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읽은 메시지 999+… “‘안읽씹’도 이유가 있어요”

안 읽은 메시지 999+… “‘안읽씹’도 이유가 있어요”

기사승인 2023-05-01 06:05:02
근무 중 메시지를 잠시 확인하지 못했을 때 벌어지는 일을 가상으로 구성해봤다.   이승렬 디자이너

최근 모바일 메신저 소통 방식이 바뀌고 있다. 모바일 메신저 메시지를 확인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안읽씹’(메시지를 읽거나 답하지 않는 행위)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는 모양새다. 메시지를 읽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읽고 답하지 않는 행위(읽씹)와 다르다. 수많은 정보가 쏟아지며 높아진 디지털 피로도가 새 메시지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일마저 힘들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직장생활에서 갈등이 일어나기도 한다.

안읽씹, 다양한 이유

안읽씹은 일부 청년들에겐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안읽씹이 문제란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이들도 많다. 김모(20대‧여‧대학생)씨는 “가장 오래 안 읽은 메시지는 2017년에 온 것”며 “이제 안읽씹은 습관인 것 같다”고 밝혔다. 박모(20대‧여‧직장인)씨는 “처음 안읽씹을 당했을 땐 왜 안 읽지 싶었다”라며 “시간이 지나니 점점 메시지를 확인하는 주기가 길어지면서 안읽씹을 하게 됐다. 최근엔 안읽씹을 당해도 별다른 생각이 안 든다”고 말했다.

의도치 않게 안읽씹을 하는 경우도 많다. 평소 메시지를 안 읽는 일이 많다는 박모(27‧여‧직장인)씨는 “사회초년생 때 메시지가 온 걸 알았지만, 더 신중하게 고민하고 답하느라 안읽씹 시간 길어지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안 읽은 채팅이 999개가 넘는다는 배진성(31‧남‧직장인)씨는 “사내 동호회부터 친구, 업무, 대학원 모임 등 다양한 단체톡방이 있다”며 “하루 수백 개씩 오는 메시지를 실시간으로 읽을 수 없어 안읽씹을 한다”고 털어놨다.

답장할 타이밍을 놓치는 일도 있다. 조유경(24‧여‧직장인)씨는 “미리보기로 뜬 카톡 내용을 본 뒤 나중에 답장해야지 하고 잊는 일이 종종 있다”고 밝혔다. 박모(29‧여‧직장인)씨는 “직장에선 업무 메시지를 보내느라 친구들 연락은 나중에 답장해야지 생각했다가 퇴근 후에도 기억하지 못하는 날이 종종 있다”고 설명했다.

유튜브 ‘문명특급-MMTG’ 캡처

읽씹 vs 안읽씹 논쟁

온라인에선 읽씹과 안읽씹 중 뭐가 더 나쁜지 묻는 글들로 가득하다. 각 커뮤니티는 읽씹과 안읽씹 중 뭐가 더 기분 나쁜지 묻는 글들로 가득하다. 읽씹이 더 나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화를 원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준다”고 말한다. 반대로 안읽씹은 “일부러 대화를 거부하거나 필요할 때만 찾는 느낌이 커서 더 싫다”고 주장했다.  

메시지에 답하지 않는 시간이 중요하다는 분석도 있다. 짧은 기간은 읽씹이 기분 나쁘지만, 안읽씹 기간이 길어지면 대놓고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어 더 기분 나쁘다는 얘기다. 가수 장민호는 2020년 발매한 ‘읽씹 안읽씹’에서 “내 톡 왜 씹어 읽은 거 다 아는데” “안읽씹이 훨씬 더 나빠’라고 노래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유행 중인 성격유형 테스트 MBTI 결과별, 읽씹과 안읽씹의 심리를 논하기도 한다. 유튜브 ORT 채널의 ‘MBTI 별 읽씹 vs 안읽씹 유형’ 영상은 조회수 약 44만회를 기록했다. 한 커뮤니티에 올라온 ‘안읽씹 최강 MBTI는 뭘까’라는 글엔 ISFP, INTP, ENTP 등 특정 MBTI를 언급하는 댓글이 80여개 달렸다.

안읽씹을 하는 사람과 당하는 사람이 따로 정해져 있는 건 아니다. 그룹 아이브 안유진은 지난해 출연한 tvN ‘뿅뿅 지구오락실’에서 래퍼 이영지에게 안읽씹을 당해 서운했던 일을 폭로했다. 그러나 최근 유튜브 ‘문명특급’에 출연한 아이브 레이는 같은 그룹 안유진이 자신에게 읽씹을 했다고 밝혀 웃음을 자아냈다.

tvN ‘뿅뿅 지구오락실’ 캡처

안읽씹, 어디까지 해봤니

안읽씹 때문에 직장생활 중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안읽씹을 검색하면 4200여개 게시글이 나온다. 한 작성자는 “직장 후배에게 업무 지시를 했는데 3~4일이 지나도록 안읽씹을 한다”며 혼내야 하냐고 물었다. 10명의 추천을 받은 베스트 댓글은 “회사에서 휴대전화 지급해 주는 것 아니면 모바일 메신저로 업무지시 안 했으면 좋겠다”는 글이었다. 다른 댓글들도 “업무적 내용이면 개인 카톡이 아니라 다른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안읽씹으로 회사 생활에서 여러 에피소드가 발생하기도 한다. 의류매장에서 일하는 정모(27‧여)씨는 손님을 응대하느라 바빠 휴대전화를 3시간 만에 확인했다가 직장 상사에게 핀잔을 들었다. 연락을 빨리 보라는 지적에 정씨는 40만원 상당의 스마트워치를 샀다. 또 다른 직장인 A씨는 퇴근 후 휴대전화를 보고 깜짝 놀랐다. 5~10분 단위로 팀장에게 전화가 6통이 왔기 때문이다. 업무시간이 한참 지난 오후 9시에도 팀장은 “왜 이렇게 연락이 안 되냐”며 화를 냈다. 조모(27여‧직장인)씨는 상사로부터 “메시지 좀 빨리 확인해”라는 재촉 전화를 받았다. 상사가 메시지를 보낸 지 단 2분이 지난 시점이었다.

안읽씹을 향한 부정적인 시선도 존재한다. 조회수 47만을 기록한 유튜브 이십세들의 ‘내가 만만해? 카톡‧페메 안읽씹 하는 사람들의 심리’ 영상에서 “안읽씹의 경우 자기 필요할 때만 연락하겠다는 의도가 느껴져서 싫다”는 댓글이 1만2000여명에게 ‘좋아요’를 받았다. 이어 “안읽씹은 사람 무시하는 걸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며 “그 사람에 대한 정이 떨어지게 만든다”는 댓글도 좋아요수 1만9000회를 기록했다.

유튜브 ‘이십세들’ 캡처


세대간 다른 카톡 소비 방식

안읽씹에 대한 반응은 세대에 따라 달라지는 경향이 나타난다. 청년들은 안읽씹을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편이고, 기성세대는 이해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많다. 이는 모바일 메신저를 소비하는 방식과 문화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수진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은 “안읽씹이 논란되는 이유는 카카오톡이 많은 세대가 집결한 오프라인 기반의 온라인 채널이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그는 “20대들은 인생 자체가 온라인에 기반해 카톡 외에도 다양한 플랫폼을 활용하고 있다”며 “예를 들어 친구에게 속 깊은 얘기를 하는 건 인스타그램 디엠을 이용하고, 카톡은 업무 수단으로 쓰는 등 다양한 플랫폼을 활용해 소통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청년들은 메시지를 읽고 이모티콘을 보내거나, 체크 표시를 하는 등 소극적 반응으로도 서로 확인했다는 암묵적 교류가 된다”고 귀띔했다.

반면 “5060세대들에게 카톡은 오프라인 베이스가 온라인으로 표현된 것”이라며 “기성세대는 카톡을 전화 보조, 연락 보조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위원은 “카톡은 모든 세대가 활용하는 창구라 세대 간 갈등이 격화되는 것처럼 보인다”라며 “서로 카톡을 소비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 외에 해결 방법은 딱히 없다”고 진단했다.

조유정 기자 youjung@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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