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반장이 독거노인 손 이끌고 방문…‘원스톱’ 치매안심센터 [가봤더니]

통반장이 독거노인 손 이끌고 방문…‘원스톱’ 치매안심센터 [가봤더니]

노래 부르고 꽃꽂이 하며 치매 예방…어르신들 웃음꽃
남양주 치매안심센터, 운영 5년만 등록 환자 2만3650명
최호진 교수 “센터 활용해 지역사회 돌봄기능 강화해야”

기사승인 2023-10-25 06:00:02
어르신들이 남양주 치매안심센터의 치매예방 특화교실 프로그램 중 하나인 ‘기억 품은 노래 클래스’에서 노래를 따라부르고 있다. 사진=박효상 기자

“꽃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 형제 떠난 부산항에 갈매기만 슬피 우네~”

7명의 어르신들이 손뼉을 치며 가수 조용필의 노래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부르고 있는 이곳은 남양주보건소 치매안심센터다. 지난 2018년 문을 연 센터는 지역 주민들의 치매예방 상담부터 검진, 맞춤형 사례 관리, 서비스 연계까지 치매 관련 통합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 11일 찾아간 남양주 치매안심센터에선 치매예방 특화교실 프로그램 중 하나인 ‘기억 품은 노래 클래스’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손뼉을 치며 노래를 부르는 어르신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남양주보건소 치매안심센터 치매예방프로그램 중 하나인 원예교실 수업 모습. 사진=박효상 기자

이날 노래클래스 이전엔 ‘원예교실’ 수업이 있었다. 어르신들은 다육식물인 오베사, 홍미인, 우주목이 놓인 화분에 이름표를 꽂아 넣었다.

치매예방교실 강사가 “물은 두 달에 한 번 줘야 한다. 오늘 물을 줬으니까, 다음엔 언제 줘야 하나”라고 묻자, 한 어르신이 “12월”이라고 답했다. 강사가 “맞다. 계산을 너무 잘한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이어 “다음엔 2월에 주고, 4월, 그다음엔 6월. 이렇게 1년에 6번만 주면 된다. 물 주는 거 잊어버리지 말고, 꼭 예쁘게 키워달라”고 당부하자, 어르신들이 웃으며 “고맙다”고 인사했다.

수업을 들은 김영단(86) 할머니는 “혈압 때문에 병원에 다니다가, 치매예방센터를 추천받아 다니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센터에서 그림을 그리고 꽃꽂이도 하고, 노래도 불러 배울 것이 많아 좋다. 경로당을 다니지 않아 집에서 심심했는데 수업을 들으니 즐겁다. 치매예방에도 좋을 것 같다”고 전했다. 

치매예방교실에 참여하는 어르신들은 선별검사 결과 ‘정상’ 진단을 받은 경우다. 인지저하 또는 경도인지장애 진단이 나왔다면 주1회 2시간 동안 ‘인지강화교실’을 통해 인지능력을 유지·강화하는 훈련을 한다. 

치매예방교실과 인지강화교실을 수료했다면, 치매예방 운동교실도 일주일에 한 번 찾을 수 있다. 유산소와 근력 운동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운동기구 10개를 이용해 순환 운동을 한다. 작업치료사가 어르신들의 운동에 도움을 준다. 올해 8월 기준, 벌써 594명이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등 인기가 좋다. 

이러한 치매예방 프로그램이 의학적인 효과가 있을까. 센터의 협약병원인 한양대구리병원 최호진 신경과 교수는 “(집에서 혼자 생활하며) 타인과 단절되는 것보다 치매안심센터에 방문하면 인지기능 저하 속도를 늦추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면서 “전문가의 지도 아래 그림을 그리면서 손을 쓰고, 감정과 기억력을 자극하는 등 신체 움직임이 병행되면 비약물적 치료라도 의학적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남양주보건소 치매안심센터는 지역 주민들의 치매예방 상담부터 검진, 맞춤형 사례 관리, 서비스 연계까지 치매 관련 통합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사진=박효상 기자

치매 정보 얻으려면 센터로…동네가 달라졌다 

지난 2018년 센터가 생긴 뒤 등록한 치매 환자는 2만3650명에 달한다. 센터에 가면 치매 예방부터 검진, 기저귀 같은 조호물품 제공, 치매 환자 실종에 대비한 사전 지문 등록 업무까지, 모든 서비스를 ‘원스톱’으로 제공받을 수 있다. 남양주시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치매 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남양주보건소 치매안심센터가 문을 연 뒤 지역에도 변화가 일었다. 치매 관련 정보를 얻고, 지원을 받으려면 ‘센터에 가면 된다’는 인식이 생기면서다. 지역사회 돌봄 기능이 강화된 것이다.

센터의 협력의사로, 수요일마다 주민들과 마주해 치매진단검사를 하고 있는 최 교수는 “발이 넓은 목사나 통반장이 독거노인 손을 잡고 센터에 오는 경우도 많다”며 “보건소에서 ‘찾아가는 치매검사’도 실시하고 있어 놓칠 수 있는 환자들을 발굴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환자와 보호자들의 접근성도 확대됐다. 최 교수는 “환자와 보호자 얘기를 들어보면, 치매 관련 정보를 어디에서 얻어야 할지 몰랐는데, 진단부터 지원까지 한 곳에서 받을 수 있어 편리해졌다고 입을 모은다”며 “치매 환자 가족을 위한 상담·교육 프로그램도 있어 보호자들의 치매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의료진 역시 환자 걱정을 덜게 됐다. 최 교수는 “의사는 진료를 보고 약을 처방하지만, 진료실 밖에선 환자가 어떻게 지내는지 모른다. 일상생활 속에서 어떻게 케어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다”면서 “센터가 생겨 환자들에게 ‘센터에 가보라’고 권유할 수 있게 됐고, 또 지역사회 돌봄 기능이 강화돼 마음이 놓인다”고 했다.

이같은 서비스는 전국 어디서나 받을 수 있다. 전국 총 256곳의 치매안심센터에서 환자 정보를 연계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졌기 때문이다. 그는 “환자가 거주지를 옮겨도 정보가 연계돼 연속성 있는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며 “치매안심센터에서 치매 환자를 관리하면서 관련 데이터를 쌓는 중심부가 생겼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남양주보건소 치매안심센터 협약병원인 한양대구리병원 최호진 신경과 교수가 쿠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박효상 기자

초고령화 사회를 목전에 둔 만큼 앞으로 센터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중앙치매센터의 ‘대한민국 치매 현황 2021년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만 65세 이상 노인 인구의 치매 유병률은 10.38%로, 노인 10명 중 1명은 치매 환자다. 2050년에는 15.9%로 급상승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국가 치매 관리 비용은 2021년 18조7000억원에서 2050년에는 88조6000억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 차원에서 치매 관리에 힘써야 하는 이유다. 최 교수는 “치매 환자가 가정이나 지역사회에서 생활하다가 요양시설에 입소할 경우 급격하게 관리 비용이 증가하게 된다는 연구들이 있다”면서 “비용이 적게 소요되는 치매 초기 상태에서 최대한 지역사회와 함께 생활하는 기간을 연장하기 위해선 센터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치매 질환 특성상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는 크지 않을지라도, 센터 설치 뒤 치매 환자와 가족들 그리고 의료진들이 피부로 느끼는 변화가 있다고도 강조했다. 

그는 “질환 특성상 정량적인 결과 지표도 없고, 운영 4~5년 만에 눈에 띄는 어마어마한 성과를 만들어 낼 순 없으나 의료현장에서 보기엔 전문성을 갖춘 치매안심센터의 역할이 크다”며 “전국 256곳에 설치가 이뤄진 눈부신 성과를 낸 만큼, 정부가 치매안심센터를 적극 활용해 지역사회 돌봄 기능을 강화했으면 한다”고 전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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