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동댕 유치원 찾아온 ‘어린이 우영우’

딩동댕 유치원 찾아온 ‘어린이 우영우’

어린이 프로그램 최초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 등장
“장애인 대상화 않고 자연스러운 존재로 표현”

기사승인 2023-08-31 06:00:45
‘딩동댕 유치원’의 첫 자폐 캐릭터 별이. EBS

유치원에서 새 친구 ‘별이’를 만난 어린이들이 어리둥절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아무리 이름을 불러도 대답하지 않는 별이 때문이다. 선생님은 별이와 눈을 마주치며 친구들을 소개한다. 별이는 그제야 친구들을 발견하고 “안녕?”하며 손을 흔든다. 지난 18일 방송된 EBS ‘딩동댕 유치원’의 한 장면. 42년 전통을 자랑하는 이 프로그램에 자폐 스펙트럼 어린이 별이가 데뷔했다. 한국 방송 역사를 통틀어도 어린이 프로그램에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캐릭터가 출연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신드롬급 인기를 끈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자폐인의 자립 가능성을 제시했다면, ‘딩동댕 유치원’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공존을 보여준다. ‘딩동쌤’(성우 이선)은 어린이들에게 “별이는 우리랑 똑같은 점도 있지만 별이만의 생각이 있어. 우리 모두 누구나 자기만의 생각이 있는 것처럼”이라고 일러준다. 별이는 소리·빛·냄새 등 자극에 민감하고 의사소통이 더디다. ‘딩동댕 유치원’은 별이를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특성을 드러내되 ‘다름을 이해하면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잘못된 정보와 편견은 장애아동에 대한 배제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발달장애 아동의 특성을 정확하고 왜곡 없이 그려 이해시키는 것이 중요했다”는 게 EBS 측 설명이다.

‘딩동댕 유치원’을 연출하는 이지현 PD는 쿠키뉴스와 통화에서 “발달장애 아동을 대상화하거나 상업적 모델로 그리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고 말했다. 미디어 속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은 대부분 순진무구하거나(영화 ‘7번방의 선물’), 한 분야에서 천재적 기질을 가진 인물(KBS2 ‘굿 닥터’)로 표현됐다. ‘딩동댕 유치원’은 별이를 특별한 존재로 추켜세우지 않는다. 대신 별이가 감각하는 세상을 노래로 소개하며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이해하도록 돕는다. 이 PD는 “장애, 다문화, 성평등 같은 소재를 다루되 선동하듯 이야기를 펼치지 않으려 한다”며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들을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는 존재로 표현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자폐 캐릭터 줄리아(왼쪽)가 친구와 불가사리 포옹을 나누고 있다. PBS ‘세서미 스트리트’ 유튜브 캡처

해외에선 6년 전부터 어린이 프로그램에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이 등장했다. 미국 PBS ‘세서미 스트리트’의 줄리아가 최초다. 줄리아는 다른 캐릭터들보다 대답이 늦고 소음에도 예민하게 반응하지만, 비장애 캐릭터와 “보잉 보잉” 소리를 내며 논다. 몸을 부대끼는 포옹 대신 손가락을 맞댄 ‘불가사리 포옹’을 나누기도 한다. 줄리아와 그의 가족을 기획하는 데 자문한 자넷 베탄코트 교육학 박사는 USA 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줄리아를 선보이는 것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어린이가 비장애 어린이와 얼마나 많은 공통점을 공유하는지 보여줄 놀라운 방법”이라며 “(장애에 대한) 낙인을 지우고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향한 관점을 바꾸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고 말했다.

영국 공영방송 BBC의 유아 채널은 2017년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이 주인공인 TV시리즈 ‘파블로’를 방영했다. 프로그램은 이듬해 어린이 BAFTA(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로 오르는 등 반향을 일으키며 시즌2로 이어졌다. 지난해엔 시즌3 제작 소식도 전해졌다. 시즌3에선 주인공 파블로가 학교에 입학하며 벌어지는 일을 다룰 예정이다. 글로벌 장난감 업체 마텔은 지난해 ‘토마스와 친구들’에서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캐릭터 브루노를 등장시켰다. 바비 인형 콜렉션엔 다운증후군 바비를 추가하기도 했다. 김용직 한국자폐인사랑협회 회장은 “좋고 나쁨이 아니라 다름의 관점으로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을 조명하며 더불어 사는 사회를 역설하는 프로그램이 앞으로 더욱 늘길 바란다”고 소망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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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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