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에서 처방 내지 말아달래요” 병원도 약국도 약 없어 전전긍긍

“약국에서 처방 내지 말아달래요” 병원도 약국도 약 없어 전전긍긍

“약 제때 못 쓰면 위독한데 정부는 방관”
약국 1통씩 배분받기도…하루이틀이면 동나
원료의약품 수입 의존도 높아 제약사도 부담
정부 “의약품 부족 문제 인지”…해결책 마련 고심

기사승인 2023-05-17 06:00:01
사진=박효상 기자


환자를 치료해야 하는데 병원과 약국에서 약이 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이유는 원료의약품 수급의 어려움, 감기 환자 폭증, 수요와 공급 불균형 등 여러 가지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병원·약국, 부족한 약 때문에 환자 치료 ‘난감’ 

의약품 부족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일선 의료현장과 약국에선 예년과 비교해 특히 요즘 상황이 더 심각하다고 입을 모은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은 지난 16일 ‘대표적으로 부족한 약들이 무엇인지’ 묻는 기자의 질의에 “질문이 틀렸다”고 했다. 이어 “부족한 약이 무엇인지 물을 게 아니라 ‘쓸 수 있는 약이 있는지’ 물어보는 게 맞다”라며 “‘어떻게 이런 기본적인 약마저 없을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당장 쓸 수 있는 약이 부족하다”고 토로했다.

임 회장은 천식 환자한테 쓰는 기관지 확장제나 흡입해서 염증을 가라앉히는 ‘풀미코트’, ‘부데코트 흡입액’ 등을 예로 들며 “어린이 천식 환자는 약을 제때 쓰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는데 정부는 방관만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소총과 대포는 있는데 총알과 포탄이 없는 게 현재 의료현장의 상황”이라며 “의약품 수급 문제 해결을 위해 의사, 약사, 정부가 함께하는 TF팀(테스크포스팀)이 구성돼야 한다”고 피력했다.

신광철 대한이비인후과의사회 공보부회장은 이비인후과 병원에서 대표적으로 많이 사용하지만 부족한 의약품으로 코막힘 증상을 완화시키는 ‘슈도에페드린’ 성분의 약물을 꼽았다. 신 공보부회장은 “약 단가가 저렴하다고 해서 덜 중요한 게 아니다. 병원에선 그런 약들이 꼭 필요한 경우가 많은데 많이 부족한 실정이다”라며 “약국에서 ‘약이 없으니 이 약으로 처방전을 내려 보내지 말라’고 요청이 들어올 때마다 적잖이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며칠 전 정부에서 부족한 의약품이 무엇인지 적어서 보내달라는 공문이 왔다”며 “의료기관에서 당장 필요한 약들이 무엇인지 빨리 파악해 신속한 조치가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요즘 약국에선 조제용 코감기 약으로 많이 이용하는 슈도에페드린 제제의 코오롱제약 ‘코슈정’, 한미약품 ‘코싹엘정’ 등을 비롯해 아기들 기침이 심할 때 쓰는 기관지 확장패치 등의 공급이 원활하지 않다. 대한약사회는 코슈정 등을 신청한 약국들이 500정이 든 1병을 받을 수 있게 하는 ‘의약품 균등 공급’에 나서기도 했다.

민필기 대한약사회 약국이사는 “작년부터 기관지 확장패치마저 수급이 어려워져 약사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균등 공급으로 약을 힘들게 구했더라도 약 한 통은 하루 이틀이면 다 써버린다. 이 상황이 거의 1년째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민 약국이사는 “약사회가 품절의약품협의체에 참여해 의약품 수급 불안정 문제 해결을 위해 제도적으로 개선할 부분이 있는지 살펴보고 있지만, 결국 제약사의 생산량이 늘지 않으면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라고 짚었다.

“손해 감수하며 생산하는 게 맞나…약가 우대정책 필요”

제약사도 약이 없는 현 상황이 답답하다는 입장이다. 공급을 해줘도 수요가 워낙 많아 따라가질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A제약사 관계자는 “약을 계속 생산하고 있지만 수요가 늘고 있어서 품절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며 “감기 환자가 많은 환절기이기도 해서 계절에 의한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본다. 생산량을 지속적으로 늘려가려고 노력한다”라고 했다.

제약 업계에선 “해외 원료의약품을 들여와 마진이 남지 않는데도 손해를 감수하면서 의약품을 생산하는 게 맞냐”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우리나라는 원료의약품의 75% 이상을 중국이나 인도 등으로부터 수입해 쓰고 있다. 필수의약품의 자급도를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B제약사 관계자는 “원료의약품 국산화와 필수의약품 공급난 해소는 대내외적으로 불확실한 경영환경 속에 놓인 기업의 희생과 선의에 기댈 것이 아니라 정부의 약가 우대정책 등을 통해 진행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낮은 약가가 제약사들의 생산동력을 떨어뜨려 약 부족 현상을 키울 수 있는 만큼 약가를 단계적으로 올려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민 약국이사는 “지난해 코로나19 유행으로 아세트아미노펜 수급이 어려웠을 때 1정당 50원이던 약가를 91원으로 올리고 난 뒤 제약사들이 생산설비를 늘려 2배 이상으로 생산량이 증가했다”며 “이로 인해 코로나19와 독감이 함께 유행하는 ‘트윈데믹’ 상황에서도 환자 관리가 가능했다”라고 말했다.

정부는 의약품 수급 문제 해결을 위한 명확한 해결법을 마련하지 못해 마음이 급해 보인다. 복지부 약무정책과 관계자는 “의료현장의 의약품 부족 문제는 정부도 인지하고 있다”며 “지난해 겨울 코로나19와 감기 환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의약품 부족 문제가 대두됐을 때 이를 해결하기 위해 민관협의체를 구성했고, 지난 3월엔 품절의약품협의체를 구성해 지금까지 3번의 회의를 진행했다”고 전했다. 더불어 “앞으로 객관적인 데이터들을 검증해 명확한 의약품 부족 원인을 파악하고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숙고해서 의료현장이나 제약사에 행정적으로 필요한 부분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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