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3분기 경제성장률이 예상치를 밑돌면서 한국은행의 고민이 깊어졌다. 경기 침체에 가까운 경제성장률은 기준금리 인하 요인으로 작용하지만, 불안한 환율과 미 대선, 가계부채 문제가 한은의 결단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에 대해 이창용 한은 총재는 상황을 보고 11월에 인하 여부를 결정하겠다며 신중론을 펼치고 있다.
29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한국의 3분기 GDP 속보치는 2분기 대비 0.1%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는 한은의 분기별 전망치(0.5%)를 0.4%p 밑도는 수준이다. 2분기 역성장(-0.2%)에서는 벗어났지만 기존 예상치를 크게 하회하고 있는 셈이다.
이번 ‘성장률 쇼크’의 가장 큰 요인은 수출 부진의 영향이 컸다. 자동차, 화학, 반도체 등의 실적이 하락하면서 3분기 수출이 전 분기 대비 0.4% 감소했다. 2022년 4분기 –2.5% 감소한 이후 첫 마이너스다. 기여도로 보면 성장률을 0.8%p 끌어내렸다.
이같은 3분기 경제성장률로 하여금 한은에 대한 기준금리 추가 인하 압박을 키우고 있다. 10월 금통위 이후 금융권에서는 올해 추가 인하가 없을 것이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였지만, 내수 경기라도 부양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도 다시금 기준금리를 인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3분기 성장률은) 내수부진과 수출감소라는 복합적 경제 침체 속에서도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방어에만 급급해서 생긴 것”이라며 “한은이 경기침체의 시그널을 인지하고 선제적으로 금리를 인하해 경기 부양을 시도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대로는 내년 경제도 힘든 국면에 접어들 것이다. 경제 전반의 구조개혁을 단행하고 투자와 소비 활성화를 위한 기준금리 인하에 나서야 한다”며 “또 다시 시기를 놓쳐 경기 침체의 늪에 빠지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한국은행 금통위가 선제적 조치에 나서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의 자회사인 무디스 애널리틱스에서도 한국은행이 다음달 기준금리 인하를 논의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무디스 애널리틱스는 보고서를 통해 “한은은 가계부채 증가와 부동산 가격 상승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해왔으나 (11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 인하는 논의 테이블에 오를 것”이라며 “3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부진으로 한은의 올해 GDP 성장률 목표치인 2.4% 달성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했다. 이어 “물가 상승세가 둔화하고 기준금리 인하가 이뤄진 가운데 GDP 성장의 구성이 점진적으로 (수출 중심에서) 내수로 전환될 것이다. 기준금리 인하로 내수를 촉진해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기준금리를 인하하기에는 여전히 변수가 많은 상황이다. 특히 최근 1400원대에 근접하고 있는 원·달러 환율 문제가 급부상했다. 강달러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한국이 기준금리까지 낮추면 상대적으로 원화 가치가 떨어지며 원·달러 환율은 더 불안해질 수 있다.
실제로 지난 28일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 주간 거래 종가(오후 3시30분 기준)는 전거래일보다 3.7원 내린 1385.0원을 기록했다. 미국의 경기가 강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는데다 내달 5일 치러지는 미국 대선 리스크가 글로벌 외환시장을 지배하면서 달러 상승세를 뒷받침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통화정책 방향 결정에 환율 수준이 다시 고려 요인으로 부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총재는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그룹(WBG) 연차 총회 참석을 위해 방문한 미국 워싱턴D.C에서 기자들에게 “달러 환율이 지금 우리가 원하는 것보다는 굉장히 높게 올라 있고 상승 속도도 크다”며 “지난번(10월 금융통화위원회)에는 고려 요인이 아니었던 환율도 다시 고려 요인으로 들어왔다”고 말했다.
이어 “다음달 금통위에서 수출 증가율 둔화세가 내년 성장률에 미치는 영향을 비롯해 미 대선이 끝난 뒤 달러 강세 지속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이 총재는 올해 성장률은 통화정책 방향에서 ‘고려사항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 총재는 “4분기(성장률)가 정말 안 나온다고 하더라도 지금까지 추세를 보면 올해 성장률은 잠재성장률 2%보다는 반드시 높을 것”이라며 “성장률이 갑자기 망가져서 경기를 부양해야 하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아울러 “분기별 자료의 변동성을 이번에 처음 보는데 너무 일희일비하지 말고 ‘오버 리액션(과잉 반응)’ 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