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명할 필요 없던 최수영의 ‘남남’

증명할 필요 없던 최수영의 ‘남남’

기사승인 2023-08-26 06:00:16
ENA ‘남남’의 한 장면. KT스튜디오지니 

ENA ‘남남’의 은미(전혜진)·진희(최수영) 모녀는 독특하다. 미디어가 주로 그려왔던 ‘K엄마’의 희생정신과 초월적인 모성애, ‘K딸’이 가진 부채감은 이 드라마에 없다. 독립적인 삶을 살던 모녀는 어느 순간 문득 깨닫는다. 서로가 있어 버틸 수 있단 것을. 가족의 새로운 정의를 제시한 ‘남남’은 입소문과 함께 날아올랐다. 편견을 넘어서는 시도가 신선했다는 평이 잇따랐다. 편견을 깬 건 진희 역을 연기한 최수영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 24일 서울 청담동 사람엔터테인먼트 사옥에서 만난 그는 “대본을 읽을수록 나도 모르게 가졌던 고정관념이 깨졌다”고 돌아봤다.

첫 회부터 파격… 클리셰 부순 주인공에 화답하다

‘남남’은 첫 회부터 금기시된 내용을 전면에 내세운다. 미디어가 터부시한 여성 성욕과 자위행위를 엄마에게 덧씌운 게 대표적이다. 자위하던 엄마와 맞닥뜨리는 딸의 모습은 초장부터 화제였다. 최수영은 대본을 읽으며 “세포가 뒤집어 까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촬영 전 전혜진과 만나 술잔을 기울이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며 경악키도 했단다. 딸인 진희가 당황한 만큼 은밀한 순간을 들킨 은미 역시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다. 극 중 진희에게 ‘모르는 척하면 편하냐’고 묻는 장면이 그의 심리를 대변한다.

최수영은 연기하며 “클리셰를 부수는 주인공의 패기”에 강한 끌림을 느꼈다. 해당 장면은 그에게 ‘남남’의 방향성을 확실히 알게 한 계기다. “첫 회부터 강하면 이후엔 더 센 자극이 있어야 할 것 같잖아요. 하지만 감독님이 ‘남남’은 그런 드라마가 아니라더라고요. 이런 이야기를 하겠다고 포문을 여는 장면일 뿐 자극을 위해 만든 게 아니라는 이야기에 확신을 얻었어요.” 물 만난 고기 같던 전혜진, 새로운 매력을 보여준 박성훈, 지질한 캐릭터에 도전한 안재욱과 함께 최수영 역시 신명 나게 연기했다. “한 번 본 사람은 계속 좋아할 드라마”라는 그의 생각처럼 드라마는 꾸준히 상승세를 타며 ENA의 새 흥행작으로 올라섰다. 

‘남남’ 스틸컷. KT스튜디오지니

“날 위로한 드라마” 母 반응에 뭉클… ‘남남’과 공명한 몇몇 순간

모녀 관계를 다룬 만큼 최수영은 이번 작품을 어머니와 함께 시청하곤 했다. 방영 시간에 맞춰 본가를 찾았을 정도다. 마지막 회에서 비어있는 진희의 방을 보고 울던 은미가 나올 땐 최수영 모녀도 함께 눈물을 쏟았단다. 소녀시대 데뷔 전 숙소 생활을 위해 집을 떠난 일이 생각나서다. “자식이 엄마로부터 독립하는 게 아닌, 자식으로부터 엄마가 독립하는 과정이 좋았다”는 어머니의 시청평에 최수영의 마음도 뭉클해졌다. “이 드라마가 날 위로했다는 엄마 말이 마음에 남았어요. 저도 전희처럼 엄마와 비슷한 듯 다른 딸이라 ‘남남’이 더 제 이야기 같더라고요. 유독 눈물이 자주 났어요.”

마지막 회에서 진희는 모든 걸 훌훌 털고 여행을 떠난다. 이 장면을 찍고 최수영 역시 긴 여행을 떠났다. 온갖 나라를 떠돌며 마음을 비우고 다시 채우기를 반복했다. “힘든 일을 묻어만 두면 어느 순간 그 마음이 모나게 튀어나올 때가 있어요. 진희가 그런 타이밍에 여행을 떠난 게 아닐까 싶었어요. 제게도 떠나야 할 것 같은 순간이 있었거든요. 사람은 힘들면 괜스레 취미를 가지려 하고 자기개발서를 읽어요. 스스로를 원래대로 돌려놓기 위해 조급해지는 거예요. 사실 그런 건 헛수고예요. 묵묵히 견뎌야 생기는 굳은살이 있더라고요.” 견뎌야만 했던 어떤 순간, 수영 역시 진희와 마찬가지로 독립을 택했다. 진희를 연기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로 삼은 건 당연지사다. 그는 “애써 뭔가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남남’으로 깨달았다”며 미소 지었다. 이제 그는 진희가 남긴 빈자리를 채워줄 캐릭터와 만나길 기다린다.

그룹 소녀시대 멤버 경 배우 최수영. 사람엔터테인먼트 

고민 많던 소녀시대 수영에서 자신감 찾은 배우 최수영으로

소녀시대 수영에서 배우 최수영으로 자리를 잡기까지 많은 시간을 거쳤다. 그가 연기에 처음 발 들인 2000년대만 해도 아이돌 출신 배우를 향해 부정적인 꼬리표가 달라붙곤 했다. 데뷔 7년 차까지는 ‘우린 소녀시대로서 다 같이 있어야만 예쁘다’는 생각도 했단다. 연기 행보를 두고 좋지 않은 반응이 나와 위축될 때도 있었다. 떨어진 자신감을 메운 건 탄탄한 자존감이다. “말로는 ‘저 아직 잘 못해요’라고 해도 속으론 ‘나 소녀시대인데?’, ‘내가 해온 게 있는데 이 정도는 할 수 있지’라는 마음을 갖곤 했어요. 하지만 경력이 부족했으니 위축될 수밖에 없었죠. ‘남남’은 그런 제게 잘 해낼 수 있다는 믿음과 자신감을 준 작품이에요.”

“작품 속 캐릭터는 모두 작가의 소중한 자식이자 연출자의 주인공”이라고 말을 잇던 그는 “나한테 온 만큼 최대한으로 사랑받을 수 있도록 임한다”고 했다. 그렇게 달리다 보니 주위의 인정이 자연스레 따라왔다. JTBC ‘런 온’, 영화 ‘걸캅스’(감독 정다원) 등 대중에게 배우 최수영을 각인시킨 작품도 여럿이다. 눈앞의 행복만 봤던 20대와 달리 30대 최수영은 진정으로 좋은 게 무엇인지 들여다볼 여유가 생겼다. 평가에 익숙했던 아이돌로 살며 자신에게 자연스레 들이댔던 잣대를 넘어설 용기 또한 생겼다. “열일곱에 데뷔해 지금까지 왔다. 이제는 이룰 것도, 잃을 것도 없다”고 씩씩하게 말하던 그는 “과거엔 못하는 걸 감추려 애썼다면 이제는 다 보여주려 한다. ‘남남’ 역시 그래서 후회가 없다”며 웃었다.

못하는 걸 내려놓자 도리어 따라붙은 건 자신감이다. 최수영은 “캐릭터가 뚜렷하거나 여성이 주체적으로 뭔가를 이뤄내는 작품을 해나가고 싶다”며 쾌활하게 말했다. “적어도 이젠 배우 최수영에게 물음표가 뜨진 않는다고 봐요. 잘할 수 있다고 분명하게 말할 수도 있죠. 배우로서 쓰임새를 증명하려 애쓰지도 않아요. 지나온 작품이 저를 말해주는걸요. ‘남남’처럼요!”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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