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대학 입학 정원 증원으로 촉발된 의정 갈등이 100일 넘게 이어지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4일 의사 총파업(집단 휴진) 찬반을 묻는 투표에 들어간다.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들도 이날 총파업 여부를 놓고 투표를 진행한다. 의정 갈등이 격랑 속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4일 의료계에 따르면 의협은 총파업 찬반 투표를 이날부터 7일까지 온라인으로 실시할 예정이다. 지난 2일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에서 집행부와 전국 16개 시도의사회장이 모인 가운데 긴급회의를 열고 집단 휴진에 대한 전 회원 투표를 실시하기로 합의한 데 따른 것이다.
의협은 투표 이후 오는 9일 전국 대표자 회의를 열고 총파업 시기와 방식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20년 의료계가 정부의 의대 증원 추진에 반대해 총파업에 돌입했을 당시 동네 병의원의 집단 휴진 참여율은 10% 정도였다.
파업 방식은 무기한 집단 휴진이 아닌 장기전에 유리한 주 40시간 단축 진료, 토요일 휴진 등이 거론된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정부의 증원 정책 등에 반발해 100일 넘게 병원과 학교를 떠나 있는 가운데 선배 의사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개원의들은 병원 문을 닫고 파업에 동참하는 것을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이다. 자영업자에 가까운 개원의가 장기 휴진을 하면 직원 피해와 함께 경영난을 겪을 수 있고, 자칫 단골 환자를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황규석 서울시의사회 회장은 지난 3일 기자간담회에서 “파업만이 투쟁은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40시간 준법 진료를 하겠다는 것”이라며 “의사는 정치인이 아니다. 투사도 아니다. 우리가 왜 투쟁해야 하나. 우리는 환자 옆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한 사람이고 그저 환자 옆에 있으면 된다”고 말했다.
박종환 25개 구의사회협의회 회장 역시 “파업이나 휴진은 모든 국민의 권리이지만, 의사와 국민 모두가 불행해질 수밖에 없는 선택”이라며 “국민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이 사태가 해결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도 이날 오후 전체 교수들이 참여하는 총회를 갖고 총파업 찬반 투표를 진행한다. 비대위는 3일 정부가 발표한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 철회 검토가 사직 전공의들에 대한 면허 정지 등 행정처분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비대위는 이날 총회에서 총파업 여부를 비롯해 파업 시기와 강도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총파업은 응급실과 중환자실, 신장 투석, 분만 등 환자의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를 제외한 정규 수술과 외래 진료를 중단하는 방식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향후 의정 갈등 양상에 따라선 다른 의대 교수 단체인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와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도 총파업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전의비 관계자는 “총파업 투표 계획은 없다”면서도 “서울의대 비대위 투표 결과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전했다.
이날 정부는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주재로 의료개혁 현안 관련 브리핑을 열 예정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 발표될지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전공의들의 사직서 수리 허용 여부에 대한 내용이 발표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사직서 수리 명령 금지가 철회되면 병원장이 전공의와 상담을 통해 복귀를 하도록 설득하고, 여러 가지 사정으로 수련을 할 수 없는 경우 사직 처리를 할 수 있도록 병원장에 권한을 줄 방침이다.
그러나 사직서 수리가 되더라도 전공의들이 병원으로 돌아올지는 미지수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은 3일 SNS에 “저는 안 돌아간다. 잡아가도 괜찮다. 언제나 어느 순간에도 떳떳하고 당당하다”고 적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