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18년간 360조원을 투입해 줄기차게 저출생 대책을 마련해 왔음에도 출산율은 오르긴커녕 바닥을 모른 채 추락 중이다. 그럼에도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는 이들이 있다. 아이를 낳으면 ‘애국자’라고 칭송받는 시대임에도, 축하보다 주변 사람들에게 임신 사실을 털어놓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위기 임신’으로 일컬어지는 상황에서 일부 예비 한부모들은 병원 밖 출산을 선택한다. 오는 19일 보호출산제 시행을 앞두고 미혼모(비혼모)들의 삶을 조명해 우리 사회가 먼저 고민해야 할 현실을 짚어봤다. <편집자주> |
# 20대 미혼모 A씨는 지난 5월 광주 서구 한 아파트 상가 화장실에서 자신이 출산한 영아를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미혼모로 아이를 키우는 것이 어려울 것 같았다”고 진술했다.
오는 19일부터 의료기관이 신생아의 출생 사실을 지자체에 통보하는 출생통보제가 시작된다. 동시에 보호출산제도 시행된다. 출생신고조차 되지 않은 채 살해·유기·학대 위기 상황에 닥친 아동을 살리고, 신원 노출을 꺼리는 산모의 ‘병원 밖 출산’이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를 보완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보호출산 시행을 코앞에 두고 양육 포기 창구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원가족 양육을 위한 충분한 상담과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정부의 약속에도, 당사자들은 고개를 갸웃한다. 위기 임산부가 생기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어떤 묘책으로 빈곤과 불안에 빠진 비혼 엄마를 설득할 것인가.
10일 한국미혼모가족협회와 비혼 엄마 당사자들에 따르면 출산과 양육을 선택한 비혼 엄마들에겐 임신부터 출산까지 모든 순간이 위기다. 그마저 나오는 정부 지원도 출산 이후 ‘한부모’가 되는 순간부터 나온다.
한국미혼모가족협회가 지난해 회원 14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임신 미혼모 절반(53.1%) 이상이 병원비 부담으로 병원 방문을 꺼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번 진료받을 때마다 내야 하는 진료비와 검사비가 부담인 셈이다. 이어 병원을 가는 것 자체가 두렵다(15.8%) 병원을 가기 꺼린다(13.0%) 병원진료를 받고 싶지 않아서(1.1%) 등 순으로 응답했다.
실제 정부에서 모든 임산부에게 보편적으로 지원하는 임신·출산진료비 지원금 100만원으론 출산까지 턱없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일부 검사는 비용이 수십만원에 달한다. 임신으로 일하기 쉽지 않은 비혼 엄마들에겐 경제적으로 부담일 수밖에 없다.
김민정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대표는 “임신·출산진료비 지원금은 보편적인 지원이지, 미혼모를 위한 것은 아니”라며 “출산이 다가오면 일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잘 남겨뒀다가 제왕절개와 같은 출산 비용으로 쓰려고 임신·출산진료비 지원금을 아끼는 엄마가 많다. 세 번 가야 할 병원을 한 번만 가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임신기 부족한 정보와 지원으로 제대로 된 출산 준비를 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조사에서 응답자 절반 이상이 임신 기간 양육정보를 스스로 알아봤다(53.4%)고 답했다. 어떠한 정보도 잘 알지 못했다는 응답은 20.5%에 달했다. 예비 한부모가 출산·양육을 결심하더라도 각종 지원제도와 양육 정보를 스스로 찾아야 하는 셈이다. 이렇게 지난한 과정을 지나다 보면 ‘출산·양육’보다 아이를 포기하는 이들이 생겨난다.
김 대표는 “임신기 비혼 엄마가 협회로 주로 상담하는 내용은 ‘출산용품 지원’이다”라며 “출산을 하면 정부에서 기저귀, 분유 등을 지원하지만 임신기 준비해야 할 아기용품에 대한 지원은 없다. 임신 7~8개월부터 아기용품을 사고 출산 준비를 미리 해두어야 한다. 속싸개·겉싸개 등을 세탁하고 다른 용품을 준비해야 하는데 (초보 예비 한부모를 위한) 정보도, 지원도 없다. 나중에 아이를 출산한 상태에서 혼자 준비하려면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애초에 ‘위기 출산’이 되지 않도록 예방을 강화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보호출산제 도입에 앞서 미혼모에 대한 폭넓은 ‘출산전 지원’과 꾸준한 경제적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 대표는 “출산전 지원을 더 탄탄하게 할 필요가 있다”며 “임신 7~8개월만 되도 출산하는 건 기정사실이다. 출산 전후 일하지 못하는 엄마이 많은데 의료기관 산모수첩이 있다면, 산전부터 부모 수당을 주면 좋겠다. 그렇게 하면 병원 밖 출산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라고 했다.
이어 “산부인과 진료비 아끼겠다고 진료를 참는 일이 줄어들 것이다. 아기용품도 미리 준비하고, 일하지 못하는 기간 밀린 월세를 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부분이 모여 마음에 안정을 찾게 하고, 비혼 엄마들이 아이를 키우는데 용기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에선 이미 출산 전부터 비혼 엄마(또는 아빠), 아동에 대한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연구관에 따르면 노르웨이의 경우 한부모에게 별도의 전환수당이 지급된다. 최장 3년까지 다른 조건 없이 월 278만원을 받을 수 있다. 덴마크의 경우 임신 12주가 지난 30세 미만 임산부가 자신을 부양해 줄 가족이 없는 경우 월 242만원(올해 기준)의 생활보조금이 지급된다.
허 연구관은 “해외 사례와 같이 3~5년이라도 생계비를 지원해 한부모 가정이 자립할 수 있는 것에 정책 목적을 둬야 한다. 아이 돌봄을 (국가가) 책임져 비혼 엄마가 소득을 벌 수 있게 해줘야 한다”며 “임신 사실을 알고 굉장히 불안하고 무서운 마음으로 상담센터를 찾아왔을 때 말로만 다독이며 ‘힘내세요’라고 할 것인가. ‘이러한 제도가 있으니 생계 걱정 없이, 필요하면 심리상담도 받을 수 있다’고 자립할 수 있는 희망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