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씨는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이 최근 발표한 이번 시험에서 250점 만점에 247점(98.8점/100점 환산 기준)을 받아 응시자 2738명 중에 전체 1등으로 합격했다.
신씨는 방사선사의 길은 운명이었다고 말했다.
유년기 가까이서 친가와 외가 조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란 신씨는 건강이 좋지 않은 할머니 할아버지와 병원을 함께 자주 다니게 됐다.
중학생 당시 병명을 접하게 됐고 아픈 조부모를 낫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에 온라인으로 검색하고 치료법을 찾아 나섰다.
방사선과에서 조기진단과 함께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다는 정보를 얻게 되고 방사선 학문에 관심을 가졌다.
청소년기는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고 방사선 학도가 되기 위해 수학과 과학 과목에 애착을 갖고 공부했다.
대구보건대 방사선학과를 선택한 신씨의 주관은 뚜렷했다.
1972년 3월에 출발 900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50여년의 전통과 전국 대학 관련 학과 가운데 가장 많은 방사선사 동문들이 현업에 종사하고 있고, 방사선학문의 책임과 권위가 높은 방사선취급감독자면허(SRI) 자격을 가진 교수들이 강의를 하고 있는 대구보건대를 결정하게 됐다.
또 신씨는 “입학 후 국내 원자력 사고가 발생할 경우 진단과 대처를 위해 국가의 부름을 받는 교수님들이 학과에 계시다는 점도 놀라웠다”고 말했다.
그는 또 “방사선 학문은 사회에서 쓰임새와 분야가 넓어서 다양한 직군으로 진출이 가능하다. 병원 이 외에도 산업체에서 비파괴 검사(물질을 파괴하지 않고 내부를 확인하고 미세균열이 있는지 확인)와 공항 등에서 보안검색 장치를 활용해 마약류, 흉기류 검사라든지 감자 같은 농작물은 싹이 나면 솔라닌이라는 독이 생겨 이를 방지코자 방사선을 쏘아 싹이 나지 못하게 해 수출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신씨는 방사선 학문의 최고조로 몰입됐던 특별한 경험도 소개했다.
군대를 전역 후 복학 전 8개월 동안 생활비를 벌기 위해 칠곡경북대병원의 약제부(항암조제실)에서 6개월간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다.
처음 의학적인 전문 단어를 외우는 등 배울 것이 많아 당황했고 빠르게 적응코자 퇴근 후 항암제를 개봉할 때마다 나오는 약과 수액에 대한 설명서를 버리지 않고 모두 가져와 통째로 외웠다.
집중해 공부를 하다 보니 항암제와 방사선 치료를 병용하게 된다면 치료 효과가 우수하다는 것을 알게 됐고, 업무에 빠른 적응과 함께 일하시는 선생님들의 신뢰도 덩달아 따라오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방사선학과 전병규(59) 학과장은 “신동운 학생은 품성이 바르고 성실할뿐만 아니라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목표 의식이 분명하면서 후배들에게도 귀감과 훌륭한 롤 모델이 되는 학생”이라고 칭찬했다.
신동운씨는 “전국 수석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학과 교수님들의 격려와 지도 덕분이며, 특히 체계적인 교육과정을 중심으로 새로운 국가시험의 경향을 빠르게 파악해 학생들에게 심층적인 전공 학습활동을 돕는 학과의 모든 교육 커리큘럼들이 큰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그는 또 “임상에서도 성실히 공부하고 정진하면서 진정으로 환자를 보살피는 가슴 따뜻한 방사선사가 돼 방사선사를 꿈꾸는 후배 양성에 일조하고 싶다”고 소감을 전했다.
대구=최태욱 기자 tasigi72@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