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금피아(금융관료+마피아)’의 금융권 상근감사 독식이 여전하다. 금융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어 퇴직자들이 전문성을 제대로 살리고 있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28일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8년부터 올해 8월까지 금융사고가 발생한 금융사(은행, 저축은행, 증권사) 66곳 중 상근감사 및 감사위원이 공공기관 출신인 곳이 절반이 넘는 57.58%(38곳)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공공기관 출신 가운데서도 금감원 출신이 71%(27곳)에 달했다.
22대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김대남 전 대통령비서실 선임행정관의 SGI서울보증보험 상근감사 낙하산 의혹이 쟁점이 됐다. 상근감사는 금융사에 상주하면서 경영 전반을 감시하는 역할로, 금융사 ‘넘버2’로 불리는 자리다. 연봉도 수억원대에 달한다. 특히 금융사들의 금융당국 출신 ‘모셔가기’는 고질적인 문제다. 내부통제와 관련해 전문성이 있다는 게 표면적 영입 이유지만, 실상 당국 방패막이용이라는 지적이 오래전부터 나왔다.
금감원 출신 은행 상근감사 독식…갈수록 공고화
5대 시중은행 상근감사(위원)는 금융사고 반복에도 모두 금감원 출신이 흽쓸고 있다. 인터넷, 외국계 은행을 뺀 나머지 지방·국책은행들의 상근감사도 금감원을 비롯해 공공기관 출신이 대다수였다. 저축은행과 증권 업계는 공공기관 출신과 민간 출신이 반반씩이었다. 하지만 금융사고 금액과 사고 건수를 비교해봤을 때, 공공기관 출신 상근감사가 있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 간에 큰 차이는 없었다.
2018년부터 올해 8월까지 은행권에서 발생한 금융사고 건수는 총 261건이고 그 금액은 3897억원에 달했다. 이 기간 금융사고 금액이 가장 큰 곳은 1421억원인 우리은행이었다. 5대 시중은행의 사고건수와 금액은 구체적으로 △KB국민은행 36건(684억원) △신한은행 29건(76억원) △하나은행 38건(228억원) △우리은행 30건(1421억원) △농협은행 34건(436억원) 이였다.
국민은행은 최근 10년간 한 차례(기재부 부이사관 출신 정병기)를 제외하고는 상근감사에 모두 금감원 출신(박동순, 주재성, 김영기)이 선임됐다. 신한은행은 이석근 전 상근감사, 허창언 전 상근감사와 지난해 선임된 류찬우 상근감사 모두 금감원 부원장보 출신이다. 하나은행의 이주형, 조성열 전 상근감사와 현 민병진 상근감사도 금감원 요직을 거쳤다. 우리은행에서도 지난해 양현근 전 금감원 부원장보를 상근감사에 앉혔다. 농협은행은 2012년 이용찬 초대 상근감사를 비롯해 한백현, 김영린, 이익중 등 전임자 그리고 고일용 현 상근감사까지 전부 금감원 퇴직자들이다. 외국계와 인터넷은행을 제외한 나머지 15개 은행 상근감사 자리도 금감원 국장, 지원장, 부원장보들과 기재부 출신이 차지했다.
금감원서 모시면 감사 잘하나…사고금액·건수 차이 미미
저축은행 업권에서는 공공기관 출신의 상근감사 독식이 은행권보다 덜했다. 공공기관 출신 상근감사가 있는 저축은행이 기관당 평균 사고 건수와 금액이 없는 곳보다는 적었지만, 차이가 크지 않았다. 2018년~2024년 8월까지 저축은행권에서 발생한 금융사고 건수는 총 47건이고 총 금액은 646억원이었다. 저축은행 총 26곳 중 공공기관 출신 상근감사가 있는 저축은행은 13곳이었다. 12곳이 금감원 출신이었고 1곳은 국세청 출신이었다.
평균 사고 건수는 공공기관 출신 상근감사가 있는 저축은행이 1.5건(총 20건)으로 없는 곳 평균 2건(총 27건) 보다 적었다. 평균 사고금액은 공공기관 출신 상근감사가 있는 곳은 24억5000만원(총 319억원), 없는 곳은 25억1000만원(총 327억원) 이었다. 특히 웰컴저축은행에서는 가장 많은 5건의 금융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금액은 총 46억원이다. 사고 발생기간, 사고 보고일에는 각각 금감원 국장 출신의 오재극, 장병용 상근감사가 재임 중이었다.
증권업계는 어떨까. 같은 기간 금융사고가 발생한 증권사 21개사의 총 사고 건수는 48건, 사고 금액은 1106억3900만원에 달했다. 이 중 공공기관 출신 상근감사가 있는 곳은 10곳이었다. 4명이 금감원 출신이고 나머지는 금융위원회 2명을 비롯해 기재부, 법제처, 예금보험공사, 국세청 6곳이었다.
평균 사고건수는 공공기관 출신 상근감사가 있는 증권사가 2.5건으로, 없는 곳의 평균치(1.7건)보다 많았다. 평균 사고금액도 공공기관 감사가 있는 곳이 27억3000만원(총 518억8000만원)으로 공공기관 상근감사가 없는 증권사 21억7000만원(총 587억5000만원)보다 높았다. 이 중 금융사고가 가장 크고 많이 발생한 증권사는 삼성증권으로 6건, 280억5200만원으로 나타났다. 특히 삼성증권 내에서 가장 큰 단일 금융사고(126억원)가 발생했던 2022년 12월에는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전 금융위원장)이 감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연구결과 “당국 제재 확률 16%↓”…“퇴직자 영입 안하면 금감원이 눈치”
연구결과에서도 금융당국 출신 인사가 금융사 임원 재취직 후 금융사 건전성이 개선되지는 않지만, 당국으로부터 제재를 받은 확률이 유의하게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9년 KDI(한국개발연구원)이 낸 ‘금융당국 출신 인사의 금융회사 재취업에 따른 경제적 효과’ 보고서에 따르면 금융당국 출신 인사가 임원이 된 후 해당 금융사의 RoRWA(위험가중자산 대비 당기순이익률)은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반면, 특히 금감원 출신 임원 취임 이후, 금융회사가 제재를 받을 가능성은 약 16.4% 감소했다. 금융위, 기재부, 한은 출신 인사가 임원으로 취임한 이후에는 금융회사가 제재를 받을 확률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변화가 감지되지 않았다.
금감원 출신 한 인사는 “금융사에서는 금감원 출신이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금감원 검사 시 지적사항 2개를 1개로 줄이거나, 제재를 받더라도 수위를 낮춰주기를 바란다”며 “금융사에 가서 형식적으로 감사를 할 수밖에 없는 배경도 있다. 내부 반발도 있고 보수·임기 문제로 임원들과의 관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퇴직자 자리를 마련하지 않는 금융사에는 금감원이 눈치를 주기도 한다. 금감원 입장에서도 내부 인사 적체 해소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다른 금감원 출신 현직 감사는 “금감원 출신이라고 하면 금융과 내부통제 최고 전문가라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다. 하지만 최고 전문가가 상근감사로 와도 금융권은 대형 금융사고가 끊이질 않는다. 금융사에서 이들에게 감사업무가 아니라 대관업무를 위주로 하는 로비스트 역할을 기대하기 때문”이라며 “감사가 고유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금융지주 회장의 인사 전횡을 막고, 투명하고 공개적인 선임 절차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금융사 상근감사 자리가 금감원 고위 임원들의 재취업지로 전락한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며 “얼마 남지 않은 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의 후임 감사 자리에 벌써 누가 간다더라는 하마평이 돌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병덕 의원은 “작년 국정감사에서 내부통제를 담당하는 준법감시인 자격 요건을 강화하는 안을 내년 시행에서 올해로 앞당겼고, 금년 국정감사에서는 서울보증 상임감사에 대한 낙하산 인사를 지적했다”며 은행 금전사고를 막는 방법은 제대로 된 금융 제도와 내부통제 시스템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각 금융사들이 금융관료를 방패막이로만 활용하는 방식으로는 발전이 없을 것”이라며 이번 자료가 그 현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