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정거래위원회가 4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LTV(담보인정비율) 담합 사건 재조사를 마무리 짓고, 제재 절차를 밟는다. 일각에서는 은행권이 법적 대응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22일 금융권 등에 따르면 공정위는 4대 은행의 담합 행위를 제재한다는 의견이 담긴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 격)를 지난 18일 각 은행에 발송했다.
대출 규제 중 하나인 LTV는 부동산을 담보로 은행이 돈을 빌려줄 때 대출 가능한 한도를 나타내는 비율이다. 예컨대 주택담보대출을 받아서 5억원짜리 아파트를 살 때, LTV가 70%라면 3억5000만원까지 대출받을 수 있다. 아파트·토지·공장·오피스텔 등 각 부동산 종류와 250개 시군구별로 LTV가 다르게 매겨진다. 각 은행에서 담보 종류, 지역별로 설정하는 LTV 조합이 최대 7500여개에 달하는 구조다. 국민은행은 1년에 두 번, 신한·우리·하나은행은 1년에 한 번 부동산 종류별로 LTV를 적용해 사전에 대출 가능 금액 등을 산정하는 절차를 밟는다.
공정위는 담보대출 거래조건에 해당하는 LTV를 사전에 공유한 행위가 정보교환 담합에 해당한다는 입장이다. 시중은행들이 LTV 자료를 공유한 뒤 의도적으로 LTV를 낮춰 시장경쟁을 제한하고, 부당한 이득을 취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은행이 더 많은 대출을 내어줄 수 있었음에도 LTV를 낮추면서 소비자 불이익이 발생했다는 판단이다. 대출금이 부족한 소비자들이 추가 신용대출을 이용하게 되면서 결과적으로 은행이 이익을 부풀렸다는 주장도 있다.
공정위는 지난해 11월 4대 은행의 LTV 정보 공유 담합 의혹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재심사를 결정했다. 추가 입증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판단해 결론을 내리지 않은 것이다. 재심사 명령을 받은 공정위 심사관은 지난 2월12일과 17일 4대 은행 현장 조사에 나서는 등 재조사를 벌였다. 이후 약 두 달에 걸쳐 제재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를 새로 작성했다.
이번 심사보고서에는 각 은행의 정보교환 행위가 대출 조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증거가 보강된 것으로 알려졌다.1차 심사보고서 때는 LTV 관련 대출 신규취급액만 관련 매출액으로 산정됐지만, 이번에는 기한 연장 대출 규모까지 추가된 것이다. 관련 매출액이 증가하면 과징금 규모도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향후 재심사를 통해 4대 은행의 위법성이 인정되면 정보교환을 담합으로 제재하는 첫 사례가 된다. 공정위는 위반행위의 중대성에 따른 부과 기준율에 관련 매출액을 곱해 과징금을 산출한다. 위원회에서 혐의를 인정한다면 수천억원대로 전망됐던 과징금이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공정위는 각 은행 의견을 받아보고, 전원회의 일정을 잡아 제재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다만 공정위 관계자는 “정확한 일정 등은 밝히기 어렵다”고 말했다.
은행권은 단순 정보교환일 뿐 담합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LTV라는 것은 각 은행이 내부 기준을 통해 산출하긴 하지만, 결국 경매시장 경락가율 등 공통된 지표에 기반해 결정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큰 차이가 날 수 없는 성격”이라며 “이를 담합으로 해석하는 것은 시장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과도한 판단”이라고 주장했다.
공정위가 고액의 과징금을 부과할 경우, 은행권이 법적 대응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과징금 규모가 크면 법적 다툼의 여지가 충분히 있다”면서 “한 은행이 소송에 나서면, 나머지 은행들도 따라가는 구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은행권 관계자도 “제재 결과에 따라 연합회나 개별 은행 차원의 대응이 불가피할 수 있다”며 “제재 내용을 그대로 모두 수용하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