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야간근무로 유방암 발생”…간호사들, 산재 인정 촉구

“19년 야간근무로 유방암 발생”…간호사들, 산재 인정 촉구

기사승인 2024-06-27 11:00:02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26일 근로복지공단 서울남부지사 앞에서 피켓을 들고 “야간교대근무로 인한 유방암 산업재해를 승인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간호사들은 인력 부족에 시달리며 극심한 노동 강도를 이어가고 있지만, 이로 인해 병에 걸려도 산업재해로 인정받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야간교대근무가 암 발생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나오고 있지만, 실제 교대근무로 인해 암이 발생하더라도 직업성 암으로 인정되긴 어렵다는 목소리가 이어진다. 산업재해에 따른 질환으로 승인을 받으려면 노동 강도와 관계없이 ‘25년’이라는 근무 기간을 갖춰야 한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26일 근로복지공단 서울남부지사 앞에서 피켓을 들고 “야간교대근무로 인한 유방암 산재를 즉시 승인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교대근무와 암의 연관성을 인정해달라는 것이 이날 노조가 기자회견을 통해 밝힌 요지다. 

노조에 따르면 19년 5개월간 근무한 40대 초반의 A간호사가 최근 유방암을 진단 받고 수술과 항암 치료를 진행하고 있다. 이 간호사는 병원 인력이 부족해 오후 3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이어진 야간근무를 포함해 약 12시간 동안 일하기도 했다. 월 평균 4.3차례, 최대 8차례의 야간 근무를 감내했다. 야간 근무를 하고 오전에 퇴근하면 그 다음날 다시 새벽 6시까지 출근해야 하는 소위 ‘나이트-오프-데이’ 근무를 반복했다. 하루를 오롯이 쉴 수 없는 교대근무 일정을 이겨내야 했다. 코로나19 확산 당시에는 코호트 격리에 따라 중환자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환자를 돌보기도 했다. 

국제보건기구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야간교대근무를 ‘2a 발암물질’로 분류하고 있다. 야간교대근무가 암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덴마크 직업병위원회는 20년 넘게 평균 주 1회 이상 야간근무를 한 경우 직업병을 인정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특히 유방암은 지속적인 야간근무 등 직업환경적 요인에 의해 발생할 확률이 높다고 보고되고 있다.

우리나라 병원 사업장에선 야간교대근무로 인해 유방암에 걸려도 이를 직업성 암으로 인정한 사례가 없다. 근로복지공단의 ‘직업성 암 재해조사 및 판단 요령’에 의하면 야간근무를 25년 이상 한 근로자에 한해 직업성 암 여부를 가리는 심의를 갖는다. 더불어 야간근무를 비롯해 업무와 질병 간 인과관계가 명확해야 하며, 방사선 노출 등 암 유발 요인이 추가로 있는 경우에 산재 승인 가능성이 높아진다. 서해용 노조 부위원장은 “공단이 말하는 25년 기준은 국내 의료 현장의 사정을 모르는 현실과 동떨어진 잣대”라며 “단순 근무기간만이 아닌 여러 요인을 종합적으로 살펴 심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조에 따르면 공단의 산재 인정 기준은 덴마크 제도를 바탕으로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노조는 덴마크와 우리나라 간호사의 근무 조건이 다르다는 점에서 산재 여부를 근무 연수로만 따질 수 없다고 반박했다. 서 부위원장은 “덴마크는 간호사 1인당 담당하는 환자 수가 1.2~5.4명이다. 우리나라는 평균 12~13명으로 3배가 넘는다”며 “노동 강도가 높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간호사의 유방암 산재 인정 여부와 관련해서는 전문가들도 의견이 갈린다.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출신 박성민 법무법인LF 변호사는 “야간교대근무가 유방암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 논문은 이미 많이 나와 있다”며 “19년 동안 야간근무를 해왔고 가족력이나 흡연, 음주, 호르몬제 복용 등 유방암의 주요 원인이 되는 행위를 하지 않았다면 산재를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고 언급했다. 

반면 강성규 가천대 길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다수의 논문이 야간근무를 오래 할수록 유방암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고 밝힌 것은 사실이지만, 관련성이 없다는 논문도 나오고 있어 명확하게 정의 내리긴 어렵다”며 “야간교대근무를 ‘2a 발암물질’로 지정한 것은 가급적 야간근무 횟수를 줄이고 근무자의 건강을 관리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산재 보상과 직접적으로 연결지을 순 없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유방암은 우리나라 여성 암 발생률 1위인 만큼 다양한 원인이 존재한다. 보다 엄격한 기준으로 산재 여부를 판정하는 것이 맞다”며 “사회보장제도와 유병률 등 의료 상황을 연계해 살펴야 한다. 희귀질환의 경우엔 유연하게, 비교적 흔한 암은 면밀하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A간호사의 유방암 사례와 관련해 산재 여부를 판단할 근로복지공단 서울남부지부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오는 28일 열릴 예정이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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