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파리는 이 선수로 기억될 겁니다. 고등학생 사수 반효진이 최연소 금메달리스트에 이름을 올립니다.”
반효진은 지난 2024 파리올림픽에서 여자 10m 공기소총 개인전 우승을 차지했다. 16세 10개월 18일에 금메달을 따낸 그는 온갖 최연소 기록을 갈아치웠다. 1988년 서울올림픽 양궁 윤영숙(17세 17일)을 넘고 한국 올림피언 역사상 최연소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올림픽 사격 부문 역대 최연소 여자 금메달리스트에도 올랐다.
쿠키뉴스는 지난 23일 대구체육고등학교 사격장에서 반효진을 만나 이번 시즌 소회와 앞으로 각오를 들어봤다.
“다 잊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려고 해요”
‘파리올림픽 스타’로 등극한 반효진은 올림픽 후 바쁜 날들을 보냈다. 국내 대회를 병행하면서 TV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고, 프로야구 시구자로 초청되기도 했다. 공항 출국할 때 인기가 실감 난다던 반효진은 “경기에 출전하면 사인을 요청하는 팬 분들이 많아졌다. 시구할 때도 많은 팬들과 사진 찍었다”고 했다.
높아진 인기에 긴장이 풀어질 수 있지만, 반효진은 초심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는 “올림픽 금메달 딴 날을 최대한 잊고자 한다. 처음부터 시작하려는 마음가짐”이라고 강조하면서도 “점점 (금메달 순간이) 잊히는 것 같기도 한데, 문득문득 떠오른다”고 수줍게 말했다.
사대에 설 때를 제외하면, 영락없는 고등학생이다. “다이어리를 쓰고 싶은 게 취미다. 아직 꾸준함이 부족해 매번 실패했다. 매일 쓰는 게 귀찮더라”며 웃어 보인 반효진은 “여가 시간에 친구들과 노래방 가고, 화장품 사러 간다”고 덧붙였다.
태권도 선수가 꿈이었던 소녀, 사격 매력에 빠지다
반효진은 중학교 1학년 때까지 태권도 학원을 다녔다. 그의 마음을 돌린 건 다름 아닌 ‘봉사 시간’. 반효진은 “중2 때 친구가 사격부 특징을 말해줬다. 봉사 시간, 동아리 시간을 다 채워준다고 하더라. 그 말에 혹해서 사격장을 찾았다”고 미소 지었다.
사격장에 들어서자 큰 총소리가 반효진을 사로잡았다. 반효진은 “시끄러운 매력이 있었다. 너무 재밌더라. 남들보다 1년 늦게 들어온 만큼 10배 더 열심히 하겠다고 어필해서 사격부에 들어갔다. 갑작스러운 결정에 부모님이 반대했지만, 오히려 더 오기가 생겼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반효진은 사격에 입문한 지 한 달 만에 지역대회 1위를 기록했다. 타고난 집중력과 사격의 궁합이 잘 맞았다. 반효진은 “멀티가 안 된다. 하나에 집중하면 다른 게 안 보인다”면서 “운동선수로서도 좋은 성격이다. 승부욕이 강하고 침착한 타입”이라고 밝혔다. 재능에 노력도 더해졌다. 반효진은 “견디기 힘든 체력 훈련도 악바리처럼 소화했다. 태권도를 했다 보니 체력에 자부심이 있었다. 동기들한테 지기 싫었다”고 설명했다.
피나는 노력 덕에 성적은 날로 좋아졌으나, 부상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반효진은 “사격한 지 1년쯤에 부상이 찾아왔다. 사격 자세 특성상 신체 균형을 왼쪽에 몰다 보니 좌측 고관절 인대가 늘어났다. 무릎에 염증도 생겼다”며 “이후에 오른발로 지탱하니, 우측 다리에 부상을 당했다. 이제는 허리, 손목, 어깨 다 아프다. 사격하는 이상 완치는 힘들다. 재활 운동·치료를 꾸준히 받고 있다”고 부상을 덤덤히 받아들였다.
‘최연소 국가대표’ 부담 없는 반효진 “아직 어려…항상 배우려 한다”
대표팀에서 배운 점에 대해 반효진은 “선배들은 어떤 순간이든 감정 컨트롤을 잘하더라. 다들 멘탈이 강하다”면서 “전에는 하나라도 안 되면 그걸 짚고 넘어가야 했다. 이제는 힘든 걸 잘 넘겨 멘탈 좋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알게 모르게 많이 배웠다”고 선배들에게 고마워했다.
반효진은 대표팀에서 배운 것을 곧바로 후배에게 전했다. 그는 “올림픽에 다녀오면서 경험치를 많이 쌓았다. 이 자산을 혼자 갖고 싶지 않았다”며 “이번에 전국체전 준비할 때, 안 풀린다고 하는 1학년 후배에게 사대까지 붙여가면서 대표팀에서 배운 걸 알려줬다. 덕분에 대구체고가 전국체전 남녀 4관왕을 차지했다. ‘으쌰으쌰’ 하는 분위기가 잘 만들어졌다”고 만족했다.
올림픽 이후 국내 대회에서 성적이 좋지 않았던 반효진은 이번 전국체전에서 제 컨디션을 되찾으며 고등부 개인전·단체전 2관왕에 올랐다. 본선 631.8점으로 대회 신기록을 갈아 치운 반효진은 결선에서 253.6점을 쏴 비공인 주니어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당시를 돌아본 반효진은 “올림픽 끝나고 허리 부상이 심해졌다. 경기가 안 풀리면서 눈물도 많이 흘렸다”고 고백하면서 “이번 대회에는 총을 바꿔 임했다. 올림픽 때 사용했던 총이 아닌, 그 전에 쓰던 총을 꺼냈다. 모험이 통했다”고 비하인드 스토리를 밝혔다.
‘한국 사격의 미래’라는 것에 부담은 없냐고 묻자, 고개를 저은 반효진은 “나는 아직 경력도 없고, 어린 선수다. 대회에 참가할 때마다 얻는 게 많다”며 “경험이 엄청 중요하다고 본다. 하나라도 더 배우려는 마음가짐으로 경기에 임한다”고 답했다.
반효진은 새로운 목표로 ‘그랜드슬램(올림픽·세계선수권·아시안게임·아시아선수권 우승)’을 언급했다. 그는 “원래는 올림픽 금메달이 목표였는데, 이번에 이뤘다. 한걸음 더 나아간 목표를 찾다가 ‘선수라면 그랜드슬램은 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힘줘 말했다.
끝으로 반효진은 사격에 대한 팬들의 관심을 바랐다. 그는 “사격은 없으면 안 되는 ‘피’같은 존재다. 사격이 진짜 좋아서 오래오래 건강하게 하고 싶다”면서 “사랑하는 이 종목의 매력을 다른 분들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같이 즐기고 싶은 마음이다. 응원을 해주신다면, 거기에 힘을 얻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사격에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고 인터뷰를 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