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절 얽힌 ‘비대면 진료’… 의료계 제시한 지침 살펴보니

곡절 얽힌 ‘비대면 진료’… 의료계 제시한 지침 살펴보니

23일 한국원격의료학회 공청회 열고 가이드라인 발표
금지 행위 명시한 네거티브 방식 도입
“약사 통해 약 배송 자문 구해”… 유통망 구축 필요성 피력
검토 필요한 의약품과 질환·증상별 진료 어려운 사례 명시

기사승인 2023-08-24 06:00:09
한국원격의료학회는 23일 서울의대 암연구소에서 ‘비대면진료 가이드라인 공청회’를 열고 학회 법제도분과와 정책기술분과가 공동으로 작성한 비대면진료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며 여러 학계의 의견을 수렴하는 시간을 가졌다. 왼쪽부터 백남종 한국원격의료학회 부회장, 강성지 정책기술분과위원장, 박상철 법제도분과위원장.   사진=박선혜 기자


의료계가 ‘네가티브(negative)’ 방식의 새로운 비대면진료 가이드라인을 내놨다. 초진 비대면진료에 적합하지 않은 증상과 의약품을 명시해 안전성을 높인 것으로 평가된다.

한국원격의료학회는 23일 서울의대 암연구소에서 ‘비대면진료 가이드라인 공청회’를 열고 학회 법제도분과와 정책기술분과가 공동으로 작성한 비대면진료 가이드라인 초안을 바탕으로 여러 학계의 의견을 수렴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동안 시범사업으로 진행됐던 비대면진료는 여러 문제들이 지적돼 왔다. 지난 18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 회의에서는 한 의원이 재진 진료가 원칙임에도 초진 환자에게 탈모약을 처방한 사례가 드러났다. 불법 의약품 유통, 마약 등과 같은 비급여 의약품 오남용 문제 등도 불거지면서 비대면진료 규제 개선 필요성에 대한 의료계, 시민단체의 목소리가 커졌다. 

백남종 한국원격의료학회 부회장은 “가이드라인은 증상을 하나하나 짚고, 약을 목록화시켰다. 기존에는 지침상 ‘재진 중심으로 하되 필요 시 초진’이라는 식으로 뭉뚱그려 표현했다. 문제가 발생해도 관리·감독이 어려웠지만 이번 지침에서는 논란의 여지를 없앤 네거티브 규제 방식을 도입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네거티브 규제란 법률이나 정책에서 금지된 행위를 명시하고 그 외 사항은 모두 허가하는 것을 말한다.  

이번 가이드라인은 환자, 의료인, 설비제공자로 나눠 용어를 정리했다. 설비제공자는 의사의 정보를 환자에게 제공하거나 진료를 연결하고 결제하는 산업계(플랫폼)를 일컫는다. 가이드라인 제3조 비대면진료 실시 기본원칙에서는 ‘처방은 의사 진료권과 선택에 전적으로 따르며 의사에게 대체조제 또는 임의조제를 권고 또는 강요할 수 없다’고 명시했다. 또 ‘설비제공자는 의약품 배송이 빠르게 이뤄질 수 있는 유통망을 구축해야 한다’고 정의해 약 배송에 대한 필요성을 나타냈다.  

박상철 학회 법제도분과위원장은 “미국, 일본 등 해외 가이드라인은 약 배송의 필요성을 제시하고 있다. 약 배송이 불가능하면 효용성이 떨어진다”면서 “국내에서는 일반의약품 배송도 불가능한 상황이다. 기존 법령과의 조화 측면에서 큰 원칙만 담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강성지 학회 정책기술분과위원장은 “약사들을 학회로 모셔 약 배송과 관련한 자문을 구했다. 비대면진료 서비스 완성을 위해서는 약 배송이 꼭 필요하다. 가이드라인 지침 안에 기록했다는 것은 그만큼 약 배송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뜻한다”라고 짚었다. 

환자 및 예약접수 응대 관련 내용. 한국원격의료학회 가이드라인 내용 일부   사진=박선혜 기자 

가이드라인 제7조에서는 초진 비대면진단에 적합하지 않은 증상이나 검토가 필요한 의약품을 열거했다. 이는 환자의 증상, 병력, 특이체질, 환경 등 세부적인 요인들을 통해 분류된다. 

초진 비대면 진료에 적합하지 않은 증상은 ‘의사용’과 ‘환자 및 예약접수 응대용’을 구분했다. 의사용 가이드라인에는 내과, 외과, 정신과, 신경과, 비뇨기과, 산부인과, 이비인후과, 피부과, 성형외과, 소아과, 치과 등 진료과별로 세분화한 제시가 담겼다. 환자용엔 전신 증상, 목, 가슴, 배 등 증상별 구체적인 양상을 나눴다.


초진 비대면처방에서 검토가 필요한 의약품. 한국원격의료학회 가이드라인 내용 일부.   사진=박선혜 기자

초진 비대면처방에 검토가 필요한 의약품으로는 △항균제 △항바이러스제 △아토피성 피부염 치료제 △호르몬제 △예방접종용 약물 △비타민제 그리고 각 진료과별 약물을 꼽았다. 

백 부회장은 “진료과별로 초진을 하지 않는 분야를 새로 제시하고, 가이드라인도 매번 개정해야 할 것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 이는 권고사항으로 초진 진료나 처방 제한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최종 판단은 의사에게 맡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결국 현장의 전문의들이 의견을 내고 이를 반영해야 한다. 네거티브 방식으로 규제를 하면 초반에 힘들 수 있지만 이후로는 편해진다. 애매하게 법을 만들면 만들 때는 쉽지만 나중에 사회적 비용이 커진다. 사회적 비용을 고려하면 만드는 쪽에서 힘을 들이는 게 맞다고 판단해 논의를 시작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고 전했다. 

학회는 해당 가이드라인을 복지부에 제출하고 향후 비대면진료 법제화 시 참고할 것을 요청했다. 

한편,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24일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고 비대면진료를 법제화하는 내용이 담긴 의료법 개정안을 심의할 예정이다. 앞서 복지부는 지난 6월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을 시작하면서 의료 현장이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주겠다며 이달 말까지 계도기간을 갖기로 했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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