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를 사흘 앞둔 지난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회생법원 4별관7호 법정 앞 복도에 사람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어두운 표정으로 통화를 하거나, 법정 앞 안내판에서 본인의 이름을 확인하면서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2시가 되자 법정 문이 열리고 차례차례 신분증 검사 후 입장했다. 뛰어오느라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이들도 숨을 헐떡이면서 법정 안으로 들어섰다.
이날 7호 법정에서는 개인회생 사건 총 84건에 대한 ‘채권자집회기일’이 열렸다. 채권자집회기일은 개인회생 개시결정 2~3개월 후 채무자가 법원에 출석해야 하는 절차다. 불참하면 개인회생 인가 결정이 내려지지 않을 수 있어 채무자는 반드시 출석을 해야 한다. 법정 안은 개인회생 신청자, 채권자, 법원 실무자들로 콩나물 시루가 됐다. 앉을 자리가 없어 10명 안팎은 법정 뒷편에 선 채로 참석해아만 했다. 사람들의 체온으로 법정 안이 후덥지근해지자 몇몇은 연신 손부채질을 해댔다.
개인회생 8만748건…전년 동기 대비 40.9%↑ ‘껑충’
늘어난 빚을 감당하지 못해 공적 채무조정 제도에 도움 요청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특히 젊은층 증가세가 가파르다. 이들에게 황금연휴를 맞아 폭증한 해외여행 수요는 남의 이야기다.
대법원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접수된 전국 법원의 회생·파산 등 도산사건 접수건수는 13만7484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21.4% 증가했다. 도산절차 전 유형 가운데 면책사건을 제외한 개인회생·개인파산·법인회생·법인파산 사건이 모두 증가했다. 법인파산은 지난해 1월부터 8월까지 652건이었지만 올해 같은 기간에는 1034건으로, 58.6%가 늘었다.
개인회생 역시 증가폭이 컸다. 개인회생은 일정 소득이 있는 개인이 빚을 갚을 수 없을 때 3~5년간 최저 생계비(1인 기준 124만원, 2인 기준 207만원)를 제외한 소득으로 일정 금액을 갚으면 나머지 빚을 면제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지난해 1월부터 8월까지 5만7291건이었던 개인회생 건수는 올해 같은 기간 8만748건으로 집계됐다. 전년보다 2만3457건(40.9%)이 증가했다.
지난해 개인회생 신청자 46.6%가 2030대…최고치 찍었다
특히 다른 연령대보다 직업과 소득이 불안정한 젊은층이 고금리·고물가로 입은 타격은 컸다. 서울회생법원이 공개한 ‘2022년 개인회생 사건 통계 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개인회생 신청자 가운데 20·30대 비율은 46.6%로 조사됐다. 지난해(45.1%)보다 1.5%p 오른 숫자로 법원이 통계 집계를 시작한 2020년(42.5%) 이후 최고치다. 연령대별로 살펴보면, 30대가 31.4%로 가장 많다. 40대 27.9%, 50대 18.8%, 29세 이하 15.2%, 60세 이상 6.7% 순이다.
이날 채무자집회에 참석한 이승철(가명·22)씨는 카드론(장기카드대출)으로 사업자금을 빌렸다가 결국 개인회생 절차를 밟게 됐다. 변호사 비용도 만만치 않다. 이씨는 앞으로 3년간 변제금을 갚는 것 외에도 당분간 다달이 45만원은 변호사 비용으로 빠져나갈 처지다. 이씨는 “어느정도 자신이 있다고 생각해 사업을 시작했다. 예상보다 자금이 많이 필요해 여기저기 빌리다 보니 개인회생 신청까지 하게 됐다”라면서 “곧 추석이 다가온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는다. 당분간 해외여행은 꿈도 꾸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여파로 아직 상흔이 깊은 자영업자도 많다. 같은날 서울회생법원 앞에서 만난 자영업자 임모(33)씨는 지난 3년 동안 개인회생을 진행했다. 마침내 면책 신청을 하러 법원을 찾았다는 임씨는 “요식업을 하다가 코로나19로 결국 주저앉았다. 중간중간 변제금을 갚지 못해 개인회생을 다 마치지 못할 뻔한 위기도 있었지만 결국 잘 마무리하게 됐다”면서 “그래도 홀가분하다”고 설명했다.
파산자 취업 제한·법원에 따라 ‘들쭉날쭉’…“국가도 책임 분담해야”
가계부채 양적 팽창, 코로나19, 경기침체 등 악재로 다수의 차주가 취약차주로 전락한 상황에서 채무조정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행법상 파산자는 270여개 직업으로부터 자격이 배제된다. 채무자들이 파산 신청을 꺼리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다. 또 공적채무조정 절차의 신속·효율성, 채무자 우호적 결정비율이 각 법원별로 격차가 매우 크다는 문제도 제기됐다. 채무자가 어느 지역에 거주하고 있느냐에 따라 채무조정 절차에서 차별이 발생한다는 뜻이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과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한국파산회생변호사회는 지난 18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파산자는 수많은 법령에서 금치산자 및 한정치산자와 동급으로 취급당하고 있다. 파산자가 취업이나 자격 취득에서 받는 제한은 광범위하다”라면서 “파산선고를 받은 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없애야 한계채무자들이 파산제도의 문턱을 넘어 공적채무조정제도 안으로 들어올 수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빚은 비단 한 개인의 책임에만 돌릴 일이 아니다. 한국 가계부채를 OECD 최고 수준으로, 국민 가계의 가처분소득보다도 2배 이상 많은 엽기적 수준이 되도록 방치·조장한 국가 역시 가계부채의 질적·양적 악화에 책임이 크다”며 “다양한 사회주체들이 가계부채 문제 해결과 한계채무자의 사회적 재기를 위해 책임을 분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