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잇따라 발생한 흉기 난동 사건 피의자들이 정신질환을 앓았거나 관련 진단을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중증 정신질환자의 치료와 회복 관리 체계를 재정비해야 한다는 정신건강의학계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지난 6일 성명을 통해 “핵가족 또는 일인가구 중심 사회로 변화된 상황에 중증 정신질환의 무거운 부담은 더 이상 개인과 가족의 힘으로 감당하기 어렵다”며 중증 정신질환 치료와 회복을 위한 국가 차원의 투자를 확대하는 ‘국가책임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7일 경찰 조사에 따르면 경기 성남시 분당구 서현역 인근의 차량 충돌 및 칼부림 사건의 범인 최모(22)씨와 대전 대덕구의 한 고등학교에서 교사를 흉기로 찌른 20대 남성은 ‘조현성 인격장애(조현병)’와 우울증 진단을 받았으나 적절한 치료를 제때 받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학회는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제도 폐지를 논의할 시점이다”라고 주장했다. 보호의무자 입원과 의무조항을 폐지하고, 정신건강복지법을 개정해 인권과 치료가 동시에 보장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회는 “선진국에서는 사법입원이나 정신건강심판원 제도에 따라 중증 정신질환자의 ‘비자의 입원’을 위해 국가가 나서고 있다”라며 “환자의 이야기를 듣고 입원 결정에 책임을 짐으로써 환자의 인권과 생명을 보호하고 사회의 안전을 확보하며, 의료진은 치료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법입원 제도는 중증 정신질환자가 입원을 거부해도 사법기관의 판단에 따라 입원시킬 수 있는 제도다. 해외에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판단과 요청에 따라 법원에서 치료를 명하는 것이 보편화돼 있지만, 현재 국내에선 중증 정신질환자 본인이 입원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 보호자 2명과 서로 다른 병원의 전문의 2명이 동의해야 강제로 입원시킬 수 있다.
학회는 “입원을 포함한 어려운 결정을 가족에게만 부여해선 안 된다”라며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제도 폐지를 적극적으로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라고 강조했다.
더불어 사후예방을 위한 법정신의학 활성화와 치료 감호 시스템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도 했다. 방치된 중증 정신질환자가 증가하면서 교정시설 내 정신질환 수용자가 크게 늘면서 사고 발생도 증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학회는 “우리나라는 검찰의 치료감호청구가 지난 2021년 기준 불과 78건으로 매우 낮다”라며 “폭력성이 높은 일부 중증 정신질환은 보건복지부나 의료시스템이 아닌 법무부가 관장하는 법정신의학 시스템에서 적극 관리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대한조현병학회 역시 관련 성명을 내고 “조현병 증상 때문에 범죄가 발생했다고 섣불리 단정 짓지 말아달라”고 당부하면서도 정부와 보건당국을 향해 “조현병 치료와 관리를 위한 의료기관과 지역사회기관에 대한 적정한 재정 투자와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피력했다. 조현병은 초기에 집중적인 치료와 관리를 통해 회복이 가능한 질병임에도 현재 조현병 치료, 관리, 연구에 투입되는 재정은 다른 주요 질병에 비해 열악하다는 것이다.
조현병학회는 해외에서 조현병이 주로 발병하는 청소년과 청년 시기의 정신건강 관리를 위한 특별한 지원 체계가 만들어져 시행되고 있다는 점을 들며 “조현병 환자가 병원에서 꾸준한 약물치료와 함께 사례 관리, 정신사회적 중재를 받을 수 있도록 외래 유지치료를 강화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정부는 국민 불안을 최소화하고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해 관계부처 합동 테스크포스(TF)를 구성해 제도 개선 방안을 검토하겠단 입장이다. 복지부 측은 “정신질환자 입원제도 전반을 검토하고, 외래치료 지원제도를 개선하는 등 정신질환자 치료 실효성 제고를 위해 복지부, 법무부 등 관계부처가 합동 TF를 구성해 제도 개선 방안을 강구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