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건 세 시선…누가, 무엇이 ‘괴물’인가 [쿡리뷰]

한 사건 세 시선…누가, 무엇이 ‘괴물’인가 [쿡리뷰]

기사승인 2023-11-28 11:00:02
영화 ‘괴물’ 스틸컷. NEW

싱글맘 사오리(안도 사쿠라)에겐 고민이 있다. 하나뿐인 아들 미나토(쿠로카와 소야)가 요즘 영 이상해서다. 갑자기 제 머리를 마구잡이로 자르지 않나, 운동화 한 짝만 신고 다니지 않나,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리지 않나… 명백한 따돌림 정황에 사오리는 학교로 찾아간다. 하지만 교사들 사이 분위기가 이상하다. 도대체 미나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영화 ‘괴물’(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은 수많은 괴물을 보여주며 누가 괴물인지를 묻는다. 전개가 이어질수록 관객은 자연히 문제가 어디에서 기인하는지를 찾는다. 처음 괴물로 지목받는 건 담임교사 호리(나가야마 에이타). 미나토에 따르면 그는 어마어마한 폭력 교사다. ‘너의 뇌가 돼지 뇌랑 바뀌어 네가 괴물이 된 것’이라는 언어폭력부터 피가 날 정도로 아이의 귀를 잡아당기거나 식사 속도가 느리다며 혼을 냈단다. 학부형 사이에선 유흥업소에 출입한다는 소문까지 돈다. 사오리는 호리선생을 문제로 규정하고 마구 따져든다.

반면 호리의 입장은 다르다. 미나토가 같은 반 아이 호시카와 요리(히이라기 히나타)를 괴롭힌다고 주장한다. 황당해하던 사오리는 당사자인 요리를 찾아간다. 요리 역시 호리 선생이 종종 미나토를 때리고 있으며, 아이들은 그걸 다 알지만 무서워서 말을 못 한다고 증언한다. 결국 호리는 체벌교사로 지탄받고 직장을 잃는다.

평범한 영화라면 여기서 마무리될 이야기는 갑자기 시점을 호리로 전환하며 방향을 튼다. 그러면서 호리를 괴물로 여기던 관객의 확신을 뒤엎는다. 이후 교장 후시미(타나카 유코)의 시점에 이어 마침내 미나토와 요리가 겪은 진상을 보여주며 관객의 의표를 찌른다. 히로카즈 감독의 전작들에선 볼 수 없던 구성이다. 사카모토 유지 작가가 만들어낸 극본을 바탕으로 감독은 영화를 이리저리 재구성한다. 화살을 돌리던 관객은 이 과정을 거치며 혼란에 빠지면서도 동시에 묵직한 깨달음을 얻는다.

‘괴물’ 스틸컷. NEW 

‘괴물’에서 직접적인 가해를 저지르는 이들은 한정돼 있다. 따돌림을 주도하는 급우들부터 가정폭력을 저지르는 아버지 등이 그렇다. 하지만 관객은 그들을 괴물로 규정하기 전 다른 인물들의 책임을 보여준다. 호리는 정말로 죄가 없는가? 교장은 방관자로만 머물지 않았나? 무작정 선생을 몰아간 사오리에게도 문제가 있지 않나? 헛소문을 퍼뜨린 학부모는? 적당한 선에서 일을 덮고자 한 동료 교사들은? 이 같은 질문의 연속에서 진짜 가해자들은 유리된다. 관객 심리를 쥐고 흔드는 히로카즈 감독의 연출력이 빛을 발한다.

굵직한 가해 속에서 자잘한 가해는 모습을 감춘다. 무의식적으로 남자다움을 강조하는 호리 선생의 화법은 아이들에게 잠재 억압으로 작용한다. 의도 없이 행해지는 수많은 할퀴기 속 미나토와 요리는 조금씩 멍든다. 하지만 이들도 마냥 책임에서 자유롭진 않다. 상황을 숨기기 위한 거짓말이 쌓이며 호리에게 치명타를 입힌다. 이들 역시 호리처럼 나쁜 의도가 있던 건 아니다. 교장 역시 수면 아래서 가해를 저지르긴 매한가지. 어디에도 뚜렷하게 화살을 돌릴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미나토와 교장이 빈 음악실에서 울음을 토해내듯 관악기를 부는 장면은 묘한 울림을 남긴다.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거짓말을 한 두 사람이 나누는 위로이기도 하다.

영화를 볼수록 괴물을 색출하려던 관객의 노력은 헛수고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제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누가 괴물인지를 찾다 무엇이 괴물인지를 생각하다 보면 진득한 여운이 남는다. 상영시간이 지날수록 거장의 저력에 감탄만 나온다. 곱씹을수록 새롭게 다가오는 ‘괴물’이다. 오는 29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126분.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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