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흔적 속 피어난 생태…DMZ 역사 담은 ‘캠프 그리브스’

전쟁 흔적 속 피어난 생태…DMZ 역사 담은 ‘캠프 그리브스’

DMZ 오픈 페스티벌 ‘에코피스 포럼’ 개막

기사승인 2023-09-25 06:00:21
19일 경기 파주시 캠프 그리브스 탄약고에서 열린 ‘DMZ 오픈 에코피스 포럼’ 음악회. 사진=박효상 기자


“음악이 아름답고, 멋진 건 당연해요. 하지만 탄약고를 예술로 탈바꿈했다는 건 대단하죠. 새 생명을 불어넣은 것처럼 변했다는 게 감동이었어요.”

지난 19일 경기 파주시 캠프그리스에 도착한 오거스트 프라데토 독일 헬무트슈미트대학교 명예교수는 감탄을 내뱉었다. 에코(Eco, 생태) 피스(Peace, 평화) 포럼 취지에 맞는 완벽한 장소였기 때문이다.

이날 포럼 연사와 전문가, 시민들은 해마루촌, 캠프그리브스 등을 돌아보는 DMZ 투어를 함께 했다. DMZ 오픈 페스티벌의 중요한 학술대회인 ‘에코피스 포럼’이 DMZ 투어로 시작된 데는 이유가 있다. DMZ의 지속가능한 생태와 평화를 위한 비전을 논의하기에 적합한 곳이기 때문이다.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조직위원회 공동위원장)는 “해마루촌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도라전망대와 캠프 그리브스 등을 살펴보면서 이 아름다운 땅을 어떻게 보전할 것인가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19일 경기 파주시 캠프 그리브스에서 열린 ‘DMZ 오픈 에코피스 포럼’에 온 DMZ 투어 참석자들이 당시 미군 생활을 담은 전시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박효상 기자


DMZ 남방한계선에서 불과 2㎞ 떨어진 캠프 그리브스는 한국전쟁 정전 협정 이후 50여 년간 미군이 주둔했던 곳이다. 지난 2004년 미군이 철수했고, 2007년 8월 한국 정부에 반환됐다. 이후 근대문화유산으로서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현재는 평화 안보 체험시설로 변신했다. DMZ 오픈 페스티벌 행사 중 하나인 DMZ 전시가 캠프 곳곳에서 열렸고, DMZ 다큐영화제가 진행되는 등 문화, 예술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캠프그리브스 입구를 들어서니 미군 장병들이 임시로 사용하던 반원 모양의 퀀셋 막사와 부사관 숙소가 보였다. 중대장 막사, 창고 등으로도 쓰였다는 한 막사는 벗겨진 페인트칠 사이로 드러난 콘크리트에서 50여년 역사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곳곳에서 캠프그리스브 역사와 미군의 생활을 담은 전시, 같은 종이지만 남북에서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식물 작품 전시 등이 열리고 있었다.

입구 오른편 산책로를 따라가니 탄약고 두 동이 나타났다. 오른편 탄약고 한 동에는 ‘기타, 슈베르트, 탄약고’를 주제로 한 음악회가 열리고 있었다. 그랜드 피아노와 박제된 사슴 머리의 조화가 독특한 분위기를 풍겼다. DMZ 오픈 페스티벌의 총감독이자 피아니스트인 임미정 한세대 예술학부 교수의 피아노 연주로 음악회가 시작됐다. 피아노 선율과 풀벌레 소리 합주가 차가운 느낌의 탄약고를 가득 메웠다. 탈북민 기타리스트 이지안씨는 “고향 땅을 옆에 두고 연주하니 마음이 뭉클하다”며 우리에게도 익숙한 ‘나의 살던 고향을’을 연주했다.

19일 경기 파주시 캠프 그리브스에서 열린 ‘DMZ 오픈 에코피스 포럼’이 DMZ 투어를 진행했다. 사진=박효상 기자

투어에 참여한 시민들 사이에선 “너무 괜찮다” “취지가 좋다”는 반응이 나왔다. 이날 투어에 참석한 한 시민은 “DMZ가 관광지로서 충분히 가치 있다고 느꼈다”며 “젊은 청년들도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투어에 참가한 관광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존한 곳이 전 세계에 거의 없다”며 “생태를 보호하면서 잘 개방하면 국립공원보다 더 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캠프그리브스는 일반 관광지처럼 아무 때나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하지만 DMZ 생태가 보존되고 남북 평화가 오면, 캠프그리브스도 일반 시민들이 언제든 찾아가는 관광지가 될 수 있다. 윤덕룡 KIEP 전 선임연구위원은 “DMZ 인근 관광지를 이렇게 활용할 수도 있다”며 “(관광이 활성화되면) 해마루촌 같은 DMZ 마을 주변에 교육·의료시설이 살아나 더 살기 좋은 곳이 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
임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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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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