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뭘 해야 하나요”… 불법건축물 전세 사기 피해자의 눈물

“어디서 뭘 해야 하나요”… 불법건축물 전세 사기 피해자의 눈물

떼인 보증금에, 집주인 채무 떠 앉는 피해자
불법건축물‧전세사기, 제도적 변화 나서야

기사승인 2023-06-14 16:22:27
지난 13일 오전 10시 서울 여의도동 국회의사당 국회의원회관에서 심상정 정의당 의원 주최로 ‘불법건축물×전세사기’ 국회토론회가 열렸다.   사진=조유정 기자

“전세 사기는 버스가 불이 났는데 정류장이 아니라는 이유로 안 내려주는 것과 같습니다.” (무적 민달팽이유니온 공동위원장)

최근 3개월간 인천에서 전세 사기 피해자 3명이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났다. 정부는 지난 1일부터 전세 사기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특별법을 시행했다. 하지만 사각지대는 있다. 전세 사기 피해를 입어도 불법건축물 세입자들은 특별법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보증금을 지키려고 경매에 뛰어들고 강제이행금과 원상복구 명령까지 감당하는 불법건축물 전세 사기 피해자들이 다수다.

지난 13일 오전 10시 서울 여의도동 국회의사당 국회의원회관에서 심상정 정의당 의원 주최로 ‘불법건축물×전세사기’ 국회토론회가 열렸다. 전문가들은 “전세 사기 피해자들이 제도적 문제까지 감당해야 하냐”며 제도적인 문제 파악을 하고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과 주거 기준법 강화를 촉구했다.

불법건축물 전세 사기 피해자들은 하루하루 삶과 지옥을 오간다. 서울 관악구에 거주하는 불법건축물 피해자 권모(30‧남‧직장인)씨는 “법적인 안전장치를 위해 특약사항을 요청하는 등 노력했으나 작정하고 속이는 사람들을 이길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건축주와 임대인, 부동산 중개인은 위반 건축물이지만 1금융권에서 대출이 나온다며 가게약서 작성을 유도했다. 막상 대출이 불가해 계약 해지를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전세 계약기간 만료를 3개월 앞두고 깡통전세 피해를 알게 됐다”며 “임대인에게 연락도 해보고 변호사를 만나 내용증명도 보내봤지만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며 울먹였다.

권씨는 “임대인은 소송을 걸고 경매를 해도 달라질 게 없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임대인은 2억7000만원의 보증금에 돈을 더 내서 매입하라고 하고 있는데, 이미 매매가보다 높게 전세 계약을 맺은 상태다”며 “어떤 방법을 써도 손해를 보는 건 이미 확실하고 덜 손해 보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현실이다”고 말했다. 끝으로 권씨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이라도 알고 싶다”고 호소하자 곳곳에서 눈물이 터지기도 했다.

김수영씨는 불법건축물 근린생활시설 피해자다. 임대인이 경찰조사 중 사망해 경매 및 임차권등기 진행 등 법적 절차를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다. 보증금을 지키고, 살아가기 위해 셀프 경매까지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불법건축물이란 사실이 계속 발목을 잡는다. 김씨는 “경매를 진행하고 불법건축물이 등록되면 원상복구 명령과 이행강제금을 내야하는 상황이다”고 설명했다. 그는 “원하지도 않는 집에 살면서 매년 부당한 벌금까지 내면서 살아야 하냐”며 “그저 살기 위해 매입하려는 것인데 나라가 2차 피해를 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씨는 “이행강제금 무효화 혹은 근린생활시설 양성화법 등 실질적인 제도와 관련 건축주, 공인중개사 처벌이 필요하다”며 “무조건적인 것 바라는 게 아니라 추가 피해를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지난 13일 오전 10시 서울 여의도동 국회의사당 국회의원회관에서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주최 ‘불법건축물× 전세사기’ 국회토론회가 열렸다.   사진=이예솔 기자

전세제도의 허점으로 발생한 피해를 피해자가 온전히 감당해야 하는 구조다. 지수 민달팽이유니온위원장은 “불법건축물과 전세 사기 피해 과정에서 개인이 피할 방법은 없었다”며 “제도에 문제가 있지만, 사회가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다며 상황을 끝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 위원장은 “계약 과정에서 분양사무소, 건축주, 임대인, 대출 모집인, 은행, 감정평가사 등 많은 관계자가 존재하지만, 누구도 위반건축물 사실을 알려주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불법건축물로 피해 입은 세입자를 구제할 마땅한 방안도 없다. 지 위원장은 “집 면적 상 2개의 집만 지을 수 있는 공간에 3개의 집을 만들어 건축주는 최소 매매가 3억원 이상의 이익을 본다”라며 “세입자들만 피해를 감당하는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거주하는 집이 불법건축물이란 사실을 뒤늦게 알아도, 근린생활시설이라 우선 매수권도 없다”며  “낙찰 받아도 이행강제금을 내야 한다. 불법건축물을 원상복구 하려해도 건물 25%가 위반시설이라 복구가 불가하다”고 말했다. 또 “버팀목 대출에 적합한 주택이 아니라 금융지원도 불가하고, 공공임대 매입도 불가하다”고 덧붙였다.

윤성진 국토연구원 부연구위원도 “불법건축물과 전세 사기는 주택임대차 영역의 제도 공백이라고 생각한다”며 “경제적 기준과 물리적 기준이 없다”고 지적했다. 불법건축물의 경우 시정명령과 이행강제금을 부과할 수 있으나 단속이 잘 되지 않는 상황이다. 윤 부연구위원은 “불법건축물을 임대하는 행위는 불법이 아니다”며 “이러한 임대 행위가 오히려 불법 건축물을 양산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기존에는 주로 불법 건축물을 단속했다면, 이젠 근본적으로 임대행위에 접근해서 임대인의 반환 능력 등 경제적 기준을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택 임대를 위한 기준도 부족하다. 윤 부연구위원은 “우리나라의 전세제도는 채권적인 임대차 계약에 의존하고 있다”며 “특례 규정도 보증금 환수나 계약 기간을 다룬다. 기본적인 주거 시설에 대한 물리적인 기준은 없다”고 설명했다. 해외에서는 이미 최저 주거 기준을 통해 주거 환경을 제한하고 있다. 윤 부연구위원은 “프랑스의 경우 임대인이 적당한 주거를 제공하고 조경, 유지보수 등을 할 의무를 지고 있다”며 “이외에도 미국, 아일랜드 등에서 주거 환경에 대한 법률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지난 13일 오전 10시 서울 여의도동 국회의사당 국회의원회관에서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주최 ‘불법건축물× 전세사기’ 국회토론회가 열렸다.   사진=이예솔 기자

지난 1일부터 시행 중인 전세 사기 특별법은 반쪽짜리 정책이란 평가가 나온다. 전세 사기 피해자로 인정되면 살던 집을 매수하거나 임대할 수 있을 뿐, 피해를 극복하게 적극적으로 돕는 정책은 아니기 때문이다. 안상미 전세 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공동대표는 “피해자들이 낙찰 받아도 시세보다 비싼 가격이고, 추후 집이 팔린다는 보장도 없다”며 “그럼에도 원금이라도 회복하려면 낙찰을 받는 게 최선인 상황이다. 불법건축물은 이마저도 해당이 안 되고, 우선매수권도 없어 보호받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안 위원장은 “그런데 불법건축물은 이마저도 해당이 안 된다”며 “우선매수권도 없어 보호받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전세 사기 특별법을 바라보는 긍정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아무 대책도 없던 상황에서 절반의 대책까지 끌어냈다는 의미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특별법에 대해 반쪽 대책이란 의견이 많은데 전세 사기 피해 대책위와 피해자들의 말을 들으며 아무것도 없던 상태에서 반이라도 만든 것이다”며 “나머지는 사회적 공감대와 토론, 논의로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위로했다. 최 소장은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으로 임차인과 임대인의 권리와 의무를 명확하게 해 주거 품질과 불법 주택 임대, 보증금 등 임대료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소장은 “뉴욕은 지난 1901년 임대차 주택법이 나왔다. 가장 큰 특징은 규정된 법규를 기존 주택에도 적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해 8월 침수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 서울시에서는 ‘신규 주택에 지하를 못 짓겠다’라고 했다. 이렇게 하면 안 된다”며 “이미 기존 주택이 2000만 채인데 신규 주택에만 적용하는 것은 의미 없다”고 지적했다. 또 “외국의 경우 보증금 보호를 위해 월세의 1.5배 정도만 받는다”며 “뉴욕은 보증금이 월세 2개월 치, 가구가 있으면 3개월 치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처럼 주택 품질 규제를 안 하는 나라에서 불법이라는 말은 국가 책임”이라며 “대선 공약 중 하나가 ‘비정상 거처 완전 해소’였다. 새로 생기는 건축물뿐 아니라, 이미 있는 시설들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시급하다”라고 말했다.

전세 사기를 바라보는 시각도 바뀌어야 한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전세 사기 특별법이 통과됐으나 반쪽짜리 정책으로 불리는 원인엔 인식 차이가 있다”며 “정부와 여당은 깡통전세와 전세 사기를 정부 정책의 실패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기 사건으로 보고 있다”고 비판했다. 심 의원은 “대한민국은 집값이 올라도 대출, 내려도 대출 등 무리한 대출과 확대가 결국 빌라왕을 만든 주범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불법건축물에 대해서도 “애초에 집이 아닌 곳을 임대할 수 있도록 방치했던 정부의 정책 문제”라며 “특별법에 이어 깡통전세, 전세 사기를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는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누구나 집다운 집에 살 권리 있습니다. 불법건축물이 집이 돼서는 안 됩니다.” (심상정 의원)

조유정 기자 youjung@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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