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상선암·기타 피부암 등 유사암 진단비를 2000만원까지 보장하는 보험상품이 과당경쟁을 이유로 금융당국의 제지를 받았다.
30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이번달 초부터 삼성화재, 롯데손보, 메리츠화재 등 일부 손해보험사들이 유사암 진단비를 2000만원까지 지급하는 상품을 판매했다. 해당 상품의 판매가 늘어나자, 다른 보험사들도 비슷한 상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과열경쟁 양상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한 금감원이 이를 제지하며 지난 27일부터 이 같은 상품들의 판매가 중단된 상황이다.
유사암은 보험금 지급을 위해 약관상 구분하는 개념으로 갑상선암·기타 피부암·제자리암·경계성 종양 등을 뜻한다. 일반암과 달리 발병 확률이 높지만, 상대적으로 치료가 쉽고 완치율도 높아 소비자들이 관심이 많다.
보험설계사들은 ‘유사암 진단비 2000만원 1만원 플랜’ 등의 문구로 소비자들을 유혹했다. 일반 암보험보다 저렴한 매달 1만원대 보험비로 유사암 진단비를 2000만원까지 보장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정해진 규정은 없지만 유사암 진단비는 일반암 진단비의 10~20%를 지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일반암에 대해 1000만원을 보장하면, 유사암은 200만원까지만 보장해주는 식이다. 2022년 유사암 진단비를 두고 보험사들 사이에 과열경쟁이 일어나자 금감원이 합리적으로 운영하라고 권고한 이후 이 같은 공식이 굳어졌다.
하지만 이번에 나온 상품들은 일부 일반암의 진단비만 큰 금액으로 설정하는 방식으로 유사암 진단비를 높였다. 일반암 진단비는 100만원으로 설정하고 발병률이 낮은 뇌암이나 두경부암, 12대특정암 등의 진단비를 1억원으로 설정, 유사암 진단비를 2000만원으로 맞춰 기존 암보험보다 낮은 보험료가 가능하게 한 것이다.
유사암 진단비를 둘러싼 경쟁은 2019년 손보사들이 유사암 진단비 특약 한도를 높이면서 시작됐다. 일반암 진단비의 10~20% 정도였던 유사암 진단비가 수천만원으로 올랐다. 많게는 유사암 진단비 가입금액을 5000만원까지 보장하는 상품까지 등장했다.
금감원은 유사암 보험의 보장한도가 소득보전 수준보다 크게 책정될 경우 보험사기 관련 분쟁이 증가할 수 있다며 실제 치료비와 소득보전 수준에 맞춰 설정할 것을 권고했다. 보험금을 줄 때 더 까다롭게 심사하는 등 보장성이 떨어질 우려가 있다는 의미다. 또 지급보험금이 증가해 보험사의 손해율 악화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업계에서는 최근 금감원의 과당경쟁 주의보가 지나치게 반복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과당경쟁을 못하도록 막는 과정에서 좋은 보험상품도 휩쓸려 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또 금융당국의 지나친 간섭이 업계 혁신을 막고 상품 개발 의지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동시에 보험업계 역시 지나친 경쟁을 자제하고 자정 작용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부터 특정 보험 상품이 잘 팔리면 다른 업체들이 모두 비슷한 상품을 내놓으며 경쟁이 과열되고 금융당국에 제지당하는 구도가 반복되는 것 역시 문제란 얘기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예전보다 금융당국의 가이드가 더 많이 나오긴 하지만, 그만큼 업계 분위기가 쉽게 과열되는 것도 사실”이라며 “보험사들도 다 같이 따라가는 분위기를 자제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그럼 다른 보험사에 뒤처지니 당분간 이 같은 형국이 계속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당국에서 경쟁을 사전에 막을 장치가 없다”라며 “보험상품이 당국의 가이드나 스크리닝을 거친 후 출시가 되는 구조면 좋겠지만, 현재는 그런 구조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