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고 문 닫고”… 소생술 필요한 필수의료 체계

“떠나고 문 닫고”… 소생술 필요한 필수의료 체계

대한의학회 학술대회서 필수의료 확립 방안 논의
저출산 직격탄 맞은 소청과·산부인과…전공의·전문의 떠나
흉부외과, 수술기술 명맥 끊길까 우려…“수술 가능 지역 한정”
정부, 지역 완결형 응급의료체계 개편 고심

기사승인 2023-06-16 01:30:18
15일 더케이호텔 서울에서 개최된 ‘2023 대한의학회 학술대회’에서 이른바 ‘내외산소’로 불리는 필수의료를 다잡기 위한 다양한 의견이 공유됐다.   사진=신대현 기자

이른바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로 불리는 필수의료가 흔들리고 있다. 환자는 의사를 만나기 어렵다고 하고, 의사는 환자를 받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고 한다. 환자와 의사 사이, 꼬여버린 의료체계 매듭을 어떻게 풀 수 있을까.

15일 더케이호텔 서울에서 개최된 ‘2023 대한의학회 학술대회’에서 골병 든 필수의료체계를 다잡기 위한 다양한 의견이 이어졌다.

윤신원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수련교육이사는 “저출산으로 소아 인구가 급감하는 상황에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70%는 개원가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개원의들은 낮은 수가에 의존한 채 밀려드는 환자를 보다가 결국 버티지 못하고 병원 문을 닫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며 “비단 개원의뿐만 아니라 교수진 이탈도 발생하고 있어 향후 소아중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 의사가 없어질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전공의 지원 감소도 어려움을 키우는 데 한몫했다.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은 지난 2016년부터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2016년 123.9%였던 지원율은 2019년 92.4%로 지원 미달을 겪더니 이후 급감했다 2020년 71%였던 지원율은 다음해 36.8%로 거의 반 토막 났다. 지난해 지원율은 27.5%에 그쳤다.

윤 수련교육이사는 “그나마 있는 전공의 지원자마저 빅5 병원(서울대·삼성서울·서울성모·서울아산·세브란스병원)에 쏠리며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심화되고 있고, 진료 의사가 없어서 수도권으로 환자를 전원하는 일도 있다”며 “미래가 보여야 전공의들이 소아청소년과를 지원할 텐데 이를 위해선 적절한 수가와 지역 불균형 등이 해소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저출산으로 어려움을 겪는 것은 비단 소아청소년과만이 아니다. 산부인과도 소아청소년과와 비슷한 이유로 고사 위기에 처했다. 지난 2007년 1027건이던 분만 건수는 2020년 518건으로 반으로 줄었다.

설현주 대한산부인과학회 수련위원은 “2015년부터 출산율이 급감하기 시작하며 분만병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대부분의 지방들이 분만 취약지인데 산부인과 의사가 없어서 분만 인프라가 붕괴되는 사회적인 문제까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공의뿐만 아니라 전문의 배출도 줄고 있다. 지난 2004년 신규 산부인과 전문의는 259명이었는데 올해 103명으로 떨어졌다. 남자 전문의는 7명에 불과하다.

설 수련위원은 “산부인과 의사들은 분만 관련 의료사고 처벌을 우려하고, 상시 당직근무로 인한 삶의 질 저하와 육체적·정신적 스트레스 등으로 분만을 기피하고 있다”며 “분만 과정 중 연관성을 밝히기 어려운 신생아 뇌성마비나 출산 관련 모성 사망 등의 사고가 발생했을 때 과실 유무와 상관없이 국가가 보상하는 ‘공적 의료사고 보험제도’는 산부인과 의사를 모집하는 유인책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흉부외과는 수술기술 명맥이 끊기는 것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대표적 흉부외과 수술인 개심술과 폐엽절제술 뿐만 아니라, 심실중격결손 수술이나 응급 대동맥 수술 등과 같은 난이도가 높은 수술을 할 수 있는 병원은 일부 지역에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정의석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 기획홍보위원장은 “선천성 심실중격결손 수술은 전국 4개 지역에서만 가능하다”며 “어떻게 하면 전국이 고루 응급수술을 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지역네트워크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잘 안 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정 위원장은 “흉부외과 수가제도는 마치 카드로 만든 집 같이 허술하고 정비되지 않은 게 많다”며 “흉부외과 의사는 밤새 당직을 서도, 또 장시간 수술을 하거나 중환자를 봐도 수가가 없다. 선배들이 이런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데 어느 전공의가 지원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실력 있는 필수의료과 교수들이 과중된 업무에 지쳐 대학병원을 떠나고 있다는 한탄도 나왔다. 문재영 세종충남대병원 중환자의학과 교수는 “더 이상 의사들의 사명감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응급·중증 환자 의료체계를 개편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라면서 “필수의료과 선배들의 생활을 보면서 비전이 없다고 직감한 전공의들도 하나 둘 떠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결국 필수의료에 종사하는 전문의들의 삶과 그들의 근무 여건이 획기적으로 나아지지 않는 이상 전공의들의 필수의료과 지원은 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는 한 지역 안에서 현장 이송부터 응급실 진료, 수술 등 최종치료까지 이뤄지는 ‘지역 완결형 응급의료체계’를 강화하고, 권역별 의료기관들이 서로 협력하는 체계를 더 견고히 하는 등 제도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나간다는 계획이다.

이형훈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용인에서 발생한 응급환자가 의정부까지 갔다는 등의 보도를 보면서 응급의료에 대한 염려가 많은 것이 사실”이라며 “응급이송체계를 개편하는 과제를 수행하겠다”고 밝혔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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