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병원 ‘간호사 채용’ 씨 말랐다…경영위기에 갈 곳 잃은 학생들

대형병원 ‘간호사 채용’ 씨 말랐다…경영위기에 갈 곳 잃은 학생들

기사승인 2024-06-13 11:01:01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간호사들이 환자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쿠키뉴스 자료사진

 

진료를 축소한 대학병원의 적자 경영이 심화하는 가운데 간호사 채용에도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일제히 상반기 신규 간호사 모집 시기를 미루면서 예비 간호사들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13일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서울성모병원, 세브란스병원, 고려대의료원, 삼성서울병원 등 다수의 상급종합병원들이 2025년 공개 채용을 늦추고 있다. 수도권 상급종합병원 22곳 중 중앙대학교병원 1곳만 신규 채용공고를 낸 상태다. 기존 일정대로라면 5월 공고를 내고 7월부터 면접을 본격 실시한다.  
 
상반기 채용 여부에 대해 묻자 병원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전공의 이탈로 인한 의료 공백이 100일 넘게 이어지면서 정상 운영이 어려워진 병원들은 기존에 채용했던 예비 인력도 투입하기 힘든 상황이다.   
 
고려대의료원 관계자는 “정확한 채용 일정은 잡히지 않았다”며 “의료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지켜봐야할 것 같다”고 언급했다. 서울성모병원 관계자도 “올해는 이미 진행했던 채용 순서대로 신규 간호사를 순차적으로 배치 중”이라며 “2025년 채용 계획은 미정”이라고 밝혔다. 순천향대병원 관계자는 “현재 발령대기 중인 예비간호사들도 입사가 지연되고 있다”며 “의료사태가 마무리돼야 신규 채용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 
 
올해부터 시행하는 ‘동시 면접제’에 따라 채용 일정 조율에도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동시 면접제는 대형병원이 신규 간호사를 수개월에 걸쳐 순차적으로 발령하는 일명 ‘대기 간호사’ 문제를 해결하고자 22곳 수도권 상급종합병원의 채용 공고를 동시에 내도록 한 제도다. 삼성서울병원 관계자는 “동시 채용을 하려면 병원 간 상호 협력이 중요하다”며 “의료 전체 사정을 고려해 채용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세브란스병원 관계자도 “간호사 동시 면접제에 참여해 다른 대학병원과 일정을 비슷하게 맞추게 될 것”이라고 했다.  
 
올해 졸업을 앞둔 간호학과 학생들의 한숨은 깊어진다. 특히 수도권 대학병원 취업을 준비해오던 지방대 학생들은 올해 모집이 없을 수 있단 걱정에 발을 구르고 있다.
 
충북 지역의 한 대학교 간호학과 4학년 학생인 김도연(가명·23세)씨는 “집단 휴진 등 의료대란 때문에 채용이 밀리자 졸업을 앞둔 4학년 학생들의 분위기가 암울하다”며 “토익, 토플, 봉사활동 등 그간 쌓아올린 모든 것들이 무너지는 기분”이라고 털어놨다. 김씨는 “중소병원 가기 위해 서울까지 갈 수는 없고, 지역 병원은 근무 인프라가 열악하다”며 “하반기에 공고가 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걱정을 떨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수도권 간호전문대학에 다니는 최솔(가명·25세)씨는 “매년 취업이 힘들어지고 있지만 올해가 역대 최악의 취업난으로 꼽힌다”며 “해외 간호사 시험을 준비하거나 대학원에 진학해 다른 분야에서 길을 찾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수도권 대학 간호학과에 재학 중인 3학년 이재성(가명·25세)씨는 “자신이 다니는 대학교와 연계된 병원에도 취업이 안 된다는 말이 나온다”라며 “취업 환경이 나아지길 기다리며 휴학을 결정하는 동기들도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의대 증원 사태로 간호사의 피해가 막심하다며 의료계와 정부가 하루빨리 합의점을 도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익명을 요구한 C대학교 간호학과 교수는 “정부와 의사 단체 사이에서 가장 피해를 보는 건 환자와 간호사”라며 “중소병원 간호사들은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밀려드는 환자들을 보고 있고, 예비 간호사들은 취업을 걱정하며 하루하루 말라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의사가 부족해 생긴 부분을 전문간호사가 채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료보조(PA) 간호사를 양성한다는 이상한 대책들을 내놓는 것도 문제”라며 “정부와 의사단체가 합리적 대안을 찾아 현 사태를 즉시 해결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또 “매년 간호학과 입학 정원이 늘면서 취업이 더 어려워지고 있는데, 대학병원 모집 인원은 줄고 있다”면서 “중소병원 취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간호사 단체와 정부는 예비 간호사의 상급종합병원 입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협의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간호단체 임원급 관계자는 “대한간호협회와 보건복지부, 22곳 상급종합병원 담당자가 모여 신규 간호사 채용을 위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며 “늦어도 10월 중에는 채용 공고가 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전문의 중심 병원으로 전환하는 정책에 맞춰 향후 줄어든 전공의만큼 간호사 수요가 늘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전문 간호사 채용도 적극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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