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금융권에 따르면 실손의료보험 청구 간소화를 위한 보험업법 개정에 대해 의료계는 법적대응을 고심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의협) 관계자는 “보험업법 개정안 국회 통과 과정이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진행됐다”면서 “위헌소송을 대응방안 중 하나로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보험업법 개정안은 지난달 6일 14년 만에 국회를 통과했다. 이로써 내년 10월25일부터 환자가 요구할 경우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서류를 의료기관이 보험사로 전송할 수 있게 된다.
현재 보험소비자는 실손보험 청구시, 일일이 서류를 요양기관(병·의원, 약국)에서 발급받아, 서면으로 보험회사에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 시행 이후에는 소비자가 요청하면 요양기관(병·의원, 약국)에서 보험금 청구서류를 보험회사에 전자적 방식으로 전송 가능해진다.
정부는 이를 통해 고령층·취약계층을 포함한 보험 소비자는 그간 단순 청구 절차 불편 등으로 미청구되었던 소액 보험금 등을 보다 편리하게 청구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 또 의료비 부담이 감소하고, 보험 소비자 권익도 제고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법안 통과 후에도 의료계 반발은 여전하다. 대한의사협회·대한병원협회·대한치과의사협회·대한약사회 의료계 4개 단체는 지난달 보험업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자 축적된 의료 정보를 근거로 보험사가 지급 거절이나 가입 거부 등 명분으로 개정안을 활용할 수 있다며 우려 입장을 표명했다.
아울러 이들 협회는 정부에 보험개발원을 제외한 다른 기관으로 ‘정보 전송 대행기관’을 정하고, 전자적 전송 방식을 위한 인프라 구축 비용 등의 지원 방안도 구체화할 것을 요구했다.
전송대행기관은 의료계와 보험업계가 의견차를 좁히지 못하는 또다른 쟁점 중 하나다. 전송대행기관은 보험사와 의료기관 사이에서 진료기록과 보험 청구 정보를 중계해주는 역할을 한다.
보험업계에서는 전송대행기관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의료업계는 비급여 진료 기록 공개를 우려하며 반대해 왔다. 이에 양측은 합의 끝에 공적 기능을 수행하는 기관 중 한 곳을 전송대행기관으로 선정하기로 했다. 기관은 공공성·보안성·전문성 등을 고려해 대통령령(시행령)으로 정한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지난 3일 생명보험협회, 손해보험협회 및 소비자단체(소비자와함께)와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 TF'의 첫 회의를 열고 본격적으로 실손청구 간소화 작업 준비에 들어간 상태다.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의 차질없는 운영을 위해서는 30개의 보험회사와 10만여개의 요양기관을 전산으로 연결하는 전산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금융당국은 전송대행기관을 올해 안에 선정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앞서 금융위는 실손 청구 전산화 내용을 담은 보험업법 개정안 논의 과정에서 보험개발원을 전송대행기관으로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의료계는 보험개발원 역시 보험사가 주체인 기관이라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의협 관계자는 “진료정보는 개인정보 중에서도 민감 정보에 속한다”며 “전국민의 진료 정보가 한 곳에 집적될 경우 소비자에게 도움이 되는게 아니라, 보험사 손실을 최소화하는 데 더 이로울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보험개발원이 아닌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한 핀테크 업체 등 두 업권과 전혀 이해관계가 없는 제3의 기관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금융위는 일단 의료계 반대에도 예정대로 연내 전송대행기관 발표를 하겠다는 입장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의료계 반대와 별개로 정부는 TF를 진행하고 계속 의료계와 협의하는 등 예정대로 절차를 진행할 방침”이라며 “전송대행기관에 대한 입장표명은 올해 안에 있겠지만, 전송대행기관 지정은 시행령 개정이 필요해 수개월 정도 소요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