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가 담쌓는 세계적 흐름”…비대면 임상, 필요성만 커진다

“규제가 담쌓는 세계적 흐름”…비대면 임상, 필요성만 커진다

기사승인 2023-05-20 06:00:11
분당서울대병원, 카카오헬스에커, 이지케어텍이 함께 만든 원격 실시간 모니터링 및 협진 시스템.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 관련이 없습니다.  사진=박선혜 기자

특정 공간에 얽매이지 않고 디지털 의료기기를 활용해 비대면으로 진행하는 ‘분산형 임상시험’ 방식이 세계 곳곳에서 빠른 성과를 일으키고 있지만, 한국은 비대면진료에 대한 규제 등에 막혀 사실상 답보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분산형 임상, 세계는 속도전…한국은 중진국보다 더뎌 

분산형 임상시험은 코로나19 확산과 맞물려 주목받기 시작했다. 감염 확산으로 시험기관 방문·운영이 어렵게 되자 주요 선진국들은 분산형 임상의 비중을 재빨리 끌어올렸다. 임상 대상자(환자)가 직접 병원을 찾지 않아도 돼 참여율이 높고 진행 속도도 빠르기 때문이다.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KoNECT)이 지난 9일 발간한 ‘2022년 글로벌 임상시험 동향 2호’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에서 지난해 5월 사이 단일국가 기준 영국의 분산형 임상 비율은 전체의 12.8%를 차지했다. 2010~2016년 3.0%에 비해 4배 이상 늘었다. 같은 기간 호주는 4.0%에서 12.3%로, 미국은 2.6%에서 8.1%로 각각 확대했다. 반면 한국은 0.6%에서 1.2%로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인도나 이집트 같은 중진국보다 활용이 더딘 상황이다. 

현재 한국은 분산형 임상을 통한 신약 개발도 기약하기 어렵다. 미국 제약사 모더나는 2020년 분산형 임상 솔루션으로 12주 만에 3만여명의 대상자를 모집하고 자료를 확보해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완료한 바 있다. 바이엘, 노바티스, 화이자, 사노피 등의 기업들도 분산형 임상을 진행한 신약 연구 결과를 잇따라 발표하고 있다.

김혜지 메디데이터 아시아·태평양 지역 마케팅 총괄 상무는 “한국도 분산형 임상을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기술적 환경이 갖춰져 있고, 일부 요소를 도입해 활용한 제약바이오 기업들도 있다”면서도 “국내 규제로 인해 전 영역에서 도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김 총괄 상무는 “국내에서도 여러 임상업계 전문가들이 참여해 협의체를 구축하고 가이드라인 마련에 힘쓰고 있다”면서 “기술뿐 아니라 규제 환경도 개선돼 글로벌 흐름에 맞춰나갈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비대면진료 기반 없어 적극적 추진 한계

보건복지부는 분산형 임상 활성화를 위해 ‘스마트 임상시험 플랫폼 기반 구축사업’을 추진 중이다. 다만 한국은 아직 비대면진료가 정착되지 않았다. 분산형 임상의 경우 환자의 실시간 상태 확인, 비대면 플랫폼을 통한 진단, 약 배송 등이 허가돼야 가능한데 현재 국내에서는 이 같은 행위들이 불법으로 간주된다. 

오는 6월부터 시행될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계획안에서도 분산형 임상을 위한 원격 모니터링, 원격 협진 등에 대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이와 관련해 복지부 관계자는 “아직 논의가 안됐다. 현재 의논 중인 시범사업을 토대로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며 “허용 대상이나 범위가 한정적인 것을 감안해 분산형 임상 관련 규제는 향후 따로 검토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임상시험 수탁기관 기업의 A씨는 “국내에서는 규제자유특구로 지정했거나 코로나19 감염병 심각단계 상황에서만 분산형 임상 연구가 가능했고, 현재는 적용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현실적으로 분산형 임상을 전반적으로 시행하긴 어렵지만 연구 특성이나 환경을 고려해 일부 요소를 유연하게 도입하는 방식은 검토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희귀질환이나 감염병 등은 임상 대상자를 모집하는 일 자체가 어렵다. 바이오업계는 분산형 같은 비대면 임상의 문을 열어주면 연구 개발 속도는 훨씬 빨라질 것이라고 강조한다. 바이오벤처기업 임원 B씨는 “디지털 치료기기도 분산형 임상을 적용해 성과를 보이고 있다”면서 “신약 임상은 병원과 재택을 혼합한 하이브리드 방식이라도 도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짚었다. 
 
제약바이오업계 관계자 C씨는 “의료 인프라와 교통이 잘 갖춰진 우리나라는 일반 대면 임상을 여전히 더 선호하는 분위기다”라면서도 “참여자의 접근성 확대, 신뢰성 확보, 체계적인 절차 등이 마련된다면 향후 분산형 임상이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환자 단체는 분산형 임상 도입에 앞서 임상 대상자 의견이 충분히 반영돼야 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국내 분산형 임상은 환자 요구보다는 코로나19 상황, 기술 발전에 따른 연구자 요구 등에 따라 움직였다”며 “앞으로는 임상의 주축이 되는 대상자이자 환자의 입장을 담아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피력했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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