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 평균 4.47개 ‘중독센터’ 국내 1개…“전국 늘려야”

OECD 평균 4.47개 ‘중독센터’ 국내 1개…“전국 늘려야”

서울시 중독관리센터, WHO 등재…‘국가 단위 센터’ 역할 한계
“24시간 운영되는 국가 중독관리센터 설립돼야”

기사승인 2023-08-08 06:00:21
지난달 24일 경기북부소방재난본부가 대태러 유관 기관과 관내에서 수거된 유해물질 의심 우편물을 전수조했다. 경기북부소방재난본부

1700여명의 사망자를 발생시킨 ‘가습기살균제 사건’, 방사성 물질인 라돈이 침대에서 다량으로 검출된 ‘라돈침대 사태’ 등 생활 속 화학물질로 인한 중독사고가 증가함에 따라 독성물질 중독 예방과 안전에 관한 경각심이 높아졌다. 최근 전국적으로 배송된 ‘수상한 해외 우편물’ 소동은 생화학 테러에 대한 불안을 커지게 했다.

이에 시민들에게 정확한 대처법을 안내해 혼란을 줄이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불어 중독 정보를 모니터링하고 독성물질 정보를 취합 제공하는 인프라 수준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진다.

7일 기자와 만난 이성우 서울시 독성물질 중독관리센터장은 “독성물질에 대한 바른 정보를 24시간 제공할 수 있도록 전국 단위의 중독관리센터가 증설돼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2021년 10월 서울시의 ‘독성 물질 중독 예방 및 사고 안전에 관한 조례’로 설립된 ‘서울시 독성물질 중독관리센터’(중독관리센터)는 독성물질 데이터베이스(DB)를 통한 중독 감시체계를 구축하고, 중독질환 상담과 응급의료 정보를 제공하는 기관이다. 중독관리센터는 현재 고려대학교 안암병원이 위탁운영하고 있다.

중독관리센터 운영은 세계적인 추세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93개국 349곳에 중독관리센터가 설치돼 운영되고 있다. WHO 회원국 가운데 47%가 1개 이상의 중독관리센터를 두고 있으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엔 평균 4.47개가 설치돼 있다. 유럽연합(EU)은 설립을 의무화해 회원국 모두 1개 이상의 국가 중독관리센터를 지정·운영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경우 55개의 중독관리센터를 기반으로 중독감시체계를 수립해 24시간 중독환자 발생 양상을 관리하고 있다. 또한 미국독극물통제센터(AAPCC)를 통해 국가독극물데이터시스템(NPDS)을 구축하는 등 중독정보시스템을 통합 운영하고 있다.

서울시 중독관리센터는 지난 2월 WHO에 등재됐다. 이에 따라 글로벌 표준에 따른 센터를 확보하게 됐으며, OECD 38개국 회원국 중 중독관리센터가 존재하지 않는 유일한 국가라는 오명도 벗어던질 수 있었다. 하지만 서울 지역에 한정된 센터라는 점에서 WHO가 권고하는 ‘국가 단위 센터’의 역할에는 한계가 있다.

이 센터장은 “지역별·권역별로 중독관리센터를 두고, 국가 단위의 센터를 세워 중독사고에 대한 감시체계를 수립해야 한다”면서 “감시체계가 완성되면 특정 물질에 대한 중독사고가 많이 일어날 경우 이에 대한 모니터링을 통해 조기에 문제를 인지하고 개입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현재 전국 각지에서 오는 중독 상담 문의전화(헬프콜)를 받고 있다”라며 “지역별로 사례가 다르기 때문에 곧바로 관련 기관과 연계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짚었다.


이성우 서울시 독성물질 중독관리센터장. 고려대안암병원


지난해 기준 서울시 중독관리센터에 접수된 중독물질 노출 관련 상담 건수는 577건, 정보 제공은 1453건이다. 케이스별로 보면 식품 중독사고가 26건, 치료약물 290건, 생활화학제품 151건이다. 일반시민 신고 접수 사항 중에서는 소화기 안 가루를 흡입했다거나, 아기가 바닥에 짜놓은 바퀴벌레약을 먹었다거나, 디퓨저를 젤리나 음료수로 착각하고 삼켰다는 등의 생활화학제품 중독 상담 문의가 주를 이룬다.

유독성 물질에 의한 중독 사망도 적지 않은 편이다. 2021년 사망원인통계를 보면, 총 31만 7660명의 사망자 가운데 익사, 운수사고, 낙상 등 외인에 의한 사망이 2만6147명이며 이 가운데 유독성 물질에 의한 불의의 중독 및 노출은 240명으로 파악된다. 

이 센터장은 “일반 시민들의 경우 독성물질에 노출됐지만 병원을 찾지 못할 경우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보고 불안감을 느낀다”며 “중독관리센터는 바른 정보를 제공해 시민들의 불안을 낮추고 정확한 처치법을 설명해 유관 기관들에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상담과 조사 등을 통해 쌓인 독성물질 중독 질환자 정보는 추후 관련 부처에서 예방, 홍보, 제도 개선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다”라며 “국가 단위의 중독관리센터가 설치될 수 있도록 근거 법률이 제정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국가 중독관리센터가 24시간 운영될 수 있도록 관련 예산 지원이 이뤄져야 하며, 생활화학제품이나 화장품 등에 들어가는 구성 성분을 중독관리센터가 확인할 수 있도록 해 중독 상담 문의에 빠른 대처가 가능하도록 지원돼야 한다”면서 “중독관리센터가 전국으로 확산돼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처, 환경부, 농림축산식품부 등 관련 정부 부처들이 이를 잘 활용했으면 좋겠다”고 피력했다. 

비슷한 지적은 국회입법조사처에서도 나왔다. 이동영 국회입법조사처 연구원은 ‘국가 독성물질 중독감시센터 설립 필요성과 도입 방안’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국회 차원에서 국가 단위 중독관리센터 도입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해야 할 시점”이라고 했다.

이 연구원은 “화학물질 중독 사고에 따른 질병·사망을 줄임으로써 의료 서비스 비용을 줄일 수 있다”라며 “공중보건 위기 대응 역량을 증대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국가 단위 중독관리센터 도입이 시급하다”고 역설했다.

정부는 국가 단위 중독관리센터 설치를 위한 용역 연구를 진행하는 등 중독감시체계를 마련한단 계획이다. 환경부 화학제품관리과 관계자는 “살균제나 살충제, 락스 등 화학제품안전법에 따른 생활화학제품 등의 안전한 사용을 위해 늦었지만 국가 단위 중독관리센터 설치 연구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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