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뜻 구직 중인 청년들을 지원하는 사업 포스터로 보인다. ‘창업 멘토링’ ‘현직 아나운서에게 배우는 스피치’처럼 청년들의 구직 활동에 필요한 활동이 적혀 있다. 참여 대상과 참여 기간, 지원금 내용도 빠짐없이 담겨있다. 정보 전달에 충실한 포스터다. 그런데 ‘초간단 쿠킹클래스’ ‘시현하다 프로필 촬영’ ‘알짜배기 부동산’에서 물음표가 생겼다. 그래, 프로필 사진은 어딘가에 쓸 수 있겠지. 그런데 요리와 부동산은 구직과 대체 무슨 상관일까. ‘동기 MT’와 ‘서울랜드 수학여행’에선 물음표가 두 배로 커졌다. MT와 수학여행을 가면 취직에 유리한 것인가. 지금 시대의 취직이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청년도전지원사업에 대해 찾아봤다. 고용노동부는 ‘구직단념 청년 등을 대상으로 맞춤형 프로그램을 제공해 청년의 구직 의욕 고취, 노동시장 참여 및 취업 촉진을 지원하는 사업’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니까 ① 구직을 포기한 청년들을 다시 사회로 이끌어내서 ② 취업할 수 있게 지원하는 프로그램인 것이다. 포스터에 청년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프로그램과 취업에 도움을 주는 프로그램이 혼합되어 있는 이유다. 그런 거구나. 이제 이해가 됐다.
아직 이상한 점이 남았다. 참여 대상에 적힌 ‘구직 준비 청년’이 문제였다. 분명 청년도전지원사업은 ‘구직 단념 청년’을 지원하는 사업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홈페이지를 찾아보니 포스터에 적힌 그대로 지원대상에 ‘자립준비청년’ ‘청소년 복지시설 입·퇴소 청년’ ‘북한 이탈 청년’ ‘가습기살균제 피해 청년’라고 적혀 있었다. 구직 ‘단념’ 청년만 구직 ‘준비’ 청년으로 살짝 바꿔 적은 것이다. 공공기관인 구청에서 이런 실수를 할 리가 없다. 포스터 제작 담당자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사연은 짐작이 간다. 사업의 참여율을 높이기 위한 방책이었을 것이다. 구직 단념 청년들을 위한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었으니 널리 알려야 한다. 하지만 이런 사업에서 가장 어려운 점이 참여할 청년을 발굴하는 것이다. 그러니 홍보가 중요하다. 정직하게 구직 단념 청년을 모집한다고 하면 지원자수가 적을 가능성이 높다. 포스터까지 만들어 홍보하는 의미가 퇴색되는 딜레마다. 그러니 한 단어만 살짝 바꾸는 누군가의 결단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그래. 구직 단념 청년도 언젠가 구직을 준비할 청년이니까.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걸로 가자.
당연히 다르다. 애초에 사업 취지가 구직 단념 청년을 위한 것이다. 프로그램도 맞춤형으로 만들어졌다. 올해 617억 원의 정부 예산이 배정된 이유다. 찾아보니 해당 포스터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전국 지자체에서 만든 다수의 포스터에서 ‘구직 단념 청년’이란 표현을 찾을 수 없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서로가 서로의 레퍼런스가 되어주고 있었다. 누구 하나의 잘못이라고 지적할 수 없게끔 서로를 지켜주는, 보기 드문 훈훈한 광경이었다.
한 청년이 말했다. 청년도전지원사업에 참여하다가 몇 달이 지난 후에야 본 취지를 알게 됐다고. 구직 단념 청년을 모집하는 프로그램인 걸 알았으면 신청하지 않았을 거라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동안 누구도 청년도전지원사업의 취지에 대해 얘기해주지 않았다고. 그는 졸업 후 평범하게 취업을 준비 중인 청년이었다.
궁금하다. 그와 같은 경험을 한 청년이 전국에 얼마나 많을까. 전국에 얼마나 많은 공무원들이 ‘단념’을 ‘준비’로 고쳐 쓰고 있을까. MT를 함께 간 구직 단념 청년과 구직 준비 청년들은 무슨 얘기를 나눴을까. 이들은 계좌에 입금된 정부 지원금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준범 콘텐츠전략부장 bluebell@kukinews.com

















































