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배터리 기업들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관련해 ‘FEOC(해외우려기업)’ 규정 세부지침을 주목하는 가운데 딜레마에 처했다. 세부 규정 공개에 앞서 중국에 대한 수입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다양한 국가들과 공급계약을 체결해야 한다는 의견과 IRA만을 의식해 중국과의 공급망을 끊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의견이 공존하기 때문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배터리 제조사들은 IRA 추가 세부지침 발표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IRA 백서에서 중국, 러시아, 이란 등을 FEOC로 지정했다. FEOC로 지정된 국가의 핵심 광물이나 배터리 부품을 사용한 경우 오는 2025년부터 전기차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된다.
FEOC 관련 추가 지침 공개에 따라 국내 배터리 업계의 공급망에도 큰 변화가 예상되는 이유다. 국내 주요 배터리 기업들이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부문 중 하나는 ‘흑연’이다. 흑연의 중국 의존도가 지난해 기준 94%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호주계 광업회사 블랙록마이닝의 자회사 탄자니아 파루 그라파이트와 25년간 75만톤 규모의 흑연 장기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호주 기업인 노보닉스와 투자계약을 체결해, 10년간 5만톤 이상의 인조흑연을 확보했다. SK온도 흑연 채굴권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 기업 웨스트워터 리소스와 공동개발협약을 체결했다.
다만, 이러한 국내 배터리 기업들의 탈중국화가 성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라는 목소리도 있다. 중국을 FEOC로 지정하게 되면 전 세계와 미국의 배터리 전기차 산업은 멈출 가능성이 높아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전개라는 것이다.
박철완 서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2021년 20개 배터리 소‧부‧장 품목에 대해 관세를 0%로 낮춘 것이 오늘날 중국 의존도를 키운 배경이 됐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2016년부터 중국 최대 배터리 기업 ‘CATL'을 주의해야 한다는 경고에도, 소‧부‧장 품목 관세 유예로 중국 원자재 의존도가 높아졌다”며 양극재, 전구체의 중국 의존도가 90% 이상 잡혀 있는 이유에 대해 토로했다.
이어 박 교수는 IRA를 의식해 탈중국 속도를 내는 것은 FEOC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FEOC로 지정되면 해외우려기업 합자사까지 제약받게 돼 취사선택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설명이다. 중국을 FEOC로 규정하는 것이 미국에도 무리가 된다는 것이다.
또한 “실제로 IRA 규정 중 배터리 제품과 구성 소재의 정의에 따르면, 셀 조립시 직접 투입되는 것만 배터리 부품이라고 적혀 있다”며 “양극판, 음극판, 전해질, 분리막, 케이스, 탭 등이 여기에 해당하는데, 이것들은 구성 소재이지 부품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국내 배터리 셀·소재 업체들과 중국 배터리 업체의 합작법인(JV) 설립 사례들이 증가하고 있는 이유도 이러한 정의 때문으로 풀이된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업계에서도 중국 기업이라고 FEOC로 규정되거나 배제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지는 않다”라면서도 “지분율에 제한을 줄 것으로 예상하고 공급망 다변화에 힘쓰는 것”이라 답했다.
조은비 기자 silver_b@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