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양봉(養蜂)협회가 기획재정부에 공익법인으로 지정받기 위한 정관 개정 준비에 나섰다. 양봉협회가 한국한봉(韓蜂)협회 등과 공동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의견 대립이 지속되자 단독으로 법인 지정을 추진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를 두고 일부 농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양봉협회에는 서양 꿀벌업자들만 포함돼 있고 한봉업자는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양봉협회가 단독으로 공익법인으로 지정되면 규모가 작은 다른 협회들은 설 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양봉협회는 지난 18일 ‘2024년 제3차 이사회’를 열고 공익법인 추진을 위해 정관을 신설하는 안을 이사회 안건으로 제출했다. 기부금을 받은 경우 당해연도 모금액 및 지출내역을 회계연도 종료 후 6개월 내에 홈페이지에 공개한다는 조항이다.
공익법인으로 지정되기 위해서는 연간 기부금 모금액과 활용실적을 공개한다는 내용이 정관에 포함돼야 한다. 공익법인으로 지정될 경우 기업의 기부금 손금처리가 가능해진다. 양봉협회는 납부된 기부금을 기업체가 손금산입할 수 있게 해 기부에 동기를 부여한다는 계획이다.
양봉협회 관계자는 “양봉은 공익적 가치가 있지만 세수문제 등으로 정부 보조금을 받기 쉽지 않다”며 “공익단체로 지정받아 기업에서 기부한 만큼 세금을 면제받을 수 있는 영수증을 발급 시스템이 갖춰지길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기부금을 통해 양봉 교육사업과 밀원 식재 사업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안건은 이사회에 제출만 된 상태로 총회를 거쳐 농식품부, 기획재정부 등 지나야 할 단계가 남아 있어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이 같은 행보에 한봉 산업 규모는 더 위축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자조금에 이어 공익법인 지정도 단독으로 진행하면 상대적으로 한봉 농가 규모는 더욱 작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앞서 양봉협회를 비롯한 한봉협회, 한국양봉농협, 한국벌꿀산업유통협회 등 4개 단체는 ‘꿀벌의무자조금’ 도입을 함께 준비했다. 자조금제도는 산업발전을 위해 협회들이 스스로 자금을 마련해 기금을 운용하는 제도다. 그러나 논의가 유보되며 흐지부지된 상황이다.
한봉협회 관계자는 “지난해 4개 단체가 자조금을 같이 도입할 예정이었지만, (논의가)유보됐다”며 “여러 단체가 함께 하기 어려워 양봉협회가 단독으로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토종벌을 기르는 한봉 농가는 양봉 농가에 비해 10분의 1 정도 규모로 작아 단독으로는 무엇도 시행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앞서 박근호 양봉협회장은 부진했던 벌꿀의무자조금 도입을 빠르게 시작하겠다며 양봉협회 단독으로라도 실현한다는 계획을 언급해 왔다. 양봉과 한봉의 목적이 다르며, 함께 무엇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의견 충돌이 일어나는 일이 수년째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반면 양봉(洋蜂)업계 내에서도 우려가 나온다. 한 양봉업자는 “양봉협회는 꿀벌을 기르는 사람들을 모두 대표하는 단체가 아니다”라며 “2029년 무관세로 베트남꿀이 수입될 때 ‘화분매개를 수행하는 양봉인들이 굶는다’며 보조금혜택을 챙기려고 공익법인을 추진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베트남산 수입 천연꿀의 관세율은 지난 2015년 한·베트남 FTA 타결 당시부터 매년 낮아져 오는 2029년부터는 무관세로 수입될 것으로 전망된다.
일각에서는 양봉협회가 공익법인이 되면 사양꿀 시장 규모도 보조금을 받으며 커질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벌에게 영양분 없는 설탕물을 먹여 만드는 사양꿀은 생산 과정에서 벌의 면역력을 떨어뜨려 꿀벌 실종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송인택 한국꿀벌생태환경보호협회 이사장은 양봉협회가 화분매개 꿀벌의 공익 가치를 높이기 위해 공익법인을 지정 받으려 한다는 것에 대해 “설탕꿀(사양꿀)을 생산하는 꿀벌이 어떤 화분매개를 하겠느냐”며 “꿀벌 보호 명목으로 받은 기부금으로 설탕꿀 생산자를 도우며 결국 꿀벌학대에 일조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건주 기자 gu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