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와 검찰이 마약류 단순 투약자 등 단약 의지가 강한 이들이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에서 치료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마약류 사용자 외래진료 시범사업’을 진행하는 가운데, 전문가들 사이에서 회의적인 목소리가 적지 않다. 시범사업이 진행되더라도 인적·제도적 뒷받침과 치료·재활 인프라 확충 등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4일 서울시 등에 따르면 마약류 사용자 외래진료 시범사업은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이 마약을 끊겠다는 의지가 강한 사람을 선정해 동네 정신과의원으로 진료 의뢰하면 의원에서 외래진료를 통해 중독치료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를 위해 서울시는 최근 한국중독정신의학회,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서울중앙지검과 협약을 체결하고 ‘마약류 중독 외래치료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중독정신의학회와 신경정신의학회는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정신과의원의 마약류 중독치료 전문성을 제고하기 위해 교육과 진료지침 개발 등에 나선다. 정신과의사회는 의사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시범사업 참여를 독려할 예정이다. 검찰은 치료 의뢰를 확대하고 치료 대상자의 성실한 치료 참여를 보장할 방침이다.
이번 시범사업의 시행 배경은 마약류 사용이 일부 계층이 아닌 일반 시민 사이에서도 발생한 데 따른 것이다. 그동안 마약류 투약 재범 등 범죄취약집단을 대상으로 격리 위주의 치료가 시행됐다면 일상에서 일반 시민들이 치료 받을 수 있는 체계로 전환돼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받고 있다.
실제 보건복지부 국립정신건강센터가 지난 2021년 마약류 사용자 540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진행한 결과에 따르면,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취약계층 뿐 아니라 월수입 200만원 이상의 비교적 안정적인 직장과 수입을 가진 계층도 마약을 접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서울시는 올해 하반기 중 공모를 통해 사업에 참여할 민간 정신의료기관 10개소를 선정하고, 범죄취약집단 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의 마약류 중독치료 문턱을 낮춰 조기 개입하고 치료한다는 계획이다.
“환자 치료과정 모니터링돼야…재활상담·집단치료 병행 필요”
그러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기대보다 걱정이 앞선다. 검찰이 치료를 의뢰한 환자가 충실히 치료 받는다는 보장도 없는데 의뢰만 해놓고 방치하는 것은 아닌지, 마약 중독은 치료 못지않게 재활이 중요한데 치료 후 환자를 연계할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에서 치료 결과가 빛을 바래는 것은 아닌지 등의 우려가 꼬리를 문다.
이해국 한국중독정신의학회 이사장(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은 4일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치료 의뢰한 환자가 치료를 충실히 받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행정적 시스템이 얼마나 작동할지가 관건이다”라며 “검찰이 정신과의원에 환자를 넘긴 뒤 치료를 잘 받고 있는지만 보고하라고 하면 어느 누가 사업에 참여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최소한 보호관찰소나 검찰 내부기관이 환자 치료 과정을 파악하고 모니터링 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약 중독 환자들의 원활한 치료를 위해서는 병원 치료뿐 아니라 재활상담이나 집단치료 등을 병행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이러한 서비스가 가능한 기관은 인적·질적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 이사장은 “의사가 진료하고 약을 처방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한 재발 예방이나 단약이 되지 않는다. 의사는 5~10분 정도 만나더라도 일주일에 두세 번 30~40분씩 집단치료나 재활상담을 병행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선 공공정신보건 서비스 인프라 구축이 필요한데 기관 수가 적고 전문 인력도 한정적이다”라고 짚었다. 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관리하는 중독재활센터는 서울과 부산 2곳뿐이다.
이 이사장은 요양급여비(수가) 개선도 필요하다고 했다. 서울시에서 사업 지원 형태로 인센티브를 지급한다고 하지만 정신과의원의 마약 환자 치료 참여를 이끌어내는 데는 역부족일 것이라는 진단이다. 그는 “중독 환자는 상대적으로 치료기간이 길고 마약류 갈망을 줄이기 위한 직접적인 치료법이 없어 일반 환자보다 치료하기 더 어렵다”며 “일반 환자와 치료 수가가 같은 상황에서 정신과의원들의 참여를 독려하려면 치료 과정에 드는 노력과 위험 부담 등을 감안해 수가가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약 중독 환자는 일선 정신과의원에서 자주 진료하는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이 환자들을 잘 치료할 수 있도록 관련 교육이 보강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하주원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홍보이사는 “정신과 전문의가 마약 중독에 대해 배우긴 하지만, 진료가 많은 부류가 아니기 때문에 중독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의사 외에 치료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의사가 과연 몇이나 될지 모르겠다”며 “정신과의원 의사들이 마약 중독 환자를 잘 치료할 수 있도록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전했다.
아울러 하 홍보이사는 마약 투약 사범이 성실하게 치료·재활 활동을 할 경우 재판에 넘기지 않고 사회로 복귀시키는 ‘선도 조건부 기소유예 제도’를 적용하는 등 처벌과 단속 못지않게 치료와 재활에 무게를 둬야 한다고 피력했다.
그는 “궁극적으로 마약 중독 환자 스스로가 정신과의원을 찾아오도록 하는 유인책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검찰이나 정부는 마약 행위가 적발되면 엄하게 처벌한다는 차원보다 치료를 통해 중독을 극복하고 약을 끊을 수 있다는 방향으로 홍보를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외에도 하 홍보이사는 중독 치료 활성화 방안으로 △마약 성분 검사·진단 기관과 정신과의원 간 연계 △환자 자조모임 활성화 △마약 종류에 따른 치료법 수립 등을 제시했다.
“행정·제도 지원체계 마련”…중독재활센터 전국 17개 지역 확대
서울시와 정부는 마약 중독 환자 치료·재활이 원활하도록 지원체계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이다. 서울시는 이달 안에 사업에 참여할 정신과의원을 10곳 이상 선정하고 오는 8월 교육을 거쳐 9월에 본격적으로 시범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박행엽 서울시 마약대응팀장은 “호기심이나 어떤 상황적인 요인에 의해 마약을 접하게 된 시민들이 집 근처 정신과의원에서 제대로 치료를 받았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관련 기관 협약을 추진하며 이번 사업을 추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서울시는 마약류 중독자 치료를 위해 행정적·제도적 지원체계를 마련해 민간 의료기관이 마약 중독 치료에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겠다”고 말했다.
산하에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를 두고 마약 중독 환자 재활을 담당하는 식약처는 중독재활센터를 확대 설치할 예정이다. 권대근 식약처 마약예방재활팀장은 “현재 서울과 부산에 중독재활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이달 중으로 대전에 한 군데가 추가로 설치된다”며 “내년에는 전국 17개 지역 시·도 전체로 센터를 확대하기 위해 예산 마련 작업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치료를 주관하는 복지부는 서울시가 진행하는 시범사업에 대해 전해들은 것이 없다며 사업 전개 과정에서 협의과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승일 복지부 정신건강관리과장은 “사업의 큰 방향성만 나왔지 상세한 내용은 아직 마련되지 않은 것 같다. 서울시가 사업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복지부와 협의가 필요할 것 같다”며 “협의를 통해 복지부 차원에서 지원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협력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