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H지수를 기초로 한 주가연계증권(ELS)의 만기가 이달부터 본격 도래한다. 금융감독원은 은행·증권사 현장검사에 착수했다. 불완전판매 의혹이 사실로 확인되면 판매사는 거액의 배상금, 과태료뿐만 아니라 최고경영자(CEO) 중징계 제재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
8일 금감원은 업권별 최대 판매사인 KB국민은행과 한국투자증권을 시작으로 현장검사에 돌입했다. ELS 주요 판매사 12곳은 KB국민·NH농협·SC제일·신한·하나은행 등 5개 은행과 KB·NH투자·미래에셋·삼성·신한·키움·한국투자증권 등 7개 증권사다. 이달 중 나머지 10개 판매사에 대해서도 현장검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상반기 만기 도래액 10조…현장검사 착수한 금감원
ELS란 개별 주식 가격이나 주가지수 움직임에 따라 손익이 결정되는 금융상품이다. 주가 또는 지수가 떨어지거나 올라도, 미리 정해진 구간 안에서만 움직이면 약정한 수익률을 지급한다. 미리 정한 수준보다 가격이 내려갈 시 원금 손실이 발생하는 고위험·고난도 상품이다. 홍콩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우량 중국 국영기업 50개로 구성된 홍콩H지수는 2021년 판매 당시 1만~1만2000을 기록했지만 현재는 5769포인트(지난해 12월 말)로 반토막난 상태다.
투자자 손실은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금감원이 밝힌 전체 판매액은 19조3000억원으로, 이중 15조4000억원이 올해 만기 도래액이다. 이중 △은행 15조9000억원(24만8000계좌) △증권은 3조4000억원(15만5000계좌)다. 2021년 판매 상품의 조기상환 실패 등 영향으로 전체 잔액의 79.6%인 15조4000억원의 만기가 올해 안에 도래한다. 분기별로는 올해 1분기 3조9000억원(20.4%), 2분기 6조3000억원(32.3%) 등 상반기에만 52.7%(10조2000억원)의 만기가 집중돼 있다.
판매 줄여야 하는데 오히려 늘렸다…수수료 수익 증대 목적
금감원은 사전조사 결과를 통해, 일부 판매사의 위반 소지를 확인했다. 먼저 판매한도 관리 미흡 문제가 발견됐다. 일부 판매사는 홍콩증시 위기상황 및 판매사 자체기준을 감안할 때, 고위험 ELS 판매를 억제해야 했는데도 수수료 수익 증대를 위해 오히려 판매한도를 증액해 판매한 것으로 나타났다.
뿐만 아니다. KPI(고객 수익률 항목 등) 배점에 고위험·고난도 ELS 상품을 포함시켜 판매 확대를 유도한 정황, 그리고 계약서류 미보관 등 적지 않은 문제점이 발견됐다는 게 금융당국 입장이다. 금감원은 “현장검사를 통해 H지수 ELS 판매와 관련한 금융회사의 불완전판매 등 위법사항 확인 시, 엄중히 책임을 물을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엄정 조치” 강조한 금융당국…과거 사례 보니
불완전판매가 확인된 판매사에는 어떤 조치가 취해질 수 있을까. 선례인 지난 2019년 하반기 발생한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원금 손실 사태를 살펴보자. 당시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DLF 불완전판매로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에 대해 각각 190억원, 160억원의 과태료 부과를 의결했다. 두 은행은 ’6개월 업무 일부 정지(펀드)’ 제재도 받았다.
또 거액의 배상액을 토해내야 될 것으로 보인다. DLF 사태 때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는 40~80%로 역대 최고 배상 비율을 내놨다. 우리은행은 DLF 자율배상 고객 600여명에게 약 416억원의 배상액을 지급했다. 하나은행도 고객 1500여명에 자율배상을 완료했다. H지수 ELS의 경우, 손실예상액(내년 상반기 4조6000억원)이 DLF 사태때 불완전 판매로 발생한 손실의 10배가 넘는다. 때문에 배상액 규모 역시 적지 않을 전망이다.
금융당국이 CEO를 상대로 중징계를 결정할 수도 있다. 손태승 전 우리금융회장 겸 우리은행장,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회장(DLF 판매 당시 하나은행장)에는 임원 연임과 3년간 금융권 취업을 제한하는 중징계인 ‘문책 경고’ 제재가 내려졌다. 다만 손 전 회장의 경우 이에 불복해 문책 경고 등 처분 취소 청구 소송을 제기해 지난해 12월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 판결을 받았다. 함 회장은 중징계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재판을 진행 중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아직 검사 초기 단계라 구체적인 제재 수위에 대해 말하기는 이르다”면서 “검사가 좀 더 진행되고 나서야 윤곽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