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23일 (4)
36주 낙태 항소심이 남긴 과제…입법 공백과 의료윤리

36주 낙태 항소심이 남긴 과제…입법 공백과 의료윤리

시민단체 “입법 공백 해소해야”…의협 “후기 임신중지, 의료윤리 문제”

승인 2026-07-23 17:5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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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주 낙태사건 2심 판결 이후 시민단체가 산모 A씨의 무죄를 환영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찬종 기자
36주 낙태사건 2심 판결 이후 시민단체가 산모 A씨의 무죄를 환영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찬종 기자
이른바 ‘36주 낙태’ 사건 항소심을 계기로 임신중지 제도와 의료윤리를 둘러싼 논쟁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시민단체는 입법 공백 해소를 촉구했고, 대한의사협회는 후기 임신중지의 윤리적 기준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고등법원은 23일 살인 혐의로 기소된 산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산모가 브로커로부터 ‘태아가 사산된 상태로 나온다’는 설명을 믿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며 살인의 고의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반면 제왕절개 수술을 집도한 의사들의 살인 혐의는 유지했다.

다만 모자보건법의 입법 공백 상태에서 사건이 발생한 점 등을 양형에 참작해 형량은 일부 감경했다.

이번 사건은 2019년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관련 법률과 의료체계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발생한 사례다. 항소심 선고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는 입법 공백과 의료체계 부재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이어졌고, 의료계에서는 후기 임신중지의 윤리적 기준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산모 측 변호인인 김명선 변호사는 이번 사건의 근본 원인을 개인의 형사책임보다 국가의 입법 공백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산모 개인의 무죄에 의미가 있다기보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계속된 입법 공백 속에서 의료계와 산모들이 얼마나 큰 혼란을 겪었는지를 보여준 사건”이라며 “정부와 입법기관은 임신중지와 관련한 절차와 프로토콜을 마련해야 할 책임이 있지만 이를 방치해 왔다”고 말했다.

또한 “이번 판결을 계기로 더 이상의 혼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속한 입법이 이뤄져야 한다”며 “안전한 임신중지 의료가 이뤄질 수 있도록 국가가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재판 과정에서 참고인으로 증언한 오정원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의사는 의료진에 대한 유죄 판단이 향후 임신중지 의료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오 의사는 “의료진의 유죄가 유지된 상황은 현재 의료진이 임신중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더욱 위축시킬 수 있다”며 “더 많은 임신중지가 필요한 당사자들은 병원을 여전히 찾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정부와 의료계는 제도권 안에서 안전하고 정당한 필수의료 서비스로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의사협회는 판결문을 검토한 뒤 공식 입장을 정리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만삭에 가까운 태아에 대한 임신중지는 의료윤리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의협 관계자는 “판결을 먼저 살펴봐야 한다”면서도 “36주 태아를 낙태하는 행위 자체는 기본적인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36주에는 모체 밖에서도 충분히 생존 가능한 태아인 만큼 이를 낙태한 것은 의료인의 윤리와 산모의 건강, 태아의 생명이라는 측면에서 의료윤리를 벗어난 일이라고 본다”고 전했다.
이찬종 기자 hustlele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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