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월 여러 약가제도의 시행을 앞두고 제약사와 환자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약가정책이 제약사의 신약 개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면서 효과적인 신약 도입을 애타게 기다리는 환자들은 속이 타는 모습이다.
최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급여 적정성 재평가와 실거래가 약가 인하 등 굵직한 약가제도뿐만 아니라 해외 약가 비교 재평가, 사용량·약가 연동 사후관리제도 등의 약가정책이 개정·시행을 앞두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진행하는 약가 재평가 일정이 올 연말까지 마무리되면 내년 1월 적용될 전망이다. 새롭게 마련되는 해외 약가 비교 재평가제는 약제 가격 참조 대상 8개 국가의 기준 가격을 비교해 약가를 정하는 제도로, 내년 재평가를 거쳐 오는 2025년 고시 적용을 목표로 하고 있다.
기존 의약품보다 임상적 효과를 개선하면 약가를 우대하는 혁신가치 보상제도 등 신약 개발 유인책도 검토되고 있지만, 업계는 혜택 대상이 일부에 그칠 것으로 분석한다. 반면 강화될 약가정책은 업계 전반에 영향을 미쳐 신약 개발 동력을 잃을 수 있단 목소리가 나온다. 가장 논란이 되는 약가제도는 약가 사후관리제다. 사후관리제는 의약품의 연간 사용량(청구액)이 예상치를 초과했을 때 다음 해에 약가를 인하하는 제도다. 업계는 민관협의체를 통해 혁신 신약 기준 신설과 사후관리제 개선을 요청한 바 있다.
해외 약가 비교 재평가제에 대한 우려도 크다.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KRPIA)가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병 약제에 대해 해당 제도를 시뮬레이션 한 결과 기준 가격을 참조 대상 국가의 평균가로 적용하더라도 약 1000억원에 달하는 매출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나타났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중증·희귀질환 치료제 개발 과정이 고도화되는 만큼 혁신 신약에 높은 가격이 부여될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까다로운 신약 허가 과정과 약가제도를 적용해 현장의 어려움을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거듭되는 약가 인하로 인해 외국계 제약사들이 신약 출시국에서 한국을 건너뛰는 일도 생기고 있다. 미국제약협회(PhRMA)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최근 10년간 전 세계에서 개발·허가된 혁신 의약품 408개 중 급여 적용 후 한국에 도입된 치료제는 35% 정도에 불과하다. 외국계 신약이 국내에 도입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2년이다. 세계에서 첫 출시 후 1년 안에 한국에 진입하는 신약은 비급여 도입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5%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 신약 도입률이 18%인 것과 비교하면 3배 넘게 차이 난다.
신약 도입 속도가 글로벌과 비교해 뒤처지는 상황에서 재정 절감에 초점을 둔 정부의 약가정책이 환자들의 치료 보장성을 저해할 것이란 지적이 제기된다. 환자단체 관계자는 “최적의 의약품으로 신속한 치료가 요구되는 중증·희귀질환자들은 국내 신약 급여 소식을 기다리다 지쳐 치료제가 도입된 해외로 원정 치료를 나서는 실정”이라며 “까다로운 약가제도와 신약 도입에 대한 보수적 태도로 국민 건강권이 위태롭다”고 전했다.
정부는 사후관리제로 절감된 재정을 고가 신약 등재와 필수약제 약가 인상 등에 활용하고 있다며 사후관리제는 필요하단 입장이다. 오창현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장은 “오래 전에 등재된 약제 중 임상적 유용성이 의심되는 성분은 재평가를 통해 급여 축소나 약가 인하 여부를 결정한다”며 “약가 사후관리는 급여 등재 이후 합리적 지출 관리 차원에서 필요하다”고 밝혔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