정치권 안팎의 평가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20일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태영호 최고위원은 북한에 문제가 있다고 탈북한 인사임에도 여전히 북한의 역사관을 근거해 발언하고 있다”며 “제주 4·3 사건의 김일성 지시설을 비롯해 최근 김구 선생의 북한 이용설 등은 북한의 주장으로 결국 그의 행보와 발언 자체가 모순된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라면 북한의 주장이 아닌 대한민국 국민의 상식의 관점에서 말해야 하지 맞지 않겠느냐”고 부연했다.
황인성 기자 his1104@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